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S칼텍스 매경오픈 챔피언 박준원의 ‘느림의 미학’

    입력 : 2014.06.20 13:3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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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른 잔디위로 힘차게 스윙하는 주말 골퍼들을 떠올려 보자. 천천히 부드럽게 볼을 치는 사람이 많을까 아니면 백스윙을 하자마자 급하게 볼을 내려치는, 빠른 스윙을 하는 사람들이 많을까.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떠오르는 이미지는 대부분 비슷할 것이다. 골프볼을 세게 치기 위해 빠르고 힘껏 스윙하는 골퍼들이다. 어떤 이들은 백스윙을 하려다 어느새 몸이 꼬이며 다운스윙을 하기도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주말 골퍼들이 있는 힘껏 스윙을 해도 프로골퍼들이 ‘툭’ 치는 것보다 거리가 안 나간다는 것이다. 손목, 어깨, 허리 등 온몸이 쑤시는 ‘과격한 스윙’의 부산물도 피할 수 없다.

    그럼 장면을 5월 초 GS칼텍스 매경오픈이 열린 남서울CC로 옮겨보자. 프로데뷔 후 첫 우승을 차지한 박준원의 스윙을 본 갤러리들은 모두 ‘너무 느리다’, ‘힘 없이 친다’라며 한마디씩 던졌다. 하지만 박준원의 아이언샷은 ‘짝’하는 강렬한 소리와 함께 힘차게 뻗어나가 그린에 사뿐하게 내려앉았다.

    반전도 이런 반전이 없다. 힘을 하나도 안 들인 듯 천천히 치는데 주말 골퍼가 온 힘을 다해 볼을 때린 것보다 더 잘 날아가다니. 사실 박준원의 스윙은 어떻게 보면 ‘너무 느리게’ 움직이는 듯 보인다. 마치 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 박인비의 백스윙 템포와 비슷하다.

    사실 ‘느린 스윙’, 엄밀하게 말해서 ‘느린 백스윙’은 아마추어들이 굿샷을 날리기 위해 더욱 필요한 부분이다.

    프로골퍼들은 엄청난 연습을 통해 빠른 스윙으로도 ‘정타’를 칠 수 있다. 하지만 아마추어들 중 빠르고 급한 스윙에 정타를 치는 사람은 드물다. 연습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원래 박준원도 백스윙이 느린 골퍼가 아니었다. 박준원은 “몇 년간 훈련을 하면서 억지로 스윙 스피드를 빠르게 한다고, 거리가 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리듬 있는 스윙으로 임팩트 때 적절하게 힘만 실어주면 자기 능력에 따라 최대한 거리가 나는 것도 깨닫게 됐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박준원은 “주말 골퍼들은 근력과 유연성 등 자신의 한계를 알고 거기에 맞는 스윙을 찾는 게 중요하다”며 “그렇게 하면 거리를 손해 보지 않으면서 정교한 샷을 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타이거 우즈와 로리 매킬로이처럼 빠르고 강한 스윙을 상상하는 골퍼들에게 ‘느림’이란 ‘여유’가 아니라 답답한 과정일 수 있다. 하지만 골프 전설들의 명언을 보면 박준원과 같이 ‘느림의 미학’을 강조한 이들이 많다. 그들 또한 도달하고 싶은 ‘골프 득도’의 정상이 바로 ‘느림’이기 때문이다.

    “골프에 너무 느린 스윙이란 없다”는 유명한 명언을 남긴 ‘골프 구성’ 보비 존스는 “아주 느리게 스윙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한 바 있다. 또 윌터 심슨은 “백스윙을 할 때 귀에 앉아있는 파리라도 잡을 것처럼 성급하게 휘둘러 올리지 말라”고 강조했다.

    ‘느린 백스윙’은 천천히 여유 있게 스윙을 시작하며 온몸을 제어하고 힘을 응축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느린 스윙을 할 수 있는 골퍼는 스윙을 아무리 빠르게 해도 자신의 스윙 궤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지금 천천히 스윙을 한 번 해보면 알 수 있다. 백스윙을 할 때 온몸의 각 부분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자연스럽게 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특히 급하게 백스윙을 하는 골퍼일수록 느리게 하는 스윙과 실제 스윙과의 차이가 크다.‘느림’을 강조하는 것은 그저 ‘천천히’ 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골프 전설부터 현역 프로골퍼들이 ‘느림’을 강조하는 이유는 가장 효율적인 스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준원은 “약간 흐느적거리는 느낌으로 편안하게 백스윙을 하면 몸과 팔이 하나로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한 뒤 “몸과 팔이 하나로 움직이면 방향성과 비거리가 모두 좋아진다. 억지로 빠르게 스윙을 하면 팔만 사용해서 방향과 거리가 들쭉날쭉하고 뒤땅이나 미스샷이 날 확률이 많다”고 덧붙였다.

    아마추어들이 느린 백스윙을 바로 실천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쉬운 방법이 하나 있다. 바로 스윙을 할 때 백스윙 톱에서 한 박자 쉬었다가 다운스윙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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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윙 템포 살리는 비결 자신의 이름을 딴 PGA투어 대회가 있을 정도로 인정받고 있는 바이런 넬슨은 “백스윙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는 다운스윙을 시작해서는 안 된다”고 스윙의 템포와 여유를 강조한 바 있다.

    백스윙을 한 뒤 잠깐이라도 시간을 갖으라는 이야기다. 스윙이 빠르면 백스윙이 완료되기도 전에 다운스윙에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백스윙 톱에서 잠깐 멈추면 백스윙과 다운스윙 동작이 분리되면서 스윙 전체의 템포가 좋아지고 다운스윙을 느리게 시작해 임팩트 순간에 최대의 파워를 낼 수 있다. 물론 ‘정타’로 인한 비거리 증대는 보너스다.

    여유 없는 스윙에서는 절대로 이 한 박자의 쉼표를 기대할 수 없다. 당연히 굿샷 또한 늘 상상만 해야 하는 꿈같은 일이 된다.

    멀리 치기 위해 급하고 빠르게 스윙을 하는 주말 골퍼라면 GS칼텍스 매경오픈에서 쟁쟁한 장타자들을 꺾고 우승트로피를 품에 안은 ‘아이언맨’ 박준원의 한마디를 새겨보는 것이 좋다.

    “리듬 있는 스윙을 하기 위해서는 일단 멀리 보내야겠다는 강박관념을 버려야 합니다. 방향성과 일관성을 염두에 두면서 가능한 한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스윙을 하다 보면 원하는 거리만큼 나가는 것입니다.”

    [조효성 매일경제 스포츠레저부 기자 사진 이승환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5호(2014년 0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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