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EO 걷기 프로젝트] 엉금엉금 호~호~ 나홀로 겨울 트래킹 강원도 화천 비수구미 마을

    입력 : 2014.02.04 13:55:11

  • 사진설명
    “어디 먼 곳으로 떠나 한 일주일 아무 생각없이 지내고 싶네요. 직장생활 말년에 아주 제대로 걸렸어요.” 올 겨울은 유난히 춥다며 너스레를 늘어놓던 A이사가 갑자기 속내를 드러냈다. 가뭄에 콩 나듯 보던 사이니 네 사정 내 사정 흉 없이 나누기에 턱없이 부족하기만 한데, 한 꺼풀 벗겨진 허물에 이미 속살이 드러났다. “연말인사에 내 위로 외부 인사가 영입됐더군요. 이 바닥이 좀 좁아야 말이지. 업계 후배들과 한잔 할 때 옹고집에 능력부족으로 늘 안주였던 양반인데… 어디서 그 얘길 들었는지 처음부터 강짜예요. 이 회사에서 잔뼈 굵은 놈 버젓이 놔두고 갓 신입 뗀 놈한테 질문하는 건 참는다 쳐, 아니 왜 집안 식구까지 들먹이냐구. 결혼 늦어 늦둥이 된 자식이 어리든 말든 지가 무슨 상관입니까. 개그맨 박명수도 일할 땐 가족은 끌어들이지 말라던데, 내가 박명수보다 못한 게 또 뭐냐고…”

    전혀 논리적이지 않은 푸념에 마음이 움직인 건 며칠 전 확인한 A이사의 메신저 대화명 때문이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니…’ 생각없이 되뇌어도 의미심장한 문구에 상황을 덧씌우자 생면부지의 남의 상사가 그냥 몹쓸 놈이 됐다.

    “요즘 주말만 되면 등산화 신고 산에 갑니다. 혼자 한 서너 시간 걷다보면 일주일 동안 꾹 참았던 응어리가 스르르 풀리더라고. 그 스트레스 안고 다시 한주를 시작했다면 아마 쓰러졌을 걸. 내가 생각해도 바보 같지만 직장생활이 다 그런 거란 선배들 말이 이제야 이해가 됩니다. 이 생활 20년 만에 얻은 교훈이에요.”

    파로호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
    파로호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
    굽이굽이 오지로 떠난 발걸음 A이사가 산으로 워크숍을 간다며 “이젠 산까지 쫓아온다”고 푸념하던 날, 기자는 오지(奧地)로 차를 몰았다. 좀 더 정감어린 표현을 빌면 강원도 화천에 자리한 두메산골, 비수구미 마을이다. 이곳은 A이사가 그리도 오매불망하던 나홀로 여정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날 좋은 봄, 여름, 가을에는 트래킹에 나선 이들로 북적이다가 눈 쌓이는 겨울만 되면 발길이 뜸해 내리는 눈도 소리를 낸다.

    그래도 인기척은 있겠지 싶지만 해발 702m의 해산터널에서 마을로 이어진 6㎞ 트래킹 코스는 나 아닌 다른 이를 본다는 게 쉽지 않다. 평일이면 더더욱 그렇다.

    우선 서울에서 화천까지 가는 길이 굽이굽이다. 서울춘천고속도로를 빠져나와 화천 방면으로 1시간여 차를 몰면 커다란 호수가 보이는 데, 이곳이 파로호(破虜湖)다. 화천 8경 중 제1경인 파로호는 면적이 약 38.9㎢, 저수량만 약 10억t이다.

    1944년 화천군 간동면 구만리에 북한강 협곡을 막아 축조했는데, 댐 높이 77.5m의 낙차를 이용한 화천수력발전소의 출력이 10만8000kW에 이른다. 일제가 대륙침략을 위한 전력공급을 목적으로 만든 인공호수는 당시 이름이 화천호였다.

    파로호가 된 건 6·25전쟁에서 국군 제6사단과 해병1연대가 중공군 제10, 25, 27군과 전투를 벌여 승리를 거둔 직후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직접 전선을 방문해 파로호란 친필로 휘호를 남겼다고 한다. 일산(日山·1190m)과 월명봉(月明峰·719m) 등 높은 산에 둘러싸인 수려한 호반은 핏빛 가득했던 지난날을 스스로 위로하고 있는 듯 고즈넉하다. 좌우로 굽이친 수변도로를 따라가다 파로호안보전시관 뒷동산의 전망대에 오르면 확 트인 호수의 전경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곳곳에 세월의 더께가 그득한 전망대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친필이 새겨진)파로호 비(碑)가 홀로 외로이 호수를 바라보고 있다.

    (위)비수구미 마을 아이들. 한 겨울이면 꽁꽁 얼어버린 파로호에서 썰매를 지치며 하루를 보낸다., (아래)비수구미 민박 장복동 사장
    (위)비수구미 마을 아이들. 한 겨울이면 꽁꽁 얼어버린 파로호에서 썰매를 지치며 하루를 보낸다., (아래)비수구미 민박 장복동 사장
    천연 눈썰매장, 툭 튀어나온 멧돼지 충무로에 위치한 매경미디어센터에서 출발해 서너 시간 만에 도착한 경유지는 트래킹의 시작점인 해산령 쉼터. 대한민국 최북단, 최고봉, 최장터널(직선 2㎞)이라는 해산터널을 빠져나와 바로 왼쪽에 자리한 산장이다. 한 겨울에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인적없이 자물쇠만 굳건하다. 앞마당에 차를 대고 밖으로 나서니 한눈에도 15㎝는 충분히 쌓인 눈길이 눈앞을 가로막고 섰다.

    비수구미 트래킹의 출발점은 이곳을 봐도 눈이요 저곳을 봐도 눈이다. 시선이 먼 곳은 좀 다를까 앞산 뒤로 뻗은 촘촘한 봉우리들을 바라보니 파우더를 뿌린 듯 희뿌연 게 몽환적이다. 보무도 당당하게 내딛은 길은 그야말로 내리막이다. 최북단, 최고봉, 최장터널 아래로 계곡을 따라 6㎞를 내려서야 마을이다. 오르고 내리는 길이 험해 마을에는 자동차로 들어갈 방법이 없다. 그러니 지금처럼 마을 뒤편 해산령에서 계곡을 타고 내려가거나 앞에 버티고 앉은 파로호를 배로 건너야 한다.

    트래킹코스가 내리막이니 당연히 오르막보다 수월할 줄 알았건만 이게 웬걸, 켜켜이 쌓인 눈길은 그리 녹록지 않다. 경사가 심하진 않지만 아이젠은 필수요 등산용 스틱은 옵션이다. 어쩌면 그래서 더 소소한 재미가 있다. 비료포대 하나만 있으면 시작부터 끝까지 한 번에 내려갈 것만 같은 천연 눈썰매장 아니던가.

    봄과 여름엔 푸른빛을, 가을엔 형형색색의 붉은 빛을, 겨울엔 하늘빛을 반사하는 숲은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다. 내리고 내려서다 획을 달리해 굽이친 길, 그 아래엔 뼛속까지 시린 계곡물이 쉼 없이 흐른다. 계곡 사이의 다리 위에서 슬쩍 아래를 내려다보면 두꺼운 얼음을 뚫고 퐁퐁 솟는 물이 하염없이 맑고 깨끗하다. 그런데 잠깐, 이렇게나 맑은 곳에 다른 생명체는 없는 걸까. 생각하기 무섭게 계곡 건너편 산 허리춤에서 새끼 멧돼지가 튀어 나왔다. 아스팔트길에서 껑충껑충 어찌나 발걸음이 경쾌한지 눈 깜빡할 사이에 10여m를 훌쩍 뛰어올랐다.

    (위)비수구미 민박의 한상차림, (아래)마을 앞에서 트래킹 코스로 이어지는 다리와 선착장
    (위)비수구미 민박의 한상차림, (아래)마을 앞에서 트래킹 코스로 이어지는 다리와 선착장
    맛보기 힘든 자연의 맛, 비수구미 진미 길을 떠난 지 두어 시간이 지나면 슬슬 평지가 이어진다. 곧 마을에이른다는 자연의 암시다. 눈 쌓인 길도 서서히 흙빛을 보이며 본색을 드러낸다. 아니나 다를까 한 굽이를 돌자 장작연기 내뿜는 지붕이 지척이다.

    비수구미마을에는 네 가구가 산다. 차도 없는 마을에 어찌 사람이 살까 싶지만 꽁꽁 언 파로호 언저리에서 눈썰매 지치는 아이들을 보니 아무리 작아도 사람 사는 마을이다.

    그 중 소문난 곳은 파란 지붕이 돋보이는 비수구미 민박이다. 1960년대에 이곳에서 터를 잡은 장윤일·김영순 씨 내외가 화전을 일구고 낚시꾼을 받으며 3남1녀 일가를 이뤘다.

    지난해 봄 TV프로그램 <인간극장>에 등장해 유명세를 탄 가족은 비수구미 산채정식(1인당 1만원)으로 트래킹에 나선 이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봄, 가을 주말이면 하루 500여 명이 넘는 손님이 찾을 만큼 소문난 맛집이다. 과연 소문이 사실인지 자리를 잡고 앉으니 우선 6가지 나물이 한 접시에 담겨 나오고, 고추장까지 14가지 반찬이 푸짐하게 차려진다. 여기에 된장국과 양푼에 담겨 나온 밥이 그득하다.

    어딜 봐도 특별할 게 없는 상차림은 이상하리만큼 입맛을 돋운다. 직접 산에서 채취한 고비, 다래순, 곤드레, 곰취, 취나물, 풍년나물 등이 심심하니 침을 돌게 하고, 그 나물에 비빈 밥 한술 입안에 가득 넣고 고들빼기, 매실장아찌, 김치를 한 입 베어 물면 시원하고 짜릿한 맛이 혀끝에 전해진다.

    파로호에서 잡아 조려낸 빙어조림도 별미다. 현재 큰 아들인 장복동 씨 내외가 운영하는 식당은 등산객의 입소문이 전해지며 지난 연말 경기도 용인에 분점을 냈다. 둘째 아들인 장만동 씨가 발 벗고 나선 분점 이름은 <인간극장>의 제목이던 ‘웰컴 투 비수구미’라고 한다. 여기서 잠깐, 비수구미 마을은 왜 비수구미라 불리는 걸까. 여기엔 두 가지 설이 전해 내려온다. 하나는 ‘秘水九美’, 신비의 물이 만든 9가지 아름다움이란 의미다. 또 하나는 마을 뒷산에 새겨진 ‘비소고미금산동표(非所古未禁山東標)’에서 유래됐다는 설이다.

    금산동표는 조선시대 궁궐 건축에 쓰이는 소나무 군락에 대한 무단 벌목 금지 표시였다. 마을의 터줏대감인 장복동 사장은 후자가 맞다고 이야기했다. 실제로 이곳 소나무는 휘지 않고 쭉 뻗었다는 게 그가 내세운 이유다.

    어둑해질 무렵, 가는 길을 재촉하자 장 사장이 흔쾌히 배를 내줬다. 성수기엔 기름값이 비싸 유료로 운행되는 배를 타고 길 건너 도로에 오르니 해산터널까지 마중이 이어졌다. 그리고 전해진 한마디.

    “올 겨울에 다시 한 번 오시죠. 그땐 눈썰매로 내려오시면 되겠네. 겨울이 내려오신 내리막길이 우리 아이들 눈썰매장입니다. 한번 지치면 마을까지 그대로 내려온다니까요.”

    헉, 겨울 비수구미 트래킹에 비료포대는 필수다.

    [안재형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1호(2014년 0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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