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태 오너 셰프 | 대금 아코디언 연주하는 일본 요리 전설

    입력 : 2014.03.10 14:2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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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가 예순여덟이니 꼭 50년 됐다.” 현역 최고령이자 최고참인 일본 요리의 전설은 잠시 눈을 감으며 과거를 회상했다. “대전서 올라와 먹고 잘 곳을 찾아다녔다. 피카디리극장 앞 종로3가 인력시장에서 소개받아 삼선교의 녹음식당이란 곳으로 갔다. 열여덟 살 때다. 당시는 월급도 없이 밥만 먹여주면 하루 종일 일하고 테이블 위에서 잘 때였는데도 그나마도 머리가 크다고 쓰지 않으려 했다. 마침 주방장이 종씨 아저씨라서 가까스로 자리를 잡았다.” 김 셰프는 처음엔 요리사가 될 생각은 없었고 학교에 가고 싶었는데 먹고 자는 게 급해 그곳에 들어갔다고 했다. “당시 일식집은 멋쟁이만 가던 고급 사교장이었다. 여자는 없던 곳이다. 나보다 어린 아이는 월급을 받았는데 나는 월급도 없었다. 어린 아이에게 “네, 네” 하면서 일을 배웠다. 6개월 만에 경력을 부풀려 다른 곳으로 옮겨 월급을 받게 됐지만 실력이 들통 나 바로 잘리기도 했다. 실력이 없었으니 …. 일을 배우는 동안 연탄 갈고 칼 가는 것도 큰 일과였다. 당시 모든 식당이 연탄으로 요리할 때라 화덕에 수십 장씩 연탄을 넣어야 했다. 시뻘건 불덩어리를 들고 씨름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매일 칼을 갈았다. 조금이라도 잘못 갈면 주방장이 시멘트 바닥에 칼날을 박박 문지른 뒤 다시 갈라고 했다. 한 시간, 두 시간 쉬지 않고 갈아야 했다.” 그 고생을 하며 이곳저곳을 전전하다가 어느 식당에서 초밥(스시)의 전설 고 박감용 씨를 만났다. “사람들이 저 분이 일본초밥대회에서 1등 했다기에 그렇다면 제대로 배워보자고 나섰다. 당시는 누구에게도 선뜻 기술을 전해주지 않던 때였다. 그 분은 버스가 하루 두 번 다니는 김포에 집이 있어 식당에서 잠자고 일하며 일주일에 한 번만 다녀왔다. 그래서 매일 양말 빨아드리고 월급 타면 담배도 사다 드리고 하니 겨우 마음을 열고 초밥 기술을 가르쳐 주겠다며 콩비지와 신문지를 줬다. 밥과 김 대신 젓가락 고명을 넣은 콩비지를 신문지에 마는 연습을 먼저 하라는 것이었다. 열흘간 열심히 연습했는데 퇴짜를 놨다. 한 달 동안 진짜 열심히 연습해 매번 고르게 말게 되니 그때서야 초밥을 만들어 보라고 했다.” 신기에 가까운 초밥기술을 전수받기 시작했는데 3개월 뒤 갑자기 박 씨가 쓰러졌다. 지병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초밥왕의 첫 번째이자 마지막 제자가 됐다. 기간이 짧아 이후 스스로 실력을 다져야 했다. 비둘기부대에 배속돼 베트남에 다녀온 그는 1976년 플라자호텔로 직장을 옮겼다. “플라자호텔에 있을 때 일본 다카나와 프린스호텔에서 연수했다. 거기 사람들과 명인을 찾아다녔다. 골목 깊숙이 있는 작은 초밥집이라 아는 사람만 찾아가는 곳이었다. 대가들은 대개 그런데 숨어 있었다.” 초밥왕의 비전을 전수받은 그에겐 기량을 최고조로 끌어올릴 절호의 기회였다.

    김 셰프는 “내가 만드는 공기떡 초밥은 아주 어렵다. 한국엔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실제 그가 손가락을 살짝 놀려 만든 초밥은 겉보기엔 일반 초밥 같은데 베물면 묘하게 구멍이 보인다. 그 구멍 안 공기 때문에 초밥이 입안에서 뭉치지 않고 부드럽게 흩어진다는 것이다. 고수가 된 그는 동업으로 일식집 ‘이화’를 개업했고 한양대에서 일식요리 강의도 했다. 그러다가 자신만의 자리를 찾아 2011년 방배동에 스시하꼬를 열었다. 김 셰프는 “이전 식당에서 만난 손님들이 내 음식 없어서 살맛이 안 난다며 먼 곳까지 찾아오기도 한다”며 고마워했다. 음식 솜씨 뿐 아니라 그에게 느끼는 정 때문일 게다.

    정통 일식집답게 그는 마쓰자께를 낸다. 됫박 같은 히노끼 잔에 정종을 따르는 것. 친한 손님에겐 넘치도록 따른다. 넘치는 잔은 받침에 받아 다시 잔에 부으면 되니 덤인 셈이다. 자주 찾는 고객에겐 아예 히노끼 잔에 이름을 써서 준다. 30년 넘게 사용한 됫박을 갖고 영면한 손님도 있다하니 보통 인연이 아닌 셈이다. 그 뿐이 아니다. 손님을 위해 대금이나 색소폰을 연주하고 생일엔 클라리넷도 불어준다. 좋은 음식 좋은 술에 흥까지 돋워주는 그는 진짜 프로다.

    스시하꼬는 7호선 내방역 가까운 방배롯데캐슬아파트 앞 골목 1층에 있는 작은 식당이다. 여름의 민어풀소 등 계절 특선요리를 내기도 한다. 적어도 하루 전 예약해야 이용할 수 있다. 점심은 하지 않고 저녁에만 한다. 셰프가 알아서 대접하는 ‘오마카세’는 9만원. 와인을 가져갈 경우 코키지 차지는 3만5000원. 미리 보내 놓으면 셀러에 적당한 온도로 보관해준다.

    (02)533-9843

    [정진건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2호(2014년 0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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