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규현의 ‘그림값 방정식’] (13) 미술품 가격을 높이는 컬렉터라는 변수

    입력 : 2014.12.19 14:15:25

  • 지금까지 연재한 글에서 공통적으로 강조한 것은 미술작품의 가격을 정할 때엔 캔버스 위에 그려진 그림 자체 외에도 많은 외적인 요소, 즉 무형의 가치가 영향을 끼친다는 점이다. ‘누가 그린 어떤 그림인가’ ‘얼마나 좋은 그림인가’는 그림값 방정식에서 하나의 변수에 불과하다. 다른 많은 변수가 최종가격에 영향을 끼친다. 소장기록, 전시기록, 판매 당시 시장의 상황, 딜러, 컬렉터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현대미술시장으로 올수록 이 중에서 ‘컬렉터’라는 변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진다. 그림 가격이 최종 정해질 때에는 누가 가지고 있던 것이며 누가 사느냐가 크게 영향을 끼친다는 얘기다.
    마야사 빈  하마드 알 사니 (세계 미술계의 큰손)
    마야사 빈 하마드 알 사니 (세계 미술계의 큰손)


    누가 가지고 있었고 누가 사고 이것을 제일 잘 보여주는 예가 2011년에 약 2억5000만달러에 거래된 것으로 알려진 폴 세잔(Paul Cezanne, 1839~1906)의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1892~1893년 작)이다. 이 그림은 그리스의 선박왕 게오르게 엠비리코스가 가지고 있었던 것인데 그가 죽기 직전인 2011년 말 시장에 나와 카타르 왕족에게 팔렸다. 거래가격인 2억5000만달러는 당시 환율로 약 2622억원이며, 지금까지 거래가격이 알려진 미술작품 중 가장 비싼 것이다.

    후기 인상파 작가인 세잔은 피카소가 ‘우리 모두의 아버지’라고 했을 만큼 역사적으로 중요한 작가다. ‘사과’ ‘생트빅투아르산’과 함께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은 세잔이 좋아했던 대표적인 소재다. 하지만 이 사실만으로 이 작품이 3000억원 가까이 가치를 갖는 것은 아니다.

    이 그림은 누가 가지고 있었고, 이 그림과 비슷한 그림을 누가 가지고 있고, 그래서 결국 이 그림을 누가 샀는지, 하는 ‘컬렉터’의 변수 때문에 이렇게 초고가에 팔려 세계 최고가 그림 기록을 세울 수 있었다.

    세잔이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이라는 소재를 좋아했지만,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이 전체 장면으로 완성된 것은 딱 다섯 점이 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파리 오르세 미술관, 런던 코톨드 미술관, 미국 필라델피아 반스 재단 미술관에 하나씩 있고, 한 점만 그리스의 선박왕인 엠비리코스에게 소장되어 있었다. 세계적인 미술관들이 대표적 소장품을 시장에 내놓을 리가 없기 때문에, 이 다섯 점 중 시장에 나올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바로 엠비리코스의 것이었다.

    이 그림이 진짜 시장에 나왔다. 이 그림 한 점을 가지면 그 미술관은 오르세 미술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과 같은 수준에 오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이런 소장 가치를 가진 그림이라도, 기꺼이 그 그림을 그렇게 비싸게 사야 할 이유가 있는 컬렉터가 없으면 가격은 형성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 그림의 최종 가격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바로 이 그림의 구매자인 카타르 왕족이다. 그중에서도 현 국왕(타밈 빈 하마드 알 사니)의 여동생인 마야사 빈 하마드 알 사니 공주가 미술작품 구매에 결정적 권한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알 사니 공주는 포브스(Forbes)지가 선정한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명’에 들어가는 인물이다. 현재 카타르미술관위원회 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세계 미술시장에서 둘째라면 서러워할 ‘큰손’이다.

    약 2622억원에 팔려 세상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 그림 기록을 세운 세잔의
    약 2622억원에 팔려 세상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 그림 기록을 세운 세잔의
    초고가 가격 만든 카타르 왕족 카타르는 1인당 GDP가 세계 2위인 부국이며, 아랍의 대표적 언론인 알자지라방송의 본부가 있는 곳이고, 2022년에 월드컵을 개최하는 나라다.

    이 나라가 2015년 카타르 국립미술관 재개관을 앞두고 세계 최고 수준의 작품을 모으고 있다. 카타르가 아무리 부국이라도 문화수준이 미국, 영국, 프랑스에는 미치지 못하는 나라인데,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 한 점을 구매함으로써 오르세 미술관이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수준의 컬렉션을 갖게 되는 것이니, 카타르 왕족이 치른 3000억원 가까이 되는 돈은 비싼 게 아니었다. 다른 모든 물건과 마찬가지로, 미술작품의 가격은 결국 ‘사는 사람의 뜻’이 가장 중요하다. 어떤 새로운 작가가 등장하거나, 어떤 작가의 새로운 미술작품이 나오면 작가와 딜러가 어느 가격에 작품을 내놓을지를 정한다.

    이때 가격 방정식에 들어갈 수 있는 여러 요소들을 고려한다. 이 작가의 경력, 과거 판매기록, 작품의 중요성, 당시의 시장상황 등이다. 그런데 실제 그 작품이 그 가격에 팔리느냐 안 팔리느냐는 ‘그림을 사는 사람들’에게 달려 있다.

    정해놓은 가격에 팔리지 않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웃돈을 주고서라도 사겠다며 사람들이 줄을 서는 작품도 있다. 그래서 결국 최종가격은 ‘불특정 다수의 미술 컬렉터들이 기꺼이 지불하겠다고 동의한 액수’가 된다.

    최근 몇 년 사이 세계 미술시장에서 큰손으로 활약하는 대표적인 그룹은 중동의 왕족들이다. 특히 카타르 왕족이 초고가 그림의 거래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 거래는 이 사실을 아주 잘 보여줬다.

    동시대 미술의 취향 결정 과거에는 미술 평론가들이 역사에 남을 작가에 대해 평가하고, 그 시대의 미술 애호가들의 취향에 영향을 끼쳤다.

    ‘인상파’ ‘야수파’ ‘입체파’ 같은 이름을 붙여줘 그 시대의 미술경향을 역사 속에 남기기도 했다. 지금 동시대의 미술 취향을 결정하는 역할을 컬렉터가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6년 베니스의 ‘팔라조 그라시’에서는 세계적 컬렉터인 프랑수와 피노(Francois Pinault)의 컬렉션이 공개되는 첫 전시가 열려 세계 미술계의 관심을 한눈에 받았다.

    프랑수와 피노는 세계 매출 1위의 경매회사 크리스티의 회장이자 명품 브랜드를 여러 개 가진 세계적인 사업가다.

    이때 그의 전시장인 궁전 앞에는 제프 쿤스의 대형 조각 ‘풍선 개’가 전시되어 지나는 사람들의 눈을 붙들었다. 알루미늄으로 만든 ‘풍선 개’는 제프 쿤스가 현대인들을 향해 ‘즐거움을 느끼는 것에 죄책감 가지지 마라’고 선언하는, 심각한 주제를 담았으면서도 외형은 장난 같은 작품이다. 워낙 특이한 작품이라 당시까지만 해도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컬렉터인 피노 회장이 베니스에서 열린 자신의 컬렉션 전시에서 당당하게 건물 앞에 내놓음으로써 이 작품도 덩달아 엄청난 권위를 얻게 되었다. 피노 회장 같은 컬렉터가 어떤 미술작품을 좋아하는지에 따라 세계 미술애호가들의 취향과 시장은 영향을 받는데, 그가 이렇게 완전히 현대미술에 빠져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은 의미가 컸다.

    사치 갤러리(영국)
    사치 갤러리(영국)
    영국 미술작품 가격 올린 찰스 사치 오늘날 세계 현대미술시장에서 ‘말도 안 되게 보이는 엽기적 작품’의 가격을 올린 주인공으로 영국 컬렉터 찰스 사치(Charles Saatchi)를 빼놓을 수 없다. 광고홍보사 사치앤사치(Saatchi & Saatchi)의 공동설립자인 그는 사업이 크게 성공하자 미술 컬렉팅을 집중적으로 했다.

    1985년에 영국 최고의 사립미술관인 ‘사치 갤러리’를 세웠는데, 여기에서 처음엔 미국 현대미술 유명작가들로 전시를 시작했다.

    그런데 점차 영국 작가들로 옮겨가더니, 1997년에는 영국 젊은 작가들의 엽기적인 작품들을 모아 ‘센세이션(Sensation)’이라는 전시를 해 큰 화제가 되었다.

    그가 수집한 당시 영국 젊은 작가들이 바로 데미언 허스트, 사라 루카스, 제니 사빌, 레이첼 화이트리드, 트레이시 에민 등으로, 이들은 이른바 YBA(Young British Artists)라는 그룹으로 역사에 자리 잡았다.

    찰스 사치는 이 중 대표적 작가인 데미언 허스트가 상어를 어항 속에 박제한 조각작품인 ‘상어(원제 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 (1991년 작)를 5만파운드에 선뜻 구입해서 2004년에 뉴욕의 다른 컬렉터 스티븐 코헌에게 1200만달러에 판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미국 현대미술이 휩쓸었던 1990년대에 영국 젊은 현대미술 작가들을 세계무대에 올려놓고, 이들의 작품가격을 천정부지로 솟게 만들었다. 미술시장의 역사는 컬렉터가 작품을 살 때가 아닌, 팔 때 씌여진다는 말이 있는데, 찰스 사치는 그것을 여러 번 입증했다.

    과거에도 서양에서 전통적으로 컬렉터들은 미술의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00년대 초 파리에 살고 있었던 거트루드 스타인이라는 미국의 여성 컬렉터는 당시 피카소와 마티스가 힘겹고 가난한 젊은 화가로 있을 때 이들을 알아보고 제일 먼저 사기 시작해 이들이 미술사에 중요한 화가로 자리 잡는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비슷한 시기 미국 뉴욕에서는 거트루드 밴더빌트 휘트니라는 부자 여성이 미국의 젊은 작가들 작품을 사 모으고, 이 작품들로 ‘휘트니미술관’이라는 미국미술 전문 미술관을 만들었다. 유럽 근대미술 대가들의 폭풍 속에서 사라질 뻔한 미국 20세기 초반 작가들을 역사 속에 자리 잡게 해주었다.

    이렇게 과거의 컬렉터들은 미술사를 설정하는 데 영향을 끼쳤지만, 시장에서 큰손 노릇을 했다든지, 시장의 취향을 좌지우지한 것은 아니었다. 나중에 궁극적으로 이들이 수집했던 화가들이 비싼 화가가 되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20세기 후반부터 지금까지 컬렉터들은 미술사적인 영향보다는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크다.

    미술시장의 궤도를 바꾸고 동시대 사람들의 미술 취향에 영향을 주고, 미술작품 가격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하면서 말이다.

    [이규현 이앤아트(enart.kr) 대표]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1호(2014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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