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페라를 닮은 뮤지컬 `보이첵`

    입력 : 2014.10.31 10:4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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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어 뮤지컬을 자막으로 보여주며 현지인을 공략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해외 스태프와 협업해서 그들의 아이디어와 감성을 투여한 ‘영어 뮤지컬’을 제작해야 했다.” <명성황후>와 <영웅>을 통해 대한민국 창작 뮤지컬의 가능성을 보여준 거장 윤호진 연출은 <보이첵>을 소개하는 기자간담회에서 이 같이 말했다. 한국어 뮤지컬로는 해외 시장 진출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세계인과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희곡 ‘보이체크’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뮤지컬 <보이첵>은 윤 연출의 첫 번째 글로벌 프로젝트인 셈이다. <보이첵>은 부조리극의 시초로 통하는 독일 천재작가 게오르크 뷔히너의 미완성 희곡 ‘보이체크’를 원작으로 한다. 연극이나 무용 등을 통해 다양한 무대에서 선보인 작품이지만 대형 뮤지컬로 제작된 적은 없다. 작가의 취향에서 짐작할 수 있듯 <보이첵>은 전반적으로 어둡고 침울하다. 작품은 1800년대 초반 독일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살인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가난한 병사가 애인을 칼로 찔러 죽인 뒤 공개 처형당한 사건이다. 작가는 이 실제 사건을 극 속에 등장시켜, 하층민들의 삶 속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이 결코 이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임을 고발한다.

    그런 점에서 <보이첵>은 그동안 뮤지컬에 대한 대중의 이미지를 고려해 볼 때 딱 맞는 옷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밝고 화려한 이미지가 강한 뮤지컬에는 어울리지 않아 그간 이 장르로 만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관객들의 반응도 극명하게 호불호가 갈리고 있다. 일단 무대부터 화려한 조명이나 장치가 없다. 뮤지컬 넘버 역시 영국의 언더그라운드밴드 ‘싱잉 로인즈(Singing Loins)’가 만들어내는 집시 풍의 잔잔한 음악이 채운다.

    부수적인 요소를 절제하고 배우들의 연기와 감성을 통해 스토리를 풀어낸다는 점이 오페라와 닮아 있다. 원작에서 무작위로 배열된 복잡한 극 구성을 주인공 마리와 보이체크를 중심으로 재구성한 부분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관객들이 원작의 스토리와 메시지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그간의 뮤지컬 작품들을 생각하고 공연장을 찾는다면 낯선 분위기에 당황할 수 있다. 그러나 우후죽순 비슷한 이미지의 작품이 늘어가고 있는 뮤지컬 업계에 장르적 다양성을 위한 의미 있는 시도라 평할 만하다. 완성도와 몰입도를 높일 필요가 있지만 초연임을 감안하면 충분히 한국 뮤지컬 제작 능력의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임은 분명하다. 뮤지컬 <보이첵>은 오는 11월 8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만나볼 수 있다.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0호(2014년 1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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