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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시리얼의 갈등… 건강이냐, 맛이냐?
입력 : 2015.04.10 18: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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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식과 시리얼, 아침 대용식으로 굳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어떤 것을 먹는 게 좋을까? 아침마다 약 먹는 기분이 들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건강에 좋다는 선식을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아무리 몸에 좋다고 하더라도 꾸준히 먹을 수 없다면 말짱 도루묵이니 이왕이면 달달하고 맛있는 시리얼을 선택할 것인지, 건강과 입맛 두 조건을 다 만족시킨다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
맛과 건강을 둘러싸고 고민한 켈로그 형제 지금으로부터 약 120년 전, 미국의 두 형제가 똑같은 문제로 고민을 했다. 형은 건강이 우선이라며 순수하게 곡식으로만 만든 건강식품을 먹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동생은 아무리 건강식이라도 맛있고 먹기 편해야 한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사이가 좋았던 두 형제는 선택의 문제로 고민하다 갈등했고 결국에는 각자의 생각에 따라 제 갈 길을 걸었다. 동화책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아침에 시리얼로 먹는 콘플레이크를 처음 개발한 존과 윌 켈로그 형제의 이야기다.
콘플레이크는 1894년, 미국 미시간 주에 위치한 요양원에서 일하던 의사 존 켈로그 박사가 처음 만들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120년 전이었으니까 현재와는 식사 습관이 많이 달랐다. 지금은 부자들이 먼저 건강식을 챙기지만 이 무렵만 해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은 계란과 고기로 아침식사를 했다.
반면 서민들은 고운 밀가루로 구운 빵 대신에 아침부터 통밀이나 귀리와 같은 거친 잡곡으로 오트밀과 같은 죽을 먹었다. 그런데 존 켈로그 박사는 이때 이미 고기는 건강에 좋지 않으니 채식 중심의 식사를 하라고 주장했다. 그것도 흰 빵은 건강에 해로우니 이왕이면 통밀로 만든 빵을 먹으라고 권했다.
1894년이면 우리나라에서는 동학혁명이 일어났을 때다. 하얀 쌀밥에 고깃국 배불리 먹는 것이 소원이었을 사람들한테 하얀 쌀밥만 먹는 것은 건강에 이롭지 않으니 현미밥이나 보리 듬뿍 섞은 꽁보리밥을 먹고 기름기 많은 고기는 먹지 말라고 주장했던 것과 비슷했으니 존 켈로그 박사는 건강식품에 관한 한 시대를 상당히 앞서갔던 선각자였다. 이렇게 채식과 건강식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 콘플레이크였다.
우연의 산물 콘플레이크 존 켈로그 박사의 동생인 윌 켈로그 역시 형과 함께 같은 요양원에서 일했다. 어느 날, 두 사람은 통밀로 음식을 만들다 급한 일이 생겼다는 연락을 받고는 조리하던 곡식을 그대로 버려둔 채 다른 일을 처리해야만 했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 돌아와 보니 조리하던 통밀이 숙성돼 신선도가 크게 떨어졌다. 하지만 영리를 추구하는 병원이 아닌 요양원이었기에 살림이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다. 이 때문에 통밀의 신선도가 떨어졌다고 그대로 내다버릴 수는 없었기에 통밀을 롤러에 넣고 납작하게 눌러 가공을 했다. 처음에는 국수처럼 넓고 기다란 밀가루 반죽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했기에 이 반죽으로 다른 요리를 만들어 환자들에게 제공할 생각이었지만 예상과 달리 조각 조각의 납작하게 눌린 곡물 덩어리가 만들어졌다. 문자 그대로 콘플레이크(Corn Flake)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렇게 납작하게 눌린 곡식 조각으로는 특별히 만들 수 있는 요리도 마땅치 않았기에 할 수 없이 통밀 반죽을 그대로 구워 요양원 환자들에게 식사로 제공했다. 그런데 평소 먹던 통밀과는 달리 충분히 숙성된 통밀 반죽을 구웠기 때문에 맛도 좋았고 게다가 거친 통밀과는 다르게 소화도 잘됐기 때문에 환자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요양원 콘플레이크가 맛있고 소화도 잘 돼 건강에도 좋다는 소문이 퍼지자 요양원 밖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콘플레이크를 찾았다. 갈수록 인기가 높아지자 존과 윌 켈로그 두 형제는 아예 회사를 설립해 콘플레이크를 보급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하지만 회사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두 형제 사이에 갈등이 빚어졌다. 어떻게 사업화를 할 것인지를 놓고 서로 의견이 엇갈린 것이다.
의사였던 존 켈로그는 맛을 떠나서 먹는 사람의 건강을 우선하는 건강식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맛을 내는 갖가지 첨가물을 최소화해서 순수한 곡식에 가까운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문자 그대로 동양의 선식에 가까운 식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동생인 윌 켈로그의 생각은 달랐다. 의사인 형보다는 경영자의 마인드가 더 강했기 때문인지 그렇게 만들면 사람들이 먹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아무리 건강에 좋은 식품이라도 소비자가 외면하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었기에 콘플레이크에 설탕을 첨가해서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는 식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몸에는 좋을지 몰라도 소비자가 먹기 힘들어 외면하는 철저한 건강식품을 만들 것인지 아니면 영양 성분보다는 소비자가 쉽게 먹을 수 있도록 맛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인지의 갈등이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환자 중심의 특화된 건강식품업체로 갈 것인지 대중을 상대로 한 식품회사를 지향할 것인지의 갈등이었다.
존과 윌 두 형제는 끝까지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따로따로 회사를 차렸다. 소비자의 기호에 맞춰 달콤한 맛을 비롯해 각종 첨가물을 넣어 맛있게 만들자고 주장했던 동생, 윌 켈로그가 만든 회사는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서 지금 우리가 아는 이름의 글로벌 식품회사가 됐다.
철저하게 소비자의 건강을 생각하는 건강식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형 존 켈로그 역시 별도로 식품회사를 만들었지만 동생만큼 사업적으로 성공하지는 못했다. 소비자의 기호에 맞춰 맛을 강조했던, 그리고 이를 통해 경영상의 이익을 추구했던 동생의 선택이 옳은 길이었을까? 아니면 이익보다는 건강식품을 필요로 하는 환자를 우선시했던, 그래서 인류의 건강실현이라는 이상을 추구했던 형의 판단이 옳았던 것일까?
물론 맛을 강조하지 않았다면 동생의 회사가 지금처럼 발전하지도 못했을 것이고 콘플레이크가 널리 보급되지 못했을 수 있다. 하지만 동생 회사만큼 경영상의 발전과 이익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형인 존 켈로그 박사 역시 세상에 뚜렷한 업적을 남겼다.
처음에는 동양의 선식에 가까웠을 만큼 건강식이었던 콘플레이크를 보급한 것은 물론이고 시대에 맞게, 그리고 상황에 따라 사람들의 영양 상태를 개선하는 데 기여한 식품을 만들어 공급했기 때문이다. 미국에 식물성 우유인 두유를 보급한 사람도 존 켈로그였다. 두유 자체는 동양의 식품이지만 동물성인 우유를 대신해 식물성 우유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두유를 마시도록 상품화했고 땅콩버터를 만들어 보급하는 데도 기여했다. 지금은 땅콩버터를 건강식품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겠지만 땅콩버터가 처음 나왔을 때는 상황이 달랐다. 20세기 초반, 버터조차 사먹기 힘든 가난한 사람들에게 땅콩버터는 식물성 고기였기 때문이다.
건강이냐, 맛이냐? 소비자가 먼저일까, 경영이 우선일까? 존과 윌 두 형제의 갈등 중 누구를 선택하는 것이 옳을까?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5호(2015년 0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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