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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동 ‘오월의 종’ 빵사려 매일 1시간씩 줄선다는데…
입력 : 2014.04.11 17: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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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웅 오월의 종 오너셰프
“지방에서 오셨다며 잔뜩 사가야 한다는 분들이 꽤 있어요. 사실 저도 이해가 안가요.(웃음) 기다리는 분도 있으니 곤란해서 그럴 때마다 빵은 갓 만들어 온도가 적당해야 맛있으니 알맞게 사시라 말씀드려요. 동네빵집 가보시라고. 사실 찾아보면 맛있는 빵이 많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단위면적 기준 국내 최대 규모 인근 빵집 ‘패션5’를 뒤로하고 오월의 종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빵들을 천천히 살펴보면 딱딱하고 밋밋한 식사용 빵이 대부분이다.
단팥빵이나 소보로 등 극소수의 조리빵을 제외하고 우유나 버터도 없이 밀가루에 소금과 물 그리고 천연 발효종을 넣어 반죽하는 것이 전부란다.
그 중에서도 밀리언셀러를 꼽자면 재료를 듬뿍 넣은 크랜베리 바게트, 무화과 호밀빵, 호두곡물 식빵 등이다. 평소 제 돈 내고 빵 사먹는 일이 없는 기자가 먹어봐도 고소하고 식감이 쫄깃해 질리지 않아 앉은자리에서 여러 개를 해치웠다.
“제가 만든 케이크는 제가 먹어도 맛이 없더라고요.(웃음) 웰빙에 초점을 맞춘 것도 아니에요. 재료를 충분히 사용하되 자극적인 맛을 지양한 식사용 빵을 만들 뿐이지요. 사용하는 밀가루도 유행하는 프랑스산이나 유기농이 아니라 일반슈퍼에서 살 수 있는 국내산입니다.”
토종 유학(?)을 마치고 일산에 빵집을 열었다. 평소 애송하던 시 비지스의 <First of May>에서 영감을 받아 ‘오월의 종’이라는 근사한 상호도 만들었지만 도통 손님이 없었다.
“호밀빵에서 시큼한 냄새가 난다고 상한 것 아니냐고 항의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체인점의 달고 자극적인 빵이 큰 인기를 끌고 있었으니 저희 빵은 익숙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도 그때 단골 중 아직도 찾아주시는 분도 계세요.”
결국 3년 만에 빵집 문을 닫게 된 정 셰프는 절치부심했다. 어렵게 돈을 빌려 ‘오월의 종’ 1호점 자리에 다시 문을 열었다.
“주변에서 ‘패션5’가 인근에 있는데 괜찮겠느냐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이름만 보고 옷가게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엄청난 빵집이더라고요. 규모만큼 빵의 종류나 만드는 방식도 많이 다르죠.”
담백하고 질리지 않는 빵맛이 입소문을 타면서 단골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웰빙바람이 거세게 불어온 2년 전부터 일찌감치 빵이 동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신세계를 비롯해 여러 기업들이 프랜차이즈 제안을 하기 시작했다.
“상호만 빌려달라거나 일정량의 빵만 만드는 현재의 시스템을 유지해서 백화점 등에 입점하자는 제안도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보다 규모를 늘려서는 빵맛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아요. 어떤 제안이 들어와도 안할 겁니다.”
빵은 아무리 많이 먹어도 하루 한 끼 이상은 자제하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빵집 사장답지 않은 조언을 할 정도로 말 한마디마다 진솔함이 묻어났다.
‘오월의 종’은 이태원에 문을 연 지 여섯 해나 지났지만 하루에 만드는 빵의 양은 그다지 늘지 않았다. 정 셰프에게 조금 예민할 수 있는 질문을 던져봤다. 허탕을 치는 사람의 거센 불평을 감수하면서도 생산량을 고집하는 것이 혹시 마케팅 상술은 아닐까?
“가끔 그런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지금보다 양을 늘리면 빵맛이 변해요. 호밀빵 같은 경우는 발효부터 반죽까지 일주일 정도 걸리고 비교적 재료나 과정이 간단한 바게트나 식빵도 기온이랑 습도에 민감해 손이 많이 가거든요. 제가 게으르기도 하지만 나름 매일 맛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는 선에서 한계치를 만들고 있습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하루 일과를 시작해 재료준비를 마치는 12시가 넘어서야 잠에 든다고 하니 게으름이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오히려 정 셰프는 지난해 50m도 되지 않는 곳에 2호점을 냈다.
이곳은 보다 넓은 공간에 넉넉한 양의 빵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만드는 빵은 1호점과 다르다. 1호점보다 더 투박하고 담백한 식사빵만을 만든다. 2호점 역시 오후 2시 이후에 가면 남아있는 빵을 구경하기 힘들다.
“인테리어 쪽에 있는 아내의 도움을 받아 최소한의 테이블이랑 가구 몇 개 들여놓고 했어요. 그래도 빵이 인테리어 효과를 내주니 그럴듯하죠?”
[박지훈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3호(2014년 0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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