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프라이드 치킨이 흑인 소울푸드인 까닭

    입력 : 2015.03.06 15:5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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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아버지 치킨의 고향은 미국 남부의 켄터키(Kentucky) 주다. 여기에 두 가지 사실이 숨어 있다. 첫째, 프라이드 치킨은 켄터키를 비롯한 미국 남부지역에서 발달한 음식이다. 프라이드 치킨이 왜 하필 미국 남부에서 발달했을까. 둘째, 흑인 노예들이 먹었던 음식이다. 인자한 백인 할아버지가 모델로 등장하니 얼핏 백인 중산층의 요리 같지만 사실은 가난한 흑인의 음식이었다. 프라이드 치킨을 왜 흑인들의 음식이라고 하는 것일까. 소울 음악(Soul Music)은 흑인 노래에서 비롯됐다. 흑인 노예들이 부르던 노래에 절망적인 영혼의 울림이 담겨 있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프라이드 치킨을 소울 푸드(Soul Food)라고 한다. 소울 음악처럼 닭튀김에도 노예시절 흑인이 겪었던 고달픈 삶과 인생의 애환이 고스란히 녹아 있기 때문이다. 프라이드 치킨이 우리 입속으로 들어오기까지 도대체 어떤 과정을 겪었던 것일까.



    스코틀랜드서 유래된 흑인들의 닭튀김 프라이드 치킨은 무척이나 복잡한 음식이다. 미국 노예제도와 흑백 인종차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리고 18~19세기 미국 남부 경제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뿐만 아니라 미국 이민사, 특히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이민 역사와도 관계가 있다. 미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현상이 서로 얽히고설키며 만들어진 것이 프라이드 치킨이다. 미국의 닭고기 요리에는 계보가 있다. 우리나라 김치가 전라도, 경상도처럼 지역에 따라 맛의 차이가 있는 것과 비슷하다. 동부지역에서는 주로 장작불에 굽는 통닭구이, 즉 로스트(Roast) 치킨을 즐겨 먹는다. 반면 남부지방에서는 닭고기를 기름에 튀기는 닭튀김, 프라이드 치킨을 좋아하는데 이렇게 지역에 따라 요리법이 달라진 데는 이유가 있다.

    통닭구이는 영국 잉글랜드 지방에서 발달한 조리법이고 닭튀김은 추운 스코틀랜드의 음식이다. 영국인이 신대륙 미국으로 건너왔을 때 잉글랜드 출신은 주로 동부지방, 스코틀랜드 출신은 남부지방에 정착했다. 프라이드 치킨이 미국 남부에서 발달하게 된 기본적인 배경이다. 닭고기를 숯불에 굽지 않고 기름에 튀기는 조리법의 바탕은 영국 스코틀랜드 지방의 음식문화지만 이런 요리법을 오늘날의 프라이드 치킨으로 발전시킨 주인공은 미국 남부의 흑인들이다. 아프리카 출신 흑인들이 노예로 팔려오면서 농장 주인집의 주방일 역시 흑인 하녀의 몫이 됐다. 주인의 입맛에 맞춰 닭고기를 조리하다보니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닭고기를 지지거나 튀겼다. 동시에 자신들이 먹는 닭고기 역시 주인집 주방에서 배운 대로 튀김으로 요리했다. 물론 손에 익은 조리법이기도 했지만 튀기지 않으면 안 됐기 때문이다. 노예인 흑인 하녀들이 자신과 가족을 위해 요리했던 닭고기는 제대로 된 닭이 아니었다.

    백인 주인들이 먹지 않고 버리는 부위를 가져다 요리했다. 이를테면 닭 모가지, 닭발, 닭 날개 등이다. 지금은 치킨 윙인 닭 날개가 콜라겐도 풍부하고 맛도 좋다며 환영받지만 예전에는 먹지 않고 버리거나 기껏 육수를 만드는 데 쓰였다. 냉장고도 없던 시절, 쉽게 상하는 이런 버리는 부위를 가져와 요리했으니 튀기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이 때문에 스코틀랜드의 튀기는 조리법에다 아프리카에서 했던 방식대로 양념을 만들고 들판에서 얻은 자연산 허브인 향신료를 뿌려 먹음직스런 프라이드 치킨을 만들었다.

    프라이드 치킨이 흑인의 음식이 됐던 또 다른 이유는 흑인이 먹을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단백질이 닭고기 이외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노예 시절, 주인이 키울 수 있도록 허락한 유일한 가축이 닭이었다. 노예에서 해방된 이후에도 재산이라고는 없어 계속 하인으로 생활해야 했던 흑인들은 닭 이외에 다른 동물은 사육할 수 없었다. 소를 키우려면 풀을 베어다 먹일 초지가 있어야 하고 돼지를 키우려고 해도 사료로 쓸 도토리나 옥수수, 감자가 있어야 했다. 아니면 하다못해 음식 찌꺼기라도 풍부해야 했지만 흑인들은 자신들이 먹을 것도 넉넉지 못했다. 그러니 유일하게 농장 주인이 허락한 닭 이외에는 키울 수가 없었기에 닭이 최고의 단백질 공급원이 됐던 것이다. 자신들이 먹기 위해 요리할 수 있는 고기는 닭밖에 없었기에 흑인들은 정성을 다해서 닭고기를 튀겼고 어느 음식보다도 맛있게 요리했다. 흑인들이 프라이드 치킨 요리법을 발달시킨 배경이다.



    풍부한 돼지기름이 딥 프라이드 조리법 만들어 프라이드 치킨은 기름에 재료를 깊게 담가서 튀긴다. 이른바 딥 프라이드(Deep-Fried) 방식이다. 이런 요리법은 예전부터 있었을 것 같지만 18~19세기 이후 미국 남부에서 시작됐다. 남부의 농업경제가 만들어낸 결과다. 프라이드 치킨의 발달은 엉뚱하게 양돈업과 관련이 깊다. 지금은 튀김요리를 할 때 올리브유를 비롯한 고급 식용유를 사용한다. 이전에는 식물성 콩기름인 대두경화유를 썼고 그 이전에는 동물성인 돼지기름, 라드(Lard)로 튀겼다. 이 돼지기름 덕분에 새로운 튀김 요리법인 딥 프라이드 방식이 생겼다. 남부의 전통 튀김요리법은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전을 부치듯이 고기를 지지거나 기름을 조금 많이 붓고 튀기는 방식이다. 예전 우리나라에서 고기나 전을 부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름이 귀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지금처럼 기름에 재료를 푹 담그는 딥 프라이드 방식으로 조리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미국 남부 경제가 조리법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 농업이 발달한 남부에서는 주로 흑인 노예를 이용해 면화와 땅콩, 옥수수를 재배했다. 그 결과 농업 부산물이 많이 생겼고 돼지에게 먹일 사료가 풍부해졌기 때문에 부수적으로 양돈업이 발달했다.

    일반적으로 미국은 스테이크가 발달했다. 이 때문에 예전부터 소를 중심으로 한 목축업이 발달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카우보이가 소떼를 몰고 초원을 가로지르는 서부영화도 한몫했다. 하지만 실제 18~19세기 미국 남부는 양돈업이 중심이었다. 소에게 먹일 초원의 풀보다 돼지사료인 옥수수, 땅콩이 많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켄터키 주의 별칭이 ‘돼지고기의 고향’이었을 정도다. 할아버지 치킨이 켄터키에서 비롯된 것도 돼지와 관련이 있다.

    양돈업이 발달하니 부산물로 돼지기름이 풍부해졌다. 덕분에 예전처럼 프라이팬에 두르는 기름을 아껴가며 요리를 할 필요가 없어졌다. 펄펄 끓는 기름에 재료를 푹 담아 고온에 순간적으로 튀기는 요리법이 발달했다. 순간적으로 튀길 때는 연한 닭고기가 더 어울린다. 그러니 어린 영계를 튀겼고 그 결과 프라이드 치킨이 더 맛있어졌다. 미국 남부의 경제구조가 프라이드 치킨 발전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남부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도 프라이드 치킨이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 남북전쟁이 끝나고 노예제도가 폐지됐어도 흑인은 여전히 심각한 인종차별에 시달리며 살아야 했다. 특히 남부지역에서는 일요일이나 성탄절을 비롯한 명절에도 흑인은 레스토랑에 들어갈 수 없었다. 남부 여러 주에서 흑백분리 정책을 실시했기 때문에 백인이 다니는 레스토랑을 흑인은 일체 이용할 수 없었다.

    흑인 전용 레스토랑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흑인은 집에서 스스로 음식을 만들어야 했다. 일요일 예배가 끝난 후 가족들과 외식을 하거나 야외로 나들이를 갈 때, 혹은 멀리 여행을 갈 때면 특별히 튀긴 닭고기를 준비했다. 프라이드 치킨은 흑인 주부들이 어떤 요리보다도 잘 만들 수 있는 음식이다. 게다가 더운 날씨에 잘 상하지도 않고 용기에 담아 이동하기도 편했다. 남부 흑인 가정에서 프라이드 치킨이 발달한 또 다른 이유이고 프라이드 치킨이 소울 푸드가 된 까닭이다.

    노예시절, 그리고 하녀시절 어머니가 주인집에서 버리는 닭고기 부위를 주워다 눈물로 튀겨주었던 음식, 가난하지만 가족이 모두 손잡고 예배당으로, 혹은 피크닉 갈 때 준비했던 음식이었기에 흑인들은 프라이드 치킨에서 어머니의 손맛을 떠올린다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백인은 프라이드 치킨이 아무리 맛있어 보여도 군침을 삼키며 참아야 했다. 흑인들이 먹는 음식이었기에 20세기 이전까지 백인들은 체면 때문에 대놓고 먹기가 쉽지 않았다. 백인이 주위의 눈치를 보지 않고 프라이드 치킨을 먹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0년 남짓이다. 20세기에 들어서야 비로소 흑인 음식이라는 인식이 희미해졌기 때문이다. 프라이드 치킨 한 조각이 입속으로 들어오기까지의 과정이 꽤나 복잡했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3호(2015년 0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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