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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보듬은 오솔길 부산 이기대 갈맷길
입력 : 2014.04.08 17: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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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말에서 바라본 해운대 마린시티. 이기대 갈맷길의 뷰포인트다.
“차라리 바다 길로 나서는 게 좋겠습니다. 바닷바람이 곧 봄바람인데, 이 비릿한 바람이 여간 부드럽지 않거든요. 따뜻한 기운에 살짝 찬 기운이 맞물린 바람은 이 시기가 아니면 결코 맛볼 수 없습니다.”
그 길로 KTX 타고 부산역에 도착했다. 그의 말마따나 항에서 불어오는 비릿한 바람이 광어살마냥 보들보들했다.
무료로 즐기는 바다 절경, 오륙도 스카이워크 제주도에 올레길이 있다면 부산에는 갈맷길이 있다. 부산전역을 이어놓은 갈맷길 700리는 9개의 코스로 나뉜다. 선택한 구간은 2코스 2구간(민락교앞~오륙도선착장, 11.8㎞) 중 오륙도 스카이워크부터 동생말까지 이어진 이기대 갈맷길(4.7㎞)이다.
“저 앞에 보이는 게 대마돕니다. 배타고 나서면 직선거리로 한 시간 반이에요. 그냥 우리 땅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자리에요.”
길이 시작되는 오륙도 스카이워크에서 바다를 바라보니 대마도가 지척이다. 관리하는 분이 한마디 하자 누구랄 것도 없이 “우리 땅”타령이다.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마다 목메어 불러 봐도 대답 없는 내 형제가 있긴 한 건지 아리송하지만, 투명한 스카이워크 앞에 버티고 선 오륙도는 그러거나 말거나 아무 말이 없다.
절벽 위에 자리한 오륙도 스카이워크는 유리바닥이 설치된 전망대다. 부산의 명소 중 하나인데, 강원도 정선의 병방치 스카이워크와 달리 별다른 입장료가 없다. 그래서인지 평일에는 2000여 명, 주말이면 5000여 명이 찾는다고 한다.
스카이워크를 등지고 오른쪽 해맞이공원으로 걸음을 옮기면 동생말까지 바다를 끼고 도는 이기대길이 시작된다. 두 기생의 무덤을 의미하는 이기대(二妓臺)의 유래는 임진왜란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왜군이 수영성을 함락시키고 경치 좋은 이곳에서 축하잔치를 열었는데, 기녀 두 사람이 술 취한 왜장을 끌어안고 절벽으로 몸을 던졌다고 한다. 두 기녀가 이곳에 묻혀 있어 이기대란 지명이 생겼다.
데크로 마무리된 이기대 갈맷길
“누가 만들었는지 참 잘 만들었네. 바다 옆에 이런 길을 어찌 만들었을까.”
잠시 쉬어가는 이들 중 열에 일곱은 길에 대한 찬사로 말문을 연다. 부산 토박이 한분의 말을 옮기면 “오늘은 비가 와서 그런지 사람이 없는 편인데, 주말이면 좁은 길에 사람이 엉켜 2시간 반이면 갈 길을 한 시간 이상 지체해요”란다. 정말 그도 그럴 것이 기둥이 촘촘한 갈맷길은 오르락내리락 꼬불꼬불 이어진 오솔길이다. 때로 홀로 지나기 버거울 만큼 좁고 아담하다. 덕분에 좋은 경치 놓칠세라 휴대폰 들고 사진이라도 찍게 되면 쫓아오던 이들이 뻘쭘하게 기다려야 한다.
한 시간 반쯤 걷다 어울마당 근처에 다다르면 길은 바다에서 산으로 휘돌아 나간다. 소나무가 수북한 숲에 들어서면 캠핑장소로 이보다 좋은 곳이 없다. 하지만 이곳은 캠핑이 불가능하다. 어울마당은 공연장이 연상되는 탁 트인 공간이다. 영화 <해운대>의 한 장면이 이곳에서 촬영돼 스크린 속 그 장소에서 사진 찍는 이들이 간간이 눈에 띈다. 이곳에 도착하면 길은 더 이상 오르고 내리지 않는다. 평평한 산책길로 모습을 달리한다.오륙도 스카이워크 (아래)구름다리. 총 127m, 5개의 현수교가 해안절벽을 가로지르고 있다.
밟고 선 곳은 자연그대론데 눈에 들어온 건 첨단이니 생경하지만 익숙한, 따뜻하지만 살짝 찬 기운 섞인 봄바람과 어쩌면 궤를 같이 한다.
동생말에 도착하면 현대적인 디자인이 돋보이는 예식장이 눈에 띈다. 그 아래로 내려서야 도로에 닿을 수 있다. 도로 옆 항구에 살짝 걸쳐진 회집에는 30년 경력의 선장이 주인이란 문구가 선명했다. 끼니도 해결할 겸 문을 열고 들어서니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길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아이고, 비오는 날에 고생하셨네. 맑은 날엔 절벽이 버글버글합니다. 덕분에 먹고 사는 형편이 나아졌어요. 길 따라 가는 게 인생이라더니 이렇게 길 놓고 나니 먹고 살만해 졌어요. 요즘은 뭔가 특이해야 벌어 먹고 산다니까.”
[안재형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3호(2014년 0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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