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정선 교수의 중국문명 기행] (14) 한·중합동 시집 발간과 남경대학살의 망각을 거부하는 몸짓

    입력 : 2015.01.08 14:54:34

  • 남경대학살기념관
    남경대학살기념관
    남경(중국어 발음 ‘난징’) 대학살에 대해 내가 구체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2014년 4월 ‘아이리스 장’과 ‘존 라베’란 이름을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남경대학 외국인 아파트에 숙소를 정하고 광저우(廣州) 주변을 어슬렁거릴 때 가까운 길거리 모퉁이에 자리 잡은 라베기념관을 우연히 발견하고 들어갔다가 두 사람의 이름을 접하게 되었던 것이다. 라베기념관에서 나는 미국에서 태어난 중국계 미국인인 ‘아이리스 장(Iris Chang)’은 남경대학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난징의 강간(The Rape of NanKing)>을 쓴 사람이며, 1937년 일본군이 남경을 점령했을 때 ‘난징국제위원회’ 회장이었던 ‘존 라베(John Rabe)’는 남경의 ‘오스카 쉰들러(Oskar Schindler)’로 불릴 정도로 수많은 중국인의 목숨을 구한 인물이란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남경대학살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또 다른 일이 우연히 일어났다. 지난해 6월 강소성 작가협회의 판샤오칭(笵小靑) 주석과 시가위원회 위원장인 쯔촨(子川) 선생이 나를 찾아와 남경대학살을 모티브로 한 ‘한·중합동 시집’을 엮고 싶은데 한국 측 책임자가 되어줄 수 없느냐는 부탁을 했던 것이다. 두 분은 2014년이 남경대학살 77주년이 되는 해라는 점과, 일본의 역사 부정과 왜곡이 날로 심해지고 있다는 점과,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한·중문화교류를 특별히 강조한 점 등을 이야기하면서 ‘한·중합동 시집’을 엮자고 나를 설득했고 나는 이 제안에 흔쾌히 동의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지난해 12월 5일에는 한국과 중국의 대표적 시인들이 참여하여 만들어진 <망각을 거부하며(拒絶遺忘)>라는 시집이 간행되었으며 이 자리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요지의 이야기를 했다.

    이번 한·중합동 시집은 남경대학살 77주년을 맞아 기획되었습니다. 한·중 양국은 20세기 초반에 이웃 나라인 일본으로부터 도저히 잊어버릴 수 없는 폭력과 치욕을 겪었습니다. 일본의 근대적 문명화를 이끈, 일본의 1만엔짜리 화폐에 그려져 있는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는 청나라와 조선의 수구파 정권이 야합하여 김옥균의 시체를 능지처참한 사건을 두고 문명에 반하는 야만적 행위로 규탄했습니다. 그러면서 문명국 일본이 야만국 조선을 정벌하여 교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을 뿐만 아니라 청·일전쟁 시에는 야만국 청나라를 이겨야 한다며 사비를 털어 국가에 헌납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문명국 일본이 남경을 침략했을 때 저지른 학살과 폭력이나 관동대진재 때에 자행한 조선인 학살과 수용소 격리는 문명국이란 단어를 무색하게 만드는 행위였습니다. 인류발전의 역사를 원시시대로 되돌리는 야만적 행태였습니다.

    (왼쪽)존 라베가 살았던 집 (남경대학 라베기념관) (오른쪽)한·중합동 시집 표지
    (왼쪽)존 라베가 살았던 집 (남경대학 라베기념관) (오른쪽)한·중합동 시집 표지
    우리 인간은 기억을 할 수 있는 능력과 망각을 할 수 있는 능력이 균형을 이룰 때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좋은 일은 오랫동안 기억하고 나쁜 일은 세월 속에 묻어버려야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세기에 일본은 한·중 양국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도저히 잊어버릴 수 없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잊어버릴 수 없는 끔찍한 폭력과 치욕에 대한 기억을 심어놓았습니다. 마치 저 아득한 세월 이전의 어느 기마민족이 한 도시를 점령하여 약탈하고 유린하는 모습을 연상하게 만드는 살인, 약탈, 강간, 시체유기를 저질렀습니다. 그리하여 당시 일본정부가 주도한 이 같은 사건에 노출된 한·중 양국의 많은 사람들은 잊어버릴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습니다. 그들은 영원히 망각의 권리를 박탈당하고 고여서 흐르지 않는 시간을 고통스럽게 간직하며 살아야 하는 불행한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한·중 양국 시인들이 남경대학살 77주년을 계기로 엮어내는 이번 합동 시집을 저는 고여서 흐르지 않는 시간을 향한 진혼가라고 명명하고 싶습니다. 아무 죄 없이 도살당한 사람들을 위한 진혼가, 폭력의 직접적 피해자로 평생 동안 불구의 세월을 보냈던 사람들을 위한 진혼가, 가족의 참혹한 상처를 옆에서 지켜보며 함께 흐느껴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을 위한 진혼가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이런 점에서 한·중 양국 시인들이 남경대학살 77주년을 계기로 엮어내는 이번 합동 시집을 저는 고여서 흐르지 않는 시간을 향한 진혼가들이라고 명명하고 싶습니다. 아무 죄 없이 도살당한 사람들을 위한 진혼가, 폭력의 직접적 피해자로 평생 동안 불구의 세월을 보냈던 사람들을 위한 진혼가, 가족의 참혹한 상처를 옆에서 지켜보며 함께 흐느껴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을 위한 진혼가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당나라의 시인 이하(李賀)가 ‘한스러운 내 피는 무덤 속에서도 천년을 푸르리라(恨血千年土中碧)’라고 했던 것처럼 땅 속에 내팽개쳐져서 한스럽게, 푸르게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진혼가인 것입니다. 동시에 저는 이 합동 시집이 망각을 거부하는 시간에서 비롯된 분노와 증오의 표출이 아니란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가해자에 대한 분노와 증오는 상처를 다독이며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덧나게 만들 따름이어서 망각을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기억을 망각의 시간으로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시간 속에 불러들여 더욱 생생하게 만듭니다. 이 합동 시집은 제목에도 불구하고 망각을 거부하려는 의지로 충만한 것이 아니라 망각할 수 있게 만들어달라는 간절한 소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간절한 소망은 가해자를 향한 어떤 엄청난 요구나 협박이 아니라 제발 그런 일이 없었다고는 하지 말아달라는 부탁, 과거의 잘못에 대해 이해와 용서를 비는 태도를 제대로 한번만이라도 보여달라는 당부인 것입니다. 저는 이런 양국 시인들의 모습 속에서 1937년 일본 감옥에서 간수에게 ‘사해동포(四海同胞)’라고 써준 중국인 유학생 정사선(鄭士選)과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고 다짐했던 윤동주가 1945년 일본 감옥에서 죽은 사실을 떠올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합동 시집은 죄 없이 죽어간 사람들에 대한 슬픔의 노래이며, 사실을 부정하고 왜곡하는 가해자에 대한 연민의 노래이며, 우리 모두가 국경을 넘어 다정하게 지낼 수 있기를 기원하는 사랑의 노래입니다.

    남경대학살기념관 내부
    남경대학살기념관 내부
    우리가 같은 인간이란 사실을 부끄럽게 만든 남경대학살 사건은 그 규모의 엄청남과 그 내용의 야만성에도 불구하고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의 냉전체제 속에서 잊혀져 가고 있었다. 국제적으로는 미국과 일본이 밀착된 우호관계를 과시하는 상황 속에서, 국가적으로는 중국의 경우 공산주의 혁명 사업에 몰두하고 일본의 경우 과거 은폐 작업을 조직적으로 진행하면서,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여성들의 치욕을 숨기게 만드는 동아시아 문화와 끔찍한 기억을 되살리고 싶지 않는 심리가 작용하면서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혀져 가고 있었다. 이러한 남경대학살 사건을 정밀하게 조사하여 움직일 수 없는 증거들로 구성된 뛰어난 증언록 <난징의 강간>을 내놓음으로써 이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교정한 사람이 바로 ‘아이리스 장’이었다. 그리고 남경에서의 선량한 행동과 정의로운 행동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수난의 생애를 보내고 있던 ‘존 라베’의 모습을 올바른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알린 것도 아이리스 장이었다. 아이리스 장에 따르면 1938년에 남경에 있었던 일본군 아즈마 시로는 자신의 일기에 “난징에서는 돼지의 값어치가 중국인의 값어치보다 높다. 돼지는 먹을 수라도 있으니까”라고 썼다. 또 자신들이 먼저 한 가족의 여자들을 윤간한 후 아버지에게 딸을, 오빠에게 여동생을, 아들에게 어머니를 강간하라고 강요하고 말을 듣지 않으면 죽였다. 이런 일들에 대해 한 일본군은 후일 “강간할 때는 여자로 보였지만 죽일 때는 사람이 아니라 돼지로 보였다”고 회고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존 라베가 일본대사관에 보낸 항의 편지에는 자신이 관할하는 안전지대에 피신한 중국인들 역시, 목숨은 부지했지만 일본군의 무차별적 강간으로부터 안전하지 못했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는 항의 편지에서 “어제 동틀 무렵 신학교에 있던 몇몇 여성이 사람들, 심지어 아이들까지 가득 차 있는 커다란 방 한가운데서 강간을 당했습니다. 우리 22명의 서양인이 20만명의 중국 민간인을 먹이고 밤낮으로 보호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라고 썼다.

    남경에서 일본군은 수만명·수십만명의 중국인 포로들을 관리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학살했으며 그에 버금가는 수의 여성들을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강간했다.

    그랬음에도 이러한 사실을 목격하고 기록하고 찍어서 독일로 돌아가 히틀러에게 보고한 ‘존 라베’는 오히려 박해받고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고, 후에 과거의 진실을 파헤쳐서 책으로 쓴 ‘아이리스 장’은 사실에 직면하면서 느꼈던 인간성에 대한 절망과 일본 우익들의 공갈 협박에 시달리다 못해 자살했다. ‘아이리스 장’의 <난징의 강간>이란 책 제목을 우리나라에서 <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라는 제목으로 바꾸어 놓은 것은 아마도 이런 사정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아이리스 장’은 자신의 책을 쓰면서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과거를 되풀이한다”는 조지 산타야나(George Santayana)의 경고를 늘 마음에 새겼다고 말했다. 그런데 일본의 유명한 우익 정치인 이시하라 신타로는 미국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난징대학살은 “중국이 꾸며낸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에게 2014년 3월에 개봉된 플로리안 갈렌베르거 감독의 <존 라베-난징대학살>이란 영화는 아마도 혐오스러운 거짓말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일본은 여전히 과거를 되풀이하고 있다.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진정으로 존경받기 위해서는 과거를 올바르게 후손들에게 가르쳐서 그러한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아베 총리가 이끄는 일본은 과거의 수치스러운 행태를 은폐하는 우익의 편에 서서 동아시아는 불안이 증폭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역사는 과연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2호(2015년 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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