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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 골퍼 되고 싶은가? ‘완벽’이라는 단어를 지워라
입력 : 2014.09.19 17: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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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골퍼가 아닌 주말 골퍼들이 플레이하는 모습을 들여다보자. 자칭 ‘연습장 프로’라고 불리는 A씨는 친구들과 오랜만에 라운드를 나섰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자신보다 잘 치지 못했던 B씨가 동반자였다. 연습 스윙을 할 때에도 B씨의 스윙은 엉성했고 자신의 기준에서 ‘스윙’이 아니라 ‘번트’를 대는 듯한 폼이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완벽한 스윙을 하려 하고 멋진 폼으로 라운드를 한 A씨는 18번 홀에서 백기를 들고 말았다. A씨의 스코어는 90타, 반면 B씨는 82개를 기록했다. 골프에서 마지막 승패는 스윙이나 비거리, 자세가 아니다. 손에 남는 것은 스코어카드뿐이다.
골프는 완벽한 게임이 아니다. 완벽한 플레이를 위해서 피나는 연습을 하고 트레이닝을 하지만 결국 ‘실수’를 줄이는 게임이다. 늘 컨디션이 좋고 스윙 감각이 최상일 수 없다. 때로는 몸이 안 좋은 상태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
올해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무대로 옮긴 신지애는 “골프는 장타를 펑펑 때리고 멋진 아이언샷을 가졌다고 무조건 우승하지 않는다. 우승을 하는 것은 좋은 성적을 낸 선수다. 이런 골프의 특성 때문에 나도 LPGA투어 무대에서도 자신 있게 플레이 하고 우승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드라이버 거리는 짧지만 정교하게 페어웨이를 지키고 우드나 하이브리드로 그린을 공략해 버디를 잡아낼 수 있는 기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어 그는 “만약 내가 비거리를 더 늘리고 다른 선수들을 따라가려고만 했다면 지금처럼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 뒤 “골프에는 정답이 없다. 장타자건 아니건 결국 버디를 잡아내고 더 낮은 스코어를 내는 선수가 최후의 승자가 되는 경기”라고 설명했다.
골프에서 ‘완벽하다’고 불리는 것은 결국 좋은 성적을 기록한 선수에게 주로 해당되는 단어다. 타이거 우즈만 봐도 한눈에 알 수 있다.
온몸을 비틀며 스윙하는 우즈의 스윙은 한때 ‘몸에 무리가 간다’, ‘스윙이 너무 과격하고 깔끔하지 않다’며 비난을 받았다. 게다가 우즈는 드라이버샷을 칠 때 페어웨이를 반드시 지키지는 않았다. 다른 선수들보다 30~40야드 이상 멀리 쳐낸 뒤 그린 주변 러프에서 짧은 클럽으로 홀을 공략했다. 이것 또한 통상적으로 말하는 ‘완벽한 골프’가 아니다. 하지만 우즈가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하고 수십 번의 우승을 차지한 이후 어떻게 변했을까. 모든 주니어 골프 선수들은 우즈의 스윙을 따라 하고 스윙 강사들은 우즈의 스윙을 분석하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기 시작했다.
한 명 더 좋은 예가 있다. 바로 ‘골프 여제’ 박인비다. 느릿느릿한 백스윙과 다운스윙을 할 때 이미 시선은 목표 방향으로 돌아가 있다. 일반적인 강사들이 말하는 ‘시선 고정’은 박인비에게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결과는 어떤가. 5~6m 퍼팅을 다른 선수들의 1m퍼팅처럼 집어넣는 실력으로 골프여제 자리를 꿰찼다. 그리고 지난해부터 박인비의 스윙을 연구하더니 ‘가장 아름다운 스윙’이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불안정한’ 플레이의 모습과 스윙이 어느 날부터 ‘완벽한’ 표본이 되어버린 것이다.
골퍼들에게 ‘완벽주의’는 독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인터내셔널 크라운에 출전한 최나연과 김인경처럼 서로 너무 완벽한 경기를 하려다 스스로 무너져 버린 것이 또 하나의 예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감 때문에 오히려 생각이 많아져 평소의 리듬을 잃어버렸다. 게다가 과도한 긴장감으로 정교한 샷을 해야 할 때 필요 이상의 힘이 들어가기도 했다. 그럼 박인비와 비교해 보자. 박인비는 선천적으로 손목 유연성이 적어 코킹이 잘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그만의 스윙을 찾았고 자신에게 딱 맞는 ‘상식 밖의 스윙’을 만들어냈다. 모두가 공감하는 완벽한 스윙은 아니지만 박인비의 ‘골프’는 완벽하다. 실수를 해도 리커버리를 잘하고 홀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도 버디를 잡아낸다.독이 되는 ‘완벽주의 골프’는 스윙이나 플레이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골퍼의 행동과 성격에도 적용된다.
심리학자들은 최고의 선수가 되려면 교만하고 독선적인 면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타이거 우즈나 벤 호건 같은 전설적인 골퍼들은 이기적이고 뻔뻔스러운 면을 갖고 있다. 경기 도중 심기가 불편하면 불같이 화를 내기도 하고 자신의 볼에 갤러리가 맞아도 플레이에만 집중한다. 우즈는 지름 1m가 넘는 바위를 경기 도중 옮기기까지 했다.
이는 주말 골퍼들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샷이 잘못 맞거나 트러블 상황에 처할 경우 ‘경기 진행’ 속도를 너무 신경 쓰거나 동반자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으로 대충대충 치는 골퍼들이 의외로 많다. 충분히 경사를 살피고 최적의 클럽을 골라서 해야 하는 숏게임에서도 그냥 손에 들고 있는 클럽으로 치면서 ‘동반자를 배려’하는 유형이다. 자신의 플레이에 집중하기보다 너무 ‘상대방’만 신경 쓰기 때문에 이런 유형의 골퍼는 결코 낮은 스코어를 기대할 수 없다.
오늘부터 ‘완벽’이라는 단어를 버리고 ‘실수를 줄이자’는 마음으로 골프를 쳐보자. 그리고 약간은 ‘나쁜 골퍼’가 되어 보자. 먼저 ‘슬로 플레이’와 ‘신중한 플레이’를 구분해야 한다. 동반자들이 짜증을 내지 않고 경기 진행 속도에 너무 방해만 되지 않으면 된다. 그리고 가끔은 그늘집에서 쉴 때 과감하게 술을 거부할 필요가 있다. 물론 ‘돈 따려고 별짓 다 한다’는 말을 들을 수는 있겠지만 이때는 분위기를 맞출 멘트나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를 준비하면 위기를 모면할 수 있다.캐디백에 14개의 클럽이 들어 있는 이유는 골프코스 안에서 그 만큼 많은 경우의 수와 예상 밖의 상황이 나오기 때문이다. 2온 1퍼트만이 완벽한 골프는 아니다. 벙커에 빠져도 멋지게 빠져나와 버디를 잡을 수 있다.
[조효성 매일경제 스포츠레저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8호(2014년 0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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