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씨봉 자연휴양림…첩첩산중 참나무 맑은 기운에 그득한 孝心

    입력 : 2014.06.27 11: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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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빨리 가실 줄 몰랐어… 정말 몰랐어….” 하염없이 ‘몰랐어’만 되뇌는 모습이 처량했다. 늘 쩌렁한 목소리로 호탕하게 웃던 이는 온데간데없었다.

    한 달 전 찾아와 “고작 40대 중반인데 구조조정 대상이 된 동료들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르겠다”며 수십 번이나 “남아있는 게 미안하다”고 곱씹던 이 차장은 그렇게 아버지를 배웅했다. 급작스런 사고였다.

    장례식장을 찾은 떠나간 동료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할 말이 마땅찮았는지 상주의 손만 비벼댔다. 그리곤 서로 울었다.

    삼일장의 마지막 새벽은 유난히 달이 길었다. 함께 발인할 이들만 남은 시각, 먹는 둥 마는 둥 제대로 음식을 넘기지 못하던 그가 힘겹게 소주 한 잔을 털어 넣더니 중얼대기 시작했다.

    “늘 마음만 있었는데… 그렇게 좋아하던 등산 한 번 같이 못 갔는데…

    올 여름 휴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모시겠다고 생각했는데…

    손자 낳고 이 놈 재롱도 제대로 못 보여드렸는데… 같이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닌데… 근데 한 게 아무것도 없어요. 내가 해드린 게 아무것도 없어.

    먹고 살기 힘들어서… 시간이 없어서… 그거 다 거짓말이야. 이렇게 술 마실 시간은 있는데 아버지 찾아갈 시간은 없었다고. 다 내가 한 일인데, 그래서 억울해… 다 내 잘못인데… 그걸 아는 데도 너무 억울해… 살아있는 동안 단 한 번도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답답해 미치겠어. 억울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은 내내 억울했다. 꼭 해야지 다짐하던, 늘 생각만 했던 일들이 한꺼번에 떠올라 마음 깊이 사무쳤다. 무엇보다 6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자신을 떠난 아버지가 야속하고 불쌍했다. 그래서 또 다시 억울했다.

    장례식이 끝나고 며칠 후, 휴대폰 너머에서 천천히 말문을 연 그는 “그럴 줄 몰랐다”며 한숨을 내뱉었다. 툭 털어 내놓은 속내엔 억울함 대신 아쉬움이 뚝뚝 묻어났다.

    “몰랐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어요. 얼마나 비겁한 변명인지… 부끄럽습니다.”

    평지를 걷듯 산책할 수 있는 ‘치유의 숲’
    평지를 걷듯 산책할 수 있는 ‘치유의 숲’
    일주일 뒤 경기도 가평에 자리한 ‘강씨봉 자연휴양림’을 찾았을 때 왠지 그가 떠올랐다. 두런두런 얘기 나누며 숲을 거니는 3대(代)가 눈에 들어왔을 땐 그가 말한 저릿한 억울함이 전염됐는지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전망대에 오르는 길로 들어서자 강씨봉의 유래가 눈에 들어왔다. 저릿했던 가슴이 왠지 모르게 부끄러웠다.
    나무 데크로 조성된 휴식공간에 방문객의 바람을 담은 쪽지가 그득하다.
    나무 데크로 조성된 휴식공간에 방문객의 바람을 담은 쪽지가 그득하다.
    도심에서 한 시간 반, 첩첩산중 경기도 가평까지 가는 길은 녹록지 않았다. 전라도나 경상도, 강원도도 아닌 곳이 어찌 그리 하염없던지. 어쩌면 고속도로가 아니라 국도를 택했다는 후회에 짜증이 더해져 그런 마음이 들었겠지만 그래도 멀었다. 서울 도심에서 두 시간 반. 아닌 게 아니라 고개만 넘으면 강원도 땅이 지척이다. 이럴 땐 마음의 반대편에 서는 게 옳다. 험한 여정에 시선을 먼 곳으로 돌리니 휑한 아스팔트를 휘휘 덮은 그늘이 깊었다. 잠시 차를 멈춰 내려서니 눈에 보이는 모든 게 산이요 계곡이다. 말 그대로 첩첩산중. 그 끝자락으로 향하니 ‘강씨봉 자연휴양림’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오죽하면 이곳을 경기도의 알프스라 하겠어요. 오는 길이 꼬불꼬불해서 멀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오고 나면 열이면 열 잘 왔다고 하더라고.”

    입구에 늘어선 밥집 처마 아래서 손님 기다리던 주인이 묻지도 않았는데 자문자답이다. 보기에도 널찍한 정문을 지나 휴양림으로 들어서니 아닌 게 아니라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잘 왔다’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2007년부터 총 67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된 강씨봉 자연휴양림은 경기도 가평군 북면 적목리 일대 980ha에 조성된 자연공간이다. 2011년 개장 이후 휴양림 내에 자리한 7채의 숲속의 집과 9채의 산림휴양관은 주말 예약이 하늘에 별 따기일 만큼 인기 휴양지가 됐다. 그도 그럴 것이 쪽 고른 참나무가 쭉 뻗은 숲 곳곳의 숙소를 나서니 평평한 산책로와 넓은 나무 데크가 한가로웠다. 해발 400~450m의 공기도 도심과 분명 다르다. 한여름이면 수영장마냥 반듯하게 마무리한 공간에 계곡물을 채워 물놀이장으로 쓴다니 이 또한 매력적인 요소 중 하나다.

    그렇다면 걷기 위한 길은 어떨까. 강씨봉을 비롯해 주변 고개를 돌아오는 등산 코스가 총 7개. 그중 1시간 반 코스(2.4㎞·제5코스)인 전망대로 걸음을 옮겼다. 계곡 옆에 오롯한 길은 경사가 완만했다. 아무 생각 없이 혹은 일행과 대화하며 천천히 보폭을 맞추기에 안성맞춤이다. 하지만 계곡을 빗겨나가면 살짝 다리가 당긴다. 차가 지나는 길이었는지 수풀이 낮아 볕 또한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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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랬거나 저랬거나 잠시 생각을 뒤로하며 숨을 고르면 민둥산과 화악산, 명지산으로 둘러싸인 전망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계단을 올라 멀리 바라보면 푸른 기운에 눈이 시리다. 이곳이 왜 경기도의 알프스인지, 봉우리 뒤 봉우리가 시선이 닿는 곳까지 펼쳐졌다. 걸음을 돌려 내려선 길 중턱에 강씨봉의 유래가 간략했다. ‘효자 강영천은 3세 때 부친을 여의고 홀어머니와 함께 살던 중 7세 때 모친이 병으로 몸져눕게 됐다. 나이는 비록 어렸으나 효성이 지극하던 영천은 어머니의 병이 악화돼 정신을 잃자 자신의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내 어머니의 입에 흘려 넣었다. … 이후 마을에서 가장 높은 산을 강씨봉이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숙종 26년 건립된 효자문은 1987년 복원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래서 가족단위 방문객이 많았던가. 왠지 가슴 한쪽이 저릿했다.

    [가평 = 안재형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6호(2014년 0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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