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용 VS 사치, 제네바모터쇼의 두 얼굴

    입력 : 2015.04.10 17:54:05

  • 미국 디트로이트 모터쇼, 독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와 함께 세계 3대 모터쇼라는 타이틀을 지닌 스위스 제네바모터쇼가 열흘 동안의 일정을 마치고 지난 3월 15일 막을 내렸다. 매년 3월 유럽에서 가장 먼저 열리는 제네바모터쇼는 글로벌 자동차시장을 이끌고 있는 유럽 자동차메이커들의 경연장이다. 완성차메이커가 없는 중립국 스위스에서 열리는 만큼 ‘중립적인 모터쇼’로 명성을 쌓아왔다. 1931년 처음 열린 이후에는 전쟁 직후에도 적대국이었던 독일·프랑스 자동차가 나란히 전시됐을 정도다.

    사진설명
    제네바모터쇼는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스위스와 국경을 마주한 자동차 강국의 자동차메이커들이 자국 모터쇼 못지않게 공을 들여 볼거리가 풍성한 것으로 유명하다. 제네바 팔렉스포 전시장에서 지난 3월 15일까지 열린 제85회 제네바모터쇼에도 220여 개 완성차·부품업체가 900여 대의 자동차와 130여 종의 신차를 출품했다. 관람객은 총 68만2000여 명으로 제네바 인구 28만명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이번 모터쇼에서는 전기차를 앞세운 친환경 자동차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대신 실용성을 앞세운 내연기관 자동차가 치고 나왔다. 다른 한편에서는 슈퍼리치용 슈퍼카·럭셔리카 잔치가 펼쳐졌다. ‘극과 극’의 분위기가 형성된 셈이다.

    실용차, 주역 복귀 친환경차는 지난 몇 년간 세계적인 모터쇼를 휩쓸었다. 이번 모터쇼에서도 주요 메이커들이 친환경차를 선보였다. 그러나 대부분 획기적인 기술을 내놓지는 못했고, 구색 맞추기로 이미 공개된 모델을 전시하는 데 불과했다.

    대신 친환경차가 등장하기 전까지 유럽 자동차시장에서 각광받던 ‘실용’ 자동차가 다시 주역으로 돌아왔다. 실용차는 기존 해치백, 왜건 위주에서 크로스오버, 미니밴, 소형 SUV 등으로 다양해졌다. 이번 모터쇼에서 가장 눈길을 끈 모델은 르노가 세계 최초로 공개한 카자르다. 카자르는 르노삼성 QM3보다 크고 QM5보다 작은 준중형 크로스오버 모델이다. 리어시트는 60 대 40으로 접어 적재 공간을 넓힐 수 있고, 조수석 아래쪽에 있는 핸들을 조작해 작은 테이블을 만들 수 있다.

    독일 폭스바겐은 파사트 올트랙을 앞세웠다. 최저 지상고가 왜건형 모델인 파사트 바리안트보다 27.5㎜ 높고 4륜구동 시스템인 4모션에 오프로드 주행모드를 추가했다. 폭스바겐은 MPV(다목적차량)인 샤란·투란 신형 모델도 세계 최초로 선보였다. 독일 BMW는 MPV인 뉴 2시리즈 그란투어러를 공개했다. 차체는 작지만 3열 시트를 장착해 7명까지 수용할 수 있고 적재 용량이 1905ℓ에 달한다.

    이탈리아 피아트는 소형차인 친퀘첸토(500)를 기반으로 공간 활용도를 높인 도심형 크로스오버 모델인 친퀘첸토X를 출품했다. 9단 자동변속기와 4륜구동 시스템도 탑재했다. 크로스오버와 MPV에 초점을 맞춘 유럽 메이커에 맞서 아시아 메이커는 실용성을 강화한 소형 SUV를 내세웠다. 유럽에서 연평균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 소형 SUV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다.

    일본 혼다는 CR-V의 동생인 HR-V를 출품했다. 차체는 작지만 2열 시트를 접을 수 있고 시트 아랫부분을 위로 젖혀 짐 적재공간을 넓힐 수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르노 캡처(르노삼성 QM3), 닛산 쥬크 등 소형 SUV와 경쟁한다. 현대는 국내 판매에 들어간 신형 투싼을 월드 프리미어로 선보였다. 기존 모델보다 길어지고 넓어져 소형 SUV지만 중형 SUV인 싼타페에 버금간다. 휠베이스도 길어져 실내 공간이 넓어졌고 트렁크 적재용량도 커졌다. 쌍용도 유럽 소형 SUV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티볼리를 출품했다.

    카자르, 부가티베이런, 피아트500X
    카자르, 부가티베이런, 피아트500X
    슈퍼카·럭셔리카 잔치 열려 스위스는 슈퍼리치의 천국이다. 제네바모터쇼에서는 이들 슈퍼리치를 사로잡으려는 슈퍼카·럭셔리카 브랜드들의 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진다. 제네바모터쇼를 ‘슈퍼리치들의 놀이터’라고 부를 정도다. 이번 모터쇼에서도 슈퍼카·럭셔리카 브랜드들은 슈퍼리치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한정판 모델을 경쟁적으로 출품했다. 슈퍼리치만을 위한 파티를 열기도 했다.

    이탈리아 클래식카 생산업체인 부가티는 시속 430km를 넘겨 ‘세상에서 가장 빠른 차’라는 타이틀을 보유한 베이런을 전시했다. 베이런은 V8 엔진을 2개 연달아 붙인 W형상의 16기통 8.0ℓ급 엔진을 얹었다. 4개의 터보를 장착해 1001마력의 파워를 내뿜는다. 가격은 30억원 이상이다. 발진가속도(시속 0→100km 도달시간)는 2.5초다. 베이런은 450대만 한정 생산됐다. 이번에 전시된 차는 2005년에 처음 출시된 1호차와 마지막 차인 450호차다. 1호차 번호판에는 ‘001’, 450호차에는 ‘450’이라는 숫자를 넣었다. 슈퍼 스포츠카 브랜드인 람보르기니는 양산차 시리즈 중 가장 빠르며 가장 순수한 람보르기니로 평가받는 ‘아벤타도르 LP 750-4 슈퍼벨로체’를 세계 최초로 공개했다. 탄소섬유와 경량 엔지니어링을 통해 기존 아벤타도르 쿠페보다 무게가 50kg 줄었다. 자연흡기식 V12 엔진의 최고출력은 750마력으로 기존보다 50마력 향상됐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걸리는 시간은 2.8초이고 최고속도는 시속 350km 이상이다.

    롤스로이스는 팬텀 익스텐디드 휠베이스 세레니티 컬렉션을 공개했다. 팬텀 외관과 인테리어 곳곳에 벚꽃 모티브를 적용한 모델로 단 1대만 한정 판매된다. 실내는 벚꽃이 수놓인 최고급 실크로 장식됐다. 원재료인 명주실은 수세기에 걸쳐 최고의 명주실을 뽑아내고 염색해온 중국 장수성의 장인에게서 구했다. 자개는 벚꽃 모양으로 정교하게 디자인돼 뒷좌석 도어 우드패널 부분을 장식했다. 외관은 롤스로이스 역사상 가장 비싼 페인트로 도색됐다. 자개와 같이 각도에 따라 색깔이 오묘하게 달라진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플래그십 브랜드인 마이바흐는 4년 만에 부활한 지난해 마이바흐 S클래스를 선보인 데 이어 이번에 두 번째 모델인 풀만을 공개했다. 풀만 리무진은 6499㎜로 마이바흐 S600보다 1053㎜가 길다. 휠베이스는 4418㎜에 달한다. 전고는 1598㎜로 벤츠 S클래스보다 100㎜ 이상 더 높다. 엔진은 V12 6.0ℓ 트윈 터보를 장착했다. 최고출력은 530마력, 최대토크는 54.6kg·m다. 가격은 50만유로(약 6억1400만원)에서 시작된다. 개인 맞춤형태로 제작된 차량은 내년 초부터 구매자에게 전달된다.

    페라리는 488 GTB를 출품했다. 최고출력 670마력을 발산하는 3.9ℓ V8 엔진과 7단 듀얼 트랜스미션을 장착했다. 발진가속도는 3.0초, 최고속도는 시속 330km다. 애스턴마틴은 V12 7ℓ 가솔린 엔진을 장착한 후륜구동 스포츠카로 24대만 한정 생산되는 벌칸을 공개했다. 최고출력은 800마력이고, 최고속도는 시속 320km다. 가격은 24억원 정도다. 포르쉐도 미드엔진 쿠페에 기초한 GT 패밀리 최초의 고성능 스포츠카인 뉴 카이맨 GT4를 세계 최초로 공개했다.

    콘셉트카 아우디 프롤로그
    콘셉트카 아우디 프롤로그
    콘셉트카도 극과 극 콘셉트카도 실용과 사치에 초점을 맞춘 모델이 많았다. 실용을 대표하는 모델은 렉서스가 출품한 초소형 콘셉트카인 LF-SA다. 차명은 ‘Lexus Future Small Adventurer(미래의 작은 모험가)’를 뜻한다.

    무인 자동차가 미래 이동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는 상황에서 사람이 스스로 운전하는 기쁨을 표현한 스테디 모델이다. 프랑스 니스에 거점을 둔 디자인 스튜디오 ED2(ED 스퀘어)가 디자인했다. 인피니티는 프리미엄 콤팩트카인 QX30 콘셉트를 공개했다. 크로스오버 고유의 높은 전고와 쿠페 특유의 날렵한 라인을 결합했다. 차량 앞쪽에는 알루미늄 트림 범퍼를, 뒤쪽에는 엔진 하부를 보호하는 스키드 플레이트를 각각 장착했다. 차량 무게를 줄이면서 주행 성능을 향상시키기 위해 루프바 지지대에 탄소섬유를 사용했다. 휠스포크는 다양한 색감을 혼합한 3차원 가공 알루미늄을 적용했다. 기아는 강력한 동력 성능과 효율적인 공간 활용성을 동시에 추구한 콘셉트카인 스포츠스페이스를 내놨다. 1.7 터보 디젤엔진, 소형 전기모터, 48V 배터리와 컨버터가 탑재된 ‘T-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적용했다. 전장×전폭×전고는 4855×1870×1425㎜로 K5보다 길고 넓다. 호랑이 코 형상 그릴과 아이스큐브 타입 LED 헤드램프가 간결하면서도 강인한 인상을 준다.

    슈퍼·럭셔리 콘셉트카 대표주자는 미국의 유력 자동차 매체인 오토블로그가 ‘제네바모터쇼 최고의 차’로 선정한 고성능 2인승 모델인 벤틀리 EXP10 스피드6다. 벤틀리 외관 및 선행 디자인 총괄 책임자로 부임한 한국인 디자이너인 이상엽 디렉터가 벤틀리 합류 이후 진행한 첫 번째 프로젝트 결과물이기도 하다.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한 수공예 기술과 최첨단 현대 기술이 조화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았다. 짧은 전면 오버행, 긴 보닛, 낮은 그릴, 넓은 후면 등으로 근육질의 비율을 추구했다. 3D 메탈 프린팅 기술을 통해 그릴 메시, 배기구, 도어 핸들, 측면 통풍구 등을 정교하게 디자인했다.

    아우디는 럭셔리 플로그인 하이브리드 콘셉트카인 프롤로그 아반트를 출품했다. 5도어 모델로 전폭은 5110㎜, 전폭은 1970㎜이다. 운전자와 탑승객 3명이 인포테인먼트 설계와 커넥트 기술로 지원되는 디지털 커넥티드 사양을 즐길 수 있다. 3.0 TDI 디젤 엔진과 전기모터가 결합돼 455마력의 힘을 발산한다. 발진가속도는 5.1초다.

    애스턴마틴은 사륜구동 전기차인 DBX 콘셉트를 깜짝 공개했다. 대표 모델인 DB에 사륜구동을 뜻하는 X를 붙였다. 뒤로 젖혀진 헤드램프와 둥근 모양의 안개등을 적용했다. 네 바퀴에 각각 모터를 물려 4명이 탈 수 있고, 바닥이 높아 비포장길 주행 성능도 확보했다.

    [제네바 최기성 매경닷컴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5호(2015년 0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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