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 컬렉터가 좋은 작품을 남긴다

    입력 : 2014.07.11 14:40:43

  • 사진설명
    지난 6월 K옥션에서 ‘김순응 컬렉션’이라는 이름으로 경매가 열려 눈길을 끌었다. 서울옥션과 K옥션 대표를 거친 김순응 아트컴퍼니의 김 대표가 30여년간 수집해온 작품 중 20점을 선보인 경매였다. 오치균, 이진용, 이동기, 마리킴 4명의 작가로 구성된 컬렉션은 한국 현대미술의 유망 작가를 일찌감치 알아보고 작품을 수집했던 그의 취향을 보여줬다. 김순응 대표는 23년간 금융기관에서 일한 금융인 출신으로 2000년에 서울옥션 대표를 맡으면서 미술계로 뛰어들었다. 스스로를 ‘그림에 미친 은행원’이라고 할 만큼 독특한 경력을 가진 사람이고, 평생 미술과 사랑에 빠져 있는 사람이다. 또한 서울옥션과 K옥션 대표를 거친 그가 수집한 미술작품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서 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K옥션 경매 프리뷰 때부터 전시장을 줄지어 찾았다. 이 컬렉션에 들어 있는 작가들이 낯선 사람들에게는 이 작가들을 눈여겨보라는 암시를 주는 계기도 되었다. 유명한 컬렉터가 산 작가에게는 사람들의 관심이 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경매를 할 때 소장자의 이름을 이렇게 내세우는 경우가 흔하지 않지만, 외국에서는 유명한 컬렉터의 컬렉션을 그 사람 이름을 앞세워 경매하는 일이 매우 흔하다. 뉴욕 크리스티는 6월에 ‘클라크 집안의 보물(An American Dynasty: The Clark Family Treasures Sale)’이라는 경매를 했다. 클라크 집안은 20세기 미국의 내로라하는 부자 집안이었다. 크리스티는 이들이 소장했던 작품 중 모네와 르누아르의 그림 세 점을 올해 5월 근대미술 경매 때 내놓아 4000만달러를 거뒀다. 이로 인해 미술컬렉터들과 언론의 관심을 받고 난 뒤, 바로 이어지는 6월에는 클라크 집안이 소장한 다른 그림들과 가구, 악기, 책, 도자기 등 무려 357점을 모아서 아예 따로 ‘클라크 경매’를 한 것이다.

    크리스티가 지난 6월에 ‘클라크 집안의 보물’경매에 내놓은 컬렉터 윌리엄 클라크의 흉상(퍼시 브라이언 베이커 작품).  <사진제공=크리스티>
    크리스티가 지난 6월에 ‘클라크 집안의 보물’경매에 내놓은 컬렉터 윌리엄 클라크의 흉상(퍼시 브라이언 베이커 작품). <사진제공=크리스티>


    미술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컬렉터’ 그림은 화가가 그리고, 큐레이터나 딜러가 전시하고, 관객이 감상하고, 관객과 평론가가 평가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요소가 있다. 바로 그림을 사는 ‘컬렉터’다.

    미술작품을 사는 컬렉터가 없으면 미술작가도 없고, ‘미술 세계’라는 게 유지될 수가 없다. 나아가, 유명하고 권위 있는 컬렉터들은 자신들이 소장하는 작가의 작품값에도 영향을 미친다. 유명 컬렉터가 사는 작가는 더불어 같이 유명해진다는 뜻이다.

    최근 세계적인 사진작가 김아타가 국내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작품이 안 팔리면 작가는 죽는다. 팔려야 한다”고 말해 화제가 되었다. 드러내놓고 언론에 이렇게 말한 것이 특이했지만, 그의 말은 사실 대부분의 작가들이 인정한다. 작가가 예술에 전념하려면 당연히 작품이 팔려야 하고, 작품성을 인정받은 프로 작가의 작품은 개인이든 미술관이든 소장되는 게 당연하다. 이런 말을 한 김아타의 경우 그의 대표작 ‘8시간 연작’ 중 뉴욕 맨해튼 파크 애비뉴를 찍은 사진 한 장이 빌 게이츠에게 8800만원에 팔려 당시 크게 화제가 되었다. 그의 작품에 대해 미술에 문외한인 사람들조차 “대체 어떤 사진이기에…” 하고 관심을 가지는 계기도 되었다.

    마찬가지로, 자연을 찍는 사진작가 배병우의 소나무 사진은 2005년 영국의 세계적 가수 엘튼 존이 2800만원에 산 뒤부터 급격하게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유명한 미술 컬렉터들은 일반인보다 안목도 뛰어나고, 향후 미술시장에 끼칠 영향력도 있다.

    따라서 ‘누가 누구의 작품을 샀는가’에는 당연히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다. 어쩌면 주식시장에서 누가 어떤 회사의 주식을 사고파느냐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과 비슷하다. 정말 유명한 컬렉터들은 한 작가의 그림값을 좌우할 수도 있다. 2007년 가을과 겨울, 우리나라 전체를 떠들썩하게 한 그림 한 점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당시 삼성그룹의 전 법무팀장이었던 김용철 변호사가 2007년 말에 이른바 ‘삼성 구매 미술품’이라고 제시한 목록에 들어 있었던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이다.

    이후 특검 수사결과 이 작품은 삼성의 소장품이 아니라고 결론이 났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사실 그게 아니었다. 삼성이 샀느냐 안 샀느냐 하는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우리나라 최고의 컬렉터이자 국내 미술계 영향력 있는 인사 1위에 뽑히는 홍라희 삼성 미술관 리움 관장이 ‘살 뻔’한 그 작가가 누구냐에 더 관심이 있었다. 이 사건 직후 갑자기 한국에서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인기가 올라갔다. 그 사건 직후 한 경매에 나온 리히텐슈타인의 판화 한 점은 추정가(4000만~5000만원)보다 훨씬 높은 6100만원에 낙찰되기도 하고, 이후 한참동안 ‘행복한 눈물’을 패러디한 그림들도 나와 인기를 끌었다.

    신윤복의 ‘단오풍정’
    신윤복의 ‘단오풍정’
    세기의 컬렉터들 서양미술사에서 처음으로 부각된 컬렉터들은 20세기 초반 프랑스 파리의 ‘곰가죽’이라는 모임 멤버들이었다.

    1914년 3월 2일 이들은 파리의 유명한 호텔 드루오에서 반 고흐, 고갱, 피카소, 마티스 등의 작품 145점으로 대중을 상대로 하는 경매를 했다. 지금이야 역사의 대가로 남은 작가들이지만 당시로서는 유럽의 클래식 취향에 맞지 않는 전위적 작가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을 알아보고 일찍부터 작품을 사면서 지원했던 사람들이 바로 평론가도 큐레이터도 아닌 ‘곰가죽’ 모임의 컬렉터들이었다.

    이 모임을 이끈 사람은 앙드레 르벨이라는 30대의 젊은 사업가였는데, 고전적 대가들뿐 아니라 아직 상업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하던 젊은 작가들도 소장과 투자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어느 미술전문가들보다 앞서 나간 전문가였다.

    뛰어난 컬렉터들은 대가를 미리 알아본다. 이걸로 가장 유명한 컬렉터는 미국 여성인 거트루드 스타인과 오빠 리오 스타인 남매일 것이다. 이들은 1900년대 초 파리에서 당시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피카소와 마티스의 작품을 사면서 이 젊은 작가들을 후원했다. 이들은 서양미술사에서 워낙 유명한 컬렉터들이라 2012년에는 전 세계 미술관에 기증되어 있는 이들의 컬렉션을 모아 샌프란시스코, 파리 뉴욕에서 대대적인 전시를 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이 큰 부자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파리에서 살았던 집은 그냥 좁은 아파트에 불과했고, 글을 쓰고 미술작업을 했던 스튜디오는 40㎡ 크기 방이었다. 스타인 남매가 피카소와 마티스를 주로 사기 시작한 이유 역시 돈이 많이 없어서라고 한다. 당시 이미 유명해진 인상파 화가들은 너무 비싸서 살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자신들이 처음에 알아보고 수집했던 피카소와 마티스를 나중에는 비싸져서 살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안목이 뛰어난 컬렉터들은 미래에 누가 주목을 받을 작가가 될지 알려주는 역할도 하는 셈이다.

    (왼쪽)겸재의 ‘풍악내산총람’, (오른쪽)청자상감운학문매병
    (왼쪽)겸재의 ‘풍악내산총람’, (오른쪽)청자상감운학문매병
    문화재를 지켜내는 대단한 컬렉터 미술 컬렉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미술시장에 영향을 끼치기에 앞서 컬렉터들은 미술작품, 문화재를 지켜내는 핵심 역할을 해왔다.

    올해 서울에 문을 연 새로운 복합문화공간인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에서는 1, 2부에 걸쳐 간송문화전을 전시 중이다. 이 전시 작품들을 소장했던 간송 전형필은 컬렉터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제일 좋은 예다.

    ‘훈민정음 원본’, 혜원 신윤복의 화첩 ‘혜원풍속도’,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현재 심사정의 ‘촉잔도권’, ‘청화백자철사진사국화문병’ 등 수많은 국보, 보물과 그 급의 문화재들이 모두 간송의 컬렉션이다. 간송은 서울 종로의 거부 전영기의 2남 4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는데, 작은아버지 댁에 손이 없어 그 집 양자로 족보에 올랐다. 그런데 친형이 28세 나이로 요절하고 생부와 의부도 일찍 세상을 뜨자, 양가의 재산을 모두 물려받아 20대에 10만석지기 부자가 됐다. 그는 그 재산을 문화재 수집에 쏟아부었다. 일본인들이 이미 가지고 있었던 수많은 문화재들을 거금을 들여 다시 사들였고, 일본으로 흘러나갈 뻔했던 문화재들도 사재로 지켜냈다. 그리고 1938년에 보화각을 세워 이 모든 소장품을 보존했다. 일제와 6·25전쟁을 겪은 우리나라에 간송 전형필이 없었더라면 그 많은 문화재가 다 어디로 갔을까 생각하면 아찔하다. 특히 그의 소장품은 조선 후기 125년 동안의 작품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시기에 우리 미술이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창적으로 부흥했다는 것을 연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보통 학교수업이나 미술사 책에서는 작가와 평론가의 역할에 치우친 나머지 ‘컬렉터’를 빼먹곤 한다. 하지만 컬렉터는 미술작가만큼이나 중요하다. 미술의 역사에서나 미술시장에서나, 흐름을 바꾸고 미술작가를 존재하게 하고 작품의 가격에도 영향을 미치는 아주 중요한 요소다.

    [이규현 이앤아트(enart.kr) 대표]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6호(2014년 0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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