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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작가는 정해져 있다
입력 : 2014.03.10 14:2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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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박수근탄생 100주년 회고전에 나온 박수근의 ‘앉아있는 여인’(1963, Oil on canvas, 65x53cm)가나아트센터 제공, (오른쪽)박수근의 ‘아기 업은 소녀와 아이들’(1950년대, Oil on canvas, 45.8x37.5cm) 가나아트센터 제공
박수근의 ‘빨래터’(1959, Oil on canvas, 50.5x111.5cm). 가나아트센터 제공
해마다 연초가 되면 국내외에서 작년 한 해의 미술시장 결산이라는 걸 내놓는다. 그 결과를 보면 언제나 똑같은 작가들이다. 이를 두고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지만, 미술시장도 어디까지나 시장이기 때문에, 수요가 많은 작가가 늘 잘 팔리는 작가라는 건 당연하다.
‘한국 아트밸류(Art Value) 연구소’(소장 최정표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에서 올해 초 내놓은 ‘2013년 한국 미술시장 총결산’을 보면, 2004~2013년 사이에 팔렸던 미술작품의 가격지수로 볼 때, 비싼 작가 ‘톱10’은 박수근, 이중섭, 도상봉, 김환기, 천경자, 장욱진, 유영국, 이대원, 오지호, 이우환이었다. 미술애호가라면 모두가 다 아는, 늘 듣던 이름이다.
국제 미술시장분석기관인 아트프라이스닷컴(artprice.com)이 내놓는 한 해 결산 자료를 봐도, 비싼 작가 ‘톱10’에는 피카소, 앤디 워홀, 게르하르트 리히터, 마크 로스코, 프란시스 베이컨 등 시장에 자주 나오는 작가들이 해마다 나온다. 해를 거듭할 때마다 중국 현대작가들의 이름이 10위 안에 점점 더 많이 들어온다는 사실만 달라진다.
비싸게 팔리는 작가는 정해져 있다고 봐야할까? 답은 “예스 앤 노(Yes and No)”다. “노(No)”인 이유는 유명작가의 작품이라고 다 비싼 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스(Yes)”인 이유는, 그래도 그림값을 결정하는 첫 번째 요소는 ‘누구의 작품이냐’이기 때문이다.
(위)이중섭, ‘황소’, 종이에 유채에나멜, 35.3×52cm, 1953, (아래)1959년 창신동 집 마루의 박수근 가족
그럼 여기에서 가장 따지고 싶은 게 있다. 최고 작가는 왜 최고 작가일까? 다시 말해, 박수근은 왜 비싸고, 피카소는 왜 비쌀까?
거래결과가 알려진 미술 작품 중에서 가장 비싼 100점 중 14점이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 그림이다. 이런 수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비싼 화가’ 하면 누구나 으레 피카소를 제일 먼저 떠올린다.
피카소처럼 ‘비싼 작가’로 자리를 굳힌 역사적 작가들의 제일 큰 비결은 ‘미술사적인 중요성’이다. 미술뿐 아니라 어떤 분야에서든 역사적으로 남은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다. 그 사람을 계기로 해서 한 분야에서 큰 변화가 일어났다는 점이다. 미술작가도 마찬가지다. 서양미술은 피카소가 있기 전과 후가 확연히 다르고, 그런 이유에서 피카소는 서양미술사상 가장 중요한 작가다.
르네상스 미술의 절정이었던 15세기 이후 400여 년 동안 서양미술에서는 원근법과 단일시점(single viewpoint)이 너무나 당연한 원칙이었다. 멀리 있는 건 작아 보이고 가까이 있는 건 커 보이고, 화가가 바라보는 한 곳 시점에서 본 대로만 일관되게 그려야 현실을 잘 표현한 그림이었다.
하지만 피카소는 그렇게 규칙에 맞게 그리는 것만이 꼭 세상을 잘 그려내는 게 아니라고 확신했다. 그는 사물을 사방팔방에서 본 시점을 다 한 화면에 넣어 그렸고, 원근법도 무시했다. 그래서 사물이나 사람이 이상해 보이지만, 그게 사실은 당시 현실을 잘 반영한 것이기도 했다. 20세기 초반 유럽 사회는 이미 전통과 결별을 선언하며 변화와 혼돈을 겪고 있었다. 그런 세상에서 겉으로 보이는 현실의 외형을 그럴듯하게 그려내는 것만이 예술이 될 수는 없었다. 피카소는 여기에 확신이 있었고, 그래서 세상을 표현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냈다.
중요한 건 피카소가 시작한 ‘새로운 미술’이 피카소 혼자에서 그친 게 아니라는 점이다.
피카소가 시작한 새로운 미술, 특히 그가 1907년쯤부터 시작한 ‘입체파(Cubism)’ 미술은 당대 유럽의 미술계 전체를 흔들었다. 그리고 이후 서양미술과 전 세계 미술이 과거와 결별하고 변화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2014년으로서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인사동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회고전(3월 16일까지)을 하고 있는 박수근(1914-1965)이 대표적인 예다. 박수근은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그림을 그렸는데, 그의 소재는 시장 사람들, 빨래터의 아낙네들, 절구질 하는 여인 등 평범한 서민의 일상이었다. 평생 가난한 이웃을 모델로 그렸고, 거기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이는 그 자체로 한 시대의 기록으로서도 훌륭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외세의 탄압에서 고통 받았던 우리 근현대 역사에서 이런 한국적, 서민적, 독자적인 작가가 있었다는 것은 우리 민족의 자신감을 살려주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소박하면서도 특유의 짙은 감정이 묻어나는 작품들은 박수근이 가지고 있던 예술에 대한 생각 즉,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으로 작품을 그려야 한다’는 뜻을 그대로 전한다.
흔히 박수근은 19세기 프랑스의 사실주의 화가 밀레에 비교되곤 한다. 일상에서 구하는 소재를 가지고 그려 당대의 진실을 묘사하는 리얼리즘 작가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박수근은 프랑스 근대미술의 방향을 바꾼 역사적 작가 밀레에도 견줄 수 있는 중요성을 가진다.
오광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은 그의 저서 <박수근>(시공아트)에서 “박수근의 그림은 무단 쟁기로 밭을 일구어 가는 농부의 투박하면서도 성실한 모습의 결과이자 기교적 숙련의 결과”라며, 박수근은 우리 근대미술사의 아카데미즘에서 비껴나 있었던 화가이지만, 한 시대의 정확한 기록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고 했다. 작가의 ‘역사적 의미’가 가장 중요 우리나라 미술사에서 작가 사후에 진정한 평가가 이루어지고 중요성이 점점 높아지는 대표적인 작가는 박수근과 함께 이중섭(1916~1956)이다. 이중섭 역시 우리 민족의 불운한 시대를 기록해 역사적으로 중요한 화가다. 6·25전쟁으로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보내고 혼자 살면서 가족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그가 그린 철없는 아이들의 그림을 보면 느낄 수 있다. 또 그의 몇 점 안 남아있는 유화 작품 중 소를 그린 대표작은 격동기 한국인들의 분노와 한국미술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역작이라 할만하다.
피카소, 박수근, 이중섭 모두 역사적 중요성이 있다는 사실 외에 공통점이 또 있다. 각 작가의 개성이 아주 뚜렷하다는 것이다. 이전에 누구도 하지 않았던 자기만의 새로운 스타일로 그림을 그려낸 독특함과 창의성, 이것은 예술가라면 누구나 당연히 갖춰야할 덕목인데, 최고 작가들에게는 이 점이 당연히 돋보인다.
미술애호가들은 현재 우리와 한 시대를 살고 있는 미술작가들을 보면서, ‘누가 미래에 피카소가 될까?’ ‘누가 미래에 박수근이 될까?’ 늘 궁금해 한다. 동시대 작가들도 미래에 살아남으려면 미술사적인 의미를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러니 작가의 미래성을 점치려면, 우리가 보고 있는 지금 이 작가가 현재 우리 시대를 대변할 만한 역사적 중요성을 얼마만큼 가지고 있는지부터 먼저 생각해보는 게 좋겠다.
[이규현 이앤아트(enart.kr) 대표]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2호(2014년 0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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