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EO 걷기 프로젝트] 風하니 氣가…정남진 편백숲 우드랜드

    입력 : 2014.06.20 13:34:00

  • 말레길을 올라 억불산 정상에서 바라본 득량만
    말레길을 올라 억불산 정상에서 바라본 득량만
    공자가 제자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의 소원이 무엇이더냐.”

    그러자 제자 중 염유가 말했다.

    “작은 고을을 맡아 3년 만에 풍요롭게 하겠습니다.”

    옆에 있던 공서화가 말했다.

    “종묘 제사나 회의 때 보좌관을 맡고 싶습니다.”

    동료들의 말을 듣던 증점이 말한다.

    “봄이 되면 간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농번기가 지나면 어른 대여섯, 동자 예닐곱과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 쐰 후 노래 부르며 돌아오고 싶습니다.(浴乎沂風乎舞雩詠而歸)”

    논어 선진편에 나오는 ‘풍욕(風浴)’의 유래다.

    땀 흘려 일한 후 함께 한 이들과 마음 편히 즐기는 게 무어 그리 어려운 일일까. 허나 생각처럼 쉽지 않은 건 그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였나 보다. 과연 바람에 몸을 맡기는 게 어떤 기분일지, 내처 초여름 풍욕을 찾아 나섰다.

    도착한 곳은 전라남도 장흥.

    억불산 중턱에 자리잡은 ‘정남진 편백숲 우드랜드’(이하 우드랜드)에 들어서자 새소리, 물소리 실은 바람이 푸릇하다. 불어오는 내음에 취해 나무 사이 해먹에 누우니 증점의 말마따나 노래 한 구절이 툭 튀어나왔다. 편백나무 숲에 나무데크로 길을 튼 이곳은 산마루까지 이 데크가 쭉 뻗어있다. 계단이 없어 별 어려움 없이 주변 풍광을 즐기다 보면 어느 새 득량만이 눈앞에 펼쳐진다. 커다란 바위가 버티고 선 정상에 이르면 중턱에서 흥얼대던 노래가 다시금 입에 척 달라붙는다.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뭐 별다른 걱정 없다~”

    마음속 바람을 담은 바람 한 줌이 장흥 시내를 돌아

    득량만으로 휘돌아 나갔다.

    숲을 가로지르는 나무데크 산책로
    숲을 가로지르는 나무데크 산책로
    전라남도 장흥 정남진은 육지 끝에 자리했다. 서울 광화문에서 정남쪽으로 내달아 도착한 나루터가 정남진이니 결코 쉽지 않은 여행길이다.(동쪽 끝은 강릉의 정동진, 서쪽 끝은 인천의 정서진이다.) 서울에서 KTX를 타고 광주역에 도착해 차로 이동해야 하니 당일여행보단 1박 혹은 여름휴가 코스가 어울리는, 더 이상 ‘빨리 빨리’는 집어치우고 먼 산, 먼 바다 바라보다 감탄해야 마땅한 길이다. 물론 바다를 끼고 도는 해안도로의 풍광은 빼어나다 못해 눈이 시리다. 녹차로 유명한 보성의 푸른 절경은 덤이다.

    또 하나의 덤은 곳곳에 조성된 문학길이다. 갑자기 생뚱맞지만 장흥은 살아 숨 쉬는 문학의 숲이자 바다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관서별곡’을 지은 기봉 백광홍부터 현 시대 한국문학의 거목 이청준과 한승원, <자랏골의 비가> <녹두장군> 등을 잉태하며 민중의 삶을 절절히 그려낸 송기숙까지, 수십 명의 문인들이 이곳에서 나고 자라 이름을 남겼다. 그들의 생가와 문학관 등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소설문학길은 총 4구간인데, 이청준 생가에서 대덕읍 삼거리에 이르는 2구간을 제외하면 모두 자동차로 이동할 수 있다.
    우드랜드 내에 조성된 조각공원
    우드랜드 내에 조성된 조각공원
    팬티 한 장 달랑 걸치고 바람에 몸을 맡기는… 여타 나무에 비해 5배나 많은 피톤치드를 내뿜는 편백나무가 약 100ha에 걸쳐 식재된 우드랜드(13만1896㎡)는 다양한 시설과 산책로 덕분에 치유의 숲으로 알려진 곳이다. 건강 성분이 풍부한 피톤치드는 폐렴이나 염증 등을 일으키는 균을 죽이고 각종 감염 질환이나 아토피 피부염 치료, 고혈압, 콜레스테롤 치료에 효과적이다. 숲에선 도시의 10배나 되는 음이온이 방출되는데 부교감신경을 활성화시켜 불면증을 완화시킨다. 당연히 스트레스와 피로개선에 좋다. 봄부터 숲이 내보내는 피톤치드 양이 서서히 증가하다 기온이 상승하는 여름철이면 절정에 이른다.

    나무데크가 촘촘한 산책로는 조각공원, 폭포, 숙박시설(통나무주택, 황토주택, 한옥 등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 등으로 이어진다. 제대로 구성된 테마공원을 연상시키는 곳곳의 풍경은 이미 시간의 굴레를 벗어났다. 어쩌면 뉘엿 넘어가는 해보다 길게 늘어진 그림자의 길이로 하루를 가늠하게 되는, 도심에선 전혀 생각지 못했던 여유가 이곳저곳에 널려있다.

    산책로 끝자락에는 우드랜드의 명물로 손꼽히는 ‘비비에코토피아’가 오는 이를 반긴다. 한때 누드삼림욕장으로 소개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지금은 부직포로 만든 가벼운 옷을 걸치고 풍욕을 체험하는 공간이 됐다. 안으로 들어서니 곳곳에 설치된 그늘막과 해먹이 이채롭다. 쭈뼛거리다 해먹에 몸을 뉘이니 새소리 물소리 실은 바람이 더없이 상쾌하다. 남자는 부직포로 된 사각 팬티가 제공되는데, 말 그대로 한 장 달랑 걸치고 덜렁 야외로 나선 기분이 썩 괜찮다. 6월부터 11월까지 개방되는 제대로 자유로운 공간이다.

    우드랜드를 운영하는 장흥군의 한 관계자는 “주말이면 4시간이고 5시간이고 먼저 오는 분들이 그늘막을 독차지해 이곳저곳에 양보를 부탁해야 할 만큼 관광객이 많다”고 전했다.

      비비에코토피아에 설치된 해먹과 짚으로 엮은 움막
    비비에코토피아에 설치된 해먹과 짚으로 엮은 움막


    말레길에 오르니 사방이 탁! 압권은 역시 말레길이다. ‘말레’는 대청이나 마루를 뜻하는 전라도 사투리다. 정상까지 나무데크로 조성된 약 3.8㎞의 산행길은 부처가 서있는 것 같은 기암괴석을 지그재그로 휘돌아 나가며 탁 트인 하늘로 걸음을 안내한다. 계단이 없어 밀어주는 이가 있으면 휠체어도 거뜬히 오를 만큼 안정적인 코스다. 보통 걸음으로 1시간 30분이면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다.

    해발 518m의 억불산(億佛山)은 육지 쪽으로 돌아보면 장흥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바다 쪽으로 멀리 보면 보성군, 고흥군, 완도군이 지척이다. 높진 않지만 주변 산세가 험하지 않아 산과 바다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산과 물이 어우러진 풍경에 언뜻 스위스가 자랑하는 리기산이 떠올랐는데, 오히려 말레길이 아기자기하고 코스가 비교적 짧아 지루하지 않다. 내려오는 길엔 편백소금집에 들러야 한다. 편백나무의 피톤치드향과 국내산 천일염을 이용한 피부질환 치유공간이다. 간단히 말해 도심의 넓은 찜질방을 닮았는데, 목욕탕을 샤워실이 대신하고 있다. 이용요금은 1인당 1만원. 땀 흘린 후 즐기는 소금 찜질은 뭐랄까. 해보지 않은 이들이 어찌 이 기분을 알 수 있을까. (061)864-0063

    www.jhwoodland.co.kr

    억불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장흥 시내
    억불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장흥 시내
    장흥 문학길 △1구간(소설문학길)

    대덕읍삼거리∼천관문학관∼천관문학공원

    △2구간(눈길)

    이청준생가∼아들바위∼질깔끄막∼책상바위∼대덕읍삼거리

    △3구간(이청준 소설문학길)

    회진버스터미널∼천년학세트장∼선학동∼진목마을∼이청준묘소

    △4구간(한승원 소설문학길)

    회진버스터미널∼한재고개∼한승원생가∼한승원문학현장비

    (2구간을 제외하고는 자동차로 이동할 수 있다)



    장흥의 별미 ‘장흥삼합’ 어느 지방이나 한우가 특산물이라지만 장흥의 한우는 가격이 저렴하기로 유명하다. 특히 ‘정남진 장흥토요시장’은 관광객들이 꼭 한 번은 들른다는 필수코스 중 하나다. 이곳의 별미는 장흥한우에 수문포 앞바다가 주산지인 키조개와 표고버섯을 곁들인 이른바 ‘장흥삼합’이다. 일대 정육식장이 대부분 취급하는 메뉴다. 물론 제대로 맛을 보려면 재료가 싱싱한지 확인부터 해야 한다. 평일에도 손님이 많은 탓에 손질한 지 오래된 키조개 관자가 상에 오르는 집도 있다. (061)804-7002



    정남진에서 맞이하는 일출 정남진은 남해에 있지만 동쪽을 바라보고 있어 일출을 감상할 수 있다. 장흥군 관산읍 삼산리에 자리한 46m 높이의 정남진 전망대(지하 1층, 지상 10층 규모)에 오르면 득량도, 소록도, 연홍도, 거금도 등 남해바다 섬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장대한 해맞이를 경험할 수 있다.

    장흥군청 문화관광과 (061)860-0224

    [장흥=안재형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5호(2014년 0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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