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부처 박인비도 넘지 못한 ‘부담’과 ‘압박’

    입력 : 2014.06.27 11:11:29

  • 세계 랭킹 1위에 오른 스테이시 루이스
    세계 랭킹 1위에 오른 스테이시 루이스
    골프는 참 묘한 운동이다. 평소에 그렇게 잘되던 샷도 중요한 순간이나 심리적으로 불안할 때에는 어김없이 실수가 나온다.그래서 골퍼들은 입에 ‘어~ 오늘따라 이상하네’라는 단어를 늘 달고 산다. 또 스코어가 안 좋거나 뒤땅, 토핑이 나오면 어김없이 주위에서 “헤드업 했어, 머리 들지 마”라거나 “스윙이 빨라”라는 식의 조언(?)을 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정말 미스샷과 실수의 원인이 단순하게 머리를 빨리 들고 스윙을 급하게 해서일까.

    한 번 더 생각해보면 머리를 빨리 든 이유는 날아가는 볼을 확인하려는 급한 마음 때문이고 스윙이 빨라진 이유는 ‘좀 더 세게’이거나 더 멋진 샷을 동반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과시’에서 나온다.

    결과는 기술의 잘못으로 평가되지만 결국 뜯어보면 모든 골프의 미스샷은 ‘마음’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프로 골프대회에서 우승한 선수들의 소감이 비슷비슷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승자들은 한결같이 어떠어떠한 샷이 잘 됐다고 구체적으로 말하기보다는 우승을 생각하지 않고 볼을 칠 때만 집중했더니 결국 우승했다”고 말한다.

    그 중에서도 ‘부담감’은 골퍼들이 평생 넘어야 할 산이다. 꼭 이기고 싶은 상대와 함께 라운드를 할 때, 전반 9홀에서 3~4오버파를 친 뒤 ‘싱글골퍼’를 꿈꿀 때 등 골프에서 평정심을 무너뜨리는 경우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런 부담감, 어떻게 넘을 수 있을까. 사실 정답은 없다. 한번 실수를 한 뒤에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면 가장 좋겠지만 그게 어디 마음처럼 될까.

    ‘골프 여제’ 박인비도 지금의 자리에 있기까지 수많은 부담감과 싸우고 있다. ‘침묵의 암살자’라는 별명을 갖고 있지만 여전히 부담감 속에서 ‘실패’와 ‘극복’을 반복하고 있다.

    박인비의 첫 번째 시련은 첫 우승 직후다. 1998년 US여자오픈에서 17세의 나이에 덜컥 우승을 차지했다. 아직 샷 기술도, 경기 경험도 적은 상황에 우승을 했으니 이후 그녀를 따라다니는 ‘메이저 챔피언’이라는 타이틀은 박인비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당시 박인비는 치명적인 ‘불안 요소’를 갖고 있었다. 티샷이 오른쪽으로 밀려나가는 ‘푸시샷’이다. 긴장되는 상황이나 중요한 순간 꼭 볼이 밀려나갔다. 박인비는 당시를 떠올리며 “큰 대회에서 첫 우승을 해 부담스러웠다. 뒤돌아보면 우승 하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내 스스로에게 너무 부담을 줬다. 2009년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박인비가 처음 겪은 ‘부담감’을 떨쳐버리는 데에는 무려 4년의 시간이 걸렸다. 부담감을 이겨낸 방법은 ‘불안 요소 제거’였다. 약혼자인 남기협 씨를 만나 긴장된 상황에서 ‘푸시샷’이 나오는 스윙을 교정한 것.

    불안감이 사라지자 박인비는 상승세를 탔다. 2012년 에비앙마스터스 우승을 시작으로 2승을 거뒀고 LPGA투어 상금왕과 최저타상을 수상했다. 박인비 돌풍은 이어졌다. 첫 메이저대회인 나비스코챔피언십을 차지하더니 US여자오픈과 LPGA챔피언십까지 연달아 우승을 차지했다. 사실상 LPGA투어 역사상 최초의 일이다. 당시 박인비는 ‘그랜드 슬램’이라는 커다란 목표는 전혀 준비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주위에서는 과도한 관심을 보였고 브리티시여자오픈을 앞두고는 압박이 극에 달했다.

    당시 “나도 사람이다. 이제 겨우 몇 주 이런 관심을 받았는데 나에게는 힘들다”고 털어놓은 박인비는 “소렌스탐, 오초아 등이 어떻게 이런 집중적인 관심을 견뎌냈는지 궁금하다”고 말했을 정도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즐기려고 한다. 피할 수 없는 것이고 내가 잘 다뤄야 할 것들이다”라고 말했지만 박인비는 결국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최초의 ‘그랜드 슬램’에 실패하고 말았다.

    부담감을 극복하지 못했던 후유증은 컸다. 2013년 4월 등극한 세계랭킹 1위는 지켰지만 우승은 없었다. 톱10에 수차례 들어도 주위에서는 “무슨 일 있는 것 아니냐. 샷이 왜 이러냐”는 등의 걱정 어린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박인비는 “내가 아무리 만족스러운 경기를 했다고 해도 우승을 하지 않는 한 사람들은 내가 부진하다고 말한다. 신경 쓰지 않으려 하지만 압박감을 느끼고 조급한 마음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고 토로했다.

    결국 US오픈 우승 이후 1년 넘게 이어져온 ‘무승’ 행진은 스테이시 루이스에게 세계랭킹 1위 자리를 뺏기고 나서야 털어버릴 수 있었다. ‘세계랭킹 1위’에 대한 부담감이 박인비의 샷도, 퍼팅도 빼앗아 버렸던 것이다.

    박인비는 세계랭킹 1위 자리에서 내려온 이후 “무거운 왕관을 내려놓은 것 같이 홀가분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오히려 ‘골프퀸’의 타이틀을 빼앗겼지만 박인비는 “이제 다시 목표를 정하고 원하는 대로 행복하게 골프를 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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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번의 큰 부담과 시련을 겪은 박인비는 어느 때보다도 강해졌다. 이제는 웬만한 긴장과 압박도 박인비에게는 별거 아닌 일이다. 2016년 리우올림픽 출전을 앞둔 박인비는 “올림픽 금메달을 앞두고 있을 때 압박감이 엄청날 것 같다. 그 순간을 생각하면 설렌다”고 여유 있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골퍼들은 여기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

    전반의 좋은 흐름을 후반까지 이어가고, 17번 홀까지 유지하던 싱글 스코어를 마지막 홀까지 지키는 비결은 결국 평상심이 아닐까.

    [조효성 매일경제 스포츠레저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6호(2014년 0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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