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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국가인가, 자본주의 국가인가?
입력 : 2014.06.27 11: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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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사회주의 실감 내가 중국을 드나들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부터였다. 당시의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라는 것을 시시각각 실감할 수 있는 나라였다. 가이드는 공무원이었고, 여행사는 국영이었으며, 숙소도 호텔보다 초대소일 경우가 많았다. 식사를 하는 것도, 물건을 사는 것도, 화장실에 가는 것도 국가에서 운영하는 장소에 가지 않으면 불가능했다. 당시의 중국은 국가가 모든 사람에게 직장을 마련해 주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화장실 앞에도, 공원입구에도, 기차역 광장에도,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도 완장을 차고 자기 직분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어디를 가건 완장 찬 사람들로부터 자주 야단을 맞으면서 사회주의 국가라는 것을 시도 때도 없이 실감해야만 했었다.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라는 사실을 가장 실감하는 거의 유일한 장소는 천안문 광장이다. 오성홍기(五星紅旗)가 휘날리는 광장의 중심부에 서서 천안문 중앙에 걸려 있는 마오쩌둥의 대형 초상화와 그 왼편에 ‘중화인민공화국 만세(中華人民共和國萬歲)’라고 크게 써놓은 글씨를 마주하게 되면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가 있다. 중국의 공식명칭이 ‘중화인민공화국(The People’s Republic of China)’이란 사실을 눈으로 실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천안문 광장을 벗어나 일상생활 속으로 들어가면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라는 것을 느낄 요소는 많지 않다. 마주치는 풍경 대부분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위력을 보여주는 슈퍼마켓과 패스트푸드점의 인파, 주식과 부동산에 대한 사람들의 열정적 관심, 별장과 골프장을 선전하는 요란한 광고판, 사무실 근무자와 현장 노동자의 출퇴근 행렬, 떠돌이 농민공들로 북적이는 기차역, 고급아파트와 서민아파트의 선명한 대비 등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현재의 중국에서 시장경제의 위력을 보여주는 것들은 눈앞에 즐비한 반면 그것들을 기획하고 제어하는 공산당과 행정관청은 자본주의적 풍경의 이면에 조용히 숨어 있다.
중국 당국은 중국이 현재 걸어가고 있는 길을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다시 말해 ‘중국식 시장경제 체제’ 라고 말한다.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에 대해 중국에서 마르크스주의 연구자로 대표적 인물인 남경대학의 장이빈(張異賓) 서기는 나에게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다. “분명히 말하지만 중국은 자본주의 국가가 아니라 사회주의 국가이다. 서방 국가 중에도 자기 현실에 맞는 사회주의를 모색하는 국가가 있는 것처럼 중국은 중국의 현실에 맞는 사회주의 국가를 지향하고 있다”고 그는 거침없이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에서 ‘중국 특색’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로 광대한 영토와 생활수준의 차이를 들었다. 중국은 남과 북, 해안지역과 서부지역 사이에 자연환경에서 비롯된 빈부의 격차가 있고,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만들어내는 생활수준과 수많은 문제들이 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통제하고 조절하며 발전해 나갈 수밖에 없다고 그는 힘주어 강조했다.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는 바로 그 통제와 조절의 필요성이 만들어낸 이념이자 체제라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날로 심각해지는 빈부격차 문제에 대해 그는 “축적된 자본을 가지지 못한 중국이 발전의 기본적 에너지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생긴 일시적 부산물일 따름이며, 중국 정부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고 앞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장이빈 서기의 설명은 명쾌하고 논리적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중국의 경우 장이빈 서기가 강조한 자연적 조건과 현실적인 필요성에 못지않게 경험적이고 역사적인 측면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우리 인간은 개인이건 집단이건 참담한 좌절을 맛보지 않고는 자기 고집을 쉽사리 꺾지 않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가 하루아침에 등장한 것이 아니라 과거의 실패에 대한 역사적 경험에서 등장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하고 싶었지만 그러자면 장이빈 교수 앞에서 중국공산당의 오류를 지적해야 했다. 1949년 중국공산당이 승리한 후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해 나가는 과정에서 저지른 참담한 실패들을 먼저 지적해야 했다. 그런데 손님의 입장에서, 또 나를 따뜻하게 맞아준 중국공산당의 핵심 이론가 앞에서 상대방의 약점을 공격하는 것처럼 느껴질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당시 소녀 홍위병이었으며 후일 영국에서 『대륙의 딸』이란 자서전을 쓴 장룽(張戎)은 문화대혁명을 가리켜 “끊임없이 대립과 갈등을 일으켜 엄청난 고통과 죽음을 가져온 권력투쟁”이라고 회고하고 있다. 그리고 하루하루의 생존마저 힘겹게 만들면서 오로지 마오쩌둥 우상숭배로 흘러간 이 광기에 찬 혁명에 대해 “혁명의 대의를 성취한 후 최고 권력자가 권력을 사유화하여 자신을 신격화할 때 그 혁명은 바로 무서운 재앙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장룽의 말처럼 문화대혁명은 중국의 수많은 문화재를 파괴하고, 중국 최고의 지성인이었던 첸인커(陳寅恪), 펑요우란(馮友蘭), 지셴린(季羨林) 등에게 씻을 수 없는 수모를 안기고, 중국의 발전을 20년 이상 지체시킨 대재앙이었다.
1979년 11월 덩샤오핑은 시장경제는 자본주의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중국은 “계획경제를 위주로 하여 시장경제를 결합시켰다”고 말했다.
그리고 1990년 12월에는 “사회주의에도 시장이 있으며, 자본주의에도 계획에 의한 통제가 있다”고도 했다. 덩샤오핑의 이러한 말에는 물론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라는 사실이 전제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나에게는 그러한 전제보다는 ‘시장경제’ 쪽에 훨씬 무게가 실린 것처럼 느껴진다. 그 이유는 덩샤오핑이 선부론(先富論)을 내세우며 마오쩌둥의 평등주의를 타파했기 때문이다. 일부 지역의 경제가 먼저 발달하거나 일부 주민의 경제가 먼저 부유해지는 일, 다시 말해 빈부격차와 같은 자본주의 사회의 부정적 현상도 경제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는 이야기를 덩샤오핑이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일까, 자본주의 국가일까? 그 답은 우리 스스로 마련해야 할 것이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6호(2014년 0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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