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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현의 ‘그림값 방정식’] (12) 미술사에 남을 ‘글로벌 아이콘’의 힘
입력 : 2014.11.07 11:3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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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콘’이라 불릴 수 있는 대표적 그림인 뭉크의 <절규>.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1258억원에 낙찰되었다.
개인거래로 2013년 1626억원에 팔린 피카소의 유화 <꿈>.
가격을 들으면 놀라 턱이 빠질 만큼 비싸게 거래된 미술작품들이 있다. 이런 작품들 중엔 바로 이런 ‘글로벌 아이콘’에 들어갈 수 있는 대표적 이미지들이 월등하게 많다.
피카소(1881~1973년)는 입체파로 서양미술사에 이름을 새긴 화가다. 입체파는 사물을 한 곳에서 바라본 시점이 아닌 여러 곳에서 바라본 시점으로 그린 그림이다. 원근법도 무시했다. 그래서 마치 입체적인 사물이나 사람을 찌그러트려서 평면 위에 붙인 것처럼 보이게 그렸다. 르네상스 미술 이후 400년 동안 지켜지던 그림의 규칙을 파괴했다. 피카소는 이런 입체파를 시작한 사람이며, 그의 입체파 경향 작품들은 1907~1912년에 그려졌다.
그런데 현대의 미술시장에서 피카소 작품 중 거래가격이 알려진 것으로 가장 비싸게 팔린 것은 <꿈>이라는 1932년 작품이다. 피카소의 28세 연하 애인인 마리-테레즈 월터를 그린 초상화로, 2013년 개인거래를 통해 약 1626억원(1억5500만달러)에 팔렸다. 두 번째로 비싼 피카소 작품도 마리-테레즈를 모델로 한 같은 연도의 그림 <누드와 푸른 잎사귀와 흉상>(약 1117억)이다. 왜 ‘입체파 그림’이 아닌 이 여인의 그림이 피카소의 가장 비싼 그림 기록을 찍었을까? 우선, 피카소의 작품으로 역사상 가장 의미가 있는 입체파 작품은 대부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어서 나올 수 있는 작품이 별로 없다는 게 첫 번째 이유가 될 수 있다. 그 다음으로 꼽을 수 있는 이유는 <꿈>이 가진 ‘글로벌 아이콘’적인 요소다. 피카소는 입체파 화가로도 유명하지만, 일반인들에게는 독특한 여인 초상화로도 유명할 만큼 여인을 정말 많이 그렸다. 그런데 <꿈>은 일반인 누구나 봤을 때 한눈에 딱 피카소 작품임을 알 수 있는 여인 초상화이고, 입체파 작품에 비해 눈에 쉽게 읽힌다. 피카소는 자신이 깊이 사귀고 함께 살았던 여인들을 모델로 그림을 많이 그렸다. 특히 어린 애인이었던 마리-테레즈 월터에게는 정성을 쏟아부었다. 피카소가 마흔다섯 살일 때 열일곱 살이었던 마리-테레즈 월터에게 피카소는 한창 푹 빠져 있었으니, 그때 그린 이 여인의 초상화는 모두 명작으로 남아 있다.
마리-테레즈는 잠이 많은 여성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 피카소가 그린 마리-테레즈 초상화 중엔 잠자는 모습이 많다. 이 그림은 의자에서 곤히 잠든 마리-테레즈 월터를 정면에서 클로즈업해서 그렸기 때문에 감상자에게 이 여인의 매력적인 모습이 강인하게 각인된다.
조각가 자코메티의 대표적인 스타일을 한눈에 보여주는 <걷는 남자I>. 2010년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1067억원에 팔렸다.
세계 미술시장을 뒤흔든 그림 중 하나인 뭉크(1863~1944년)의 <절규>도 단연 ‘글로벌 아이콘’이다. 공포에 질린 사람이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악 소리를 지르는 순간을 스케치한 이 그림은 2012년 뉴욕 소더비 경매를 통해 약 1258억원(1억1990만달러)에 팔렸다. 미술에 문외한이라도 이 그림을 보면 뭉크의 작품인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아니, 뭉크 하면 누구의 머릿속에나 제일 먼저 떠오르는 그림이 바로 <절규>다. 귀를 막고 절규하는 사람의 해골 같은 얼굴 이미지는 다른 미술작품에서, 영화에서, 아트상품에서 자주 패러디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 하나를 꼽으라면 <모나리자>를 꼽을 수 있듯, 뭉크의 그림 하나를 꼽으라면 당연히 <절규>다. 그런데 사실 뭉크는 같은 소재로 비슷하게 <절규>를 네 점 그렸다. 그런데 이 그림을 제외한 나머지 세 점은 모두 그의 고국인 노르웨이에 있는 미술관들에 소장되어 있다. 소더비에서 팔린 이 그림만이 개인 손에 있었던 것이다. 뭉크의 ‘글로벌 아이콘’이면서, 당연히 미술관에 있을 줄 알았던 그림이 개인 손에 있다가 시장에 나왔으니, 1258억원이라는 기절할 가격에 낙찰된 게 이상할 것도 없다. 뭉크의 <절규>가 경매에 나왔던 것은 2012년 5월이다. 미국을 비롯해 세계 경기가 별로 좋지 않을 때였는데도 이 그림은 불황과 아무 상관없이 초고가에 팔렸다. ‘글로벌 아이콘’이라는 무서운 힘 덕분에 유화도 아니고, 세로 79cm, 가로 59cm 의 자그마한 파스텔화인 이 그림이 불황에도 이런 가격에 팔릴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뭉크는 유화보다 크레용이나 파스텔 같은 건조한 느낌의 재료를 즐겨 써서 일부러 건조하고 텁텁한 느낌을 추구했다. 게다가 요즘 컬렉터들은 예전에 비해 그림의 재료에 그렇게 크게 민감하지 않다. 꼭 유화만 비싸게 팔리라는 법이 없다. 특히 뭉크처럼 뚜렷한 이유가 있어서 화가가 일부러 다른 재료를 써서 그린 경우엔 더욱 그렇다. 조각의 아이콘 자코메티 초고가에 팔린 작품 중엔 평면 회화가 월등하게 많지만, 드물게 조각이나 사진처럼 에디션이 있는 작품이 초고가에 팔릴 때도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알베르토 자코메티(1901~1966년)의 <걷는 남자I>이다. 2010년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약 1067억원(6500만파운드)에 팔려 조각 작품 중 가장 비싼 기록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2010년 당시로서 미술작품 전체의 경매 최고기록도 갈아치웠다. 자코메티는 피카소나 반 고흐처럼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유명작가는 아니지만, 말라비틀어진 조각 형상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피폐한 심정을 표현해 서양미술사에 이름을 새긴 작가다. 조각가 중에서는 피카소급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의 작품이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인체의 형상을 아주 납작하거나 빼빼 마르게 표현한 독특함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는 ‘앵포르멜(Informel)’이라는 미술 경향이 크게 유행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세상을 보면서 아티스트들이 기존의 평화로운 시절과는 전혀 다른 예술을 했던 것이다. ‘앵포르멜’이라는 이름에서도 느껴지듯, 모범적인 형상의 규칙을 파괴하고 작가의 주관적 느낌에 따라 자유롭게 그리고 붙인 것이었다.
자코메티는 알프스 산맥 한가운데 있는 마을에서 나고 자라서 인체를 표현할 때 자신의 고향처럼 자연 그대로의 돌과 나무 느낌이 나게 거칠게 표현했다. 그런데 사실 그런 표현방법을 통해 제1차, 2차 세계대전을 겪고 난 뒤 피폐해진 당시 사람인들의 심신을 나타낸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전후의 인간상’을 표현한 대표적 조각가로 평가 받는다.
<걷는 남자I>은 철사처럼 빼빼 마르고 키 큰 남자가 구부정하게 걸어가는 모습을 표현한 조각이다. 전후의 피폐한 인간상을 표현한 자코메티의 작품 경향을 아주 뚜렷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조각이기 때문에 이 작품과 똑같은 것이 아홉 점이나 더 있지만, 대부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어서 시장에 나오기 어렵다. 이 <걷는 남자 I>은 독일의 금융회사가 가지고 있던 것이라 시장에 나올 수 있었다. 어떤 미술작품이 비싸게 팔릴 때엔 여러 가지 요소가 작용을 한다. 그런데 ‘어느 작가가 한 어떤 스타일의 작품인가’라는 건 당연히 가장 기본적인 요소다. 아티스트들은 평생 한 가지 스타일만 하기보다는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하곤 한다. 그래서 때로는 “어? 이 화가가 이런 그림도 그렸네?” 라고 화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새롭고 특이한 스타일의 작품이 나오기도 한다. 이런 작품 역시 가치가 높다. 하지만 시장에서 쉽게 비싸게 팔리는 것은 여전히 그 작가의 작품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아이콘 같은 작품이다.
[이규현 이앤아트(enart.kr) 대표,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100> 저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0호(2014년 1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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