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 음식에 시라 와인 “삼삼한 궁합이네”

    입력 : 2014.01.07 15: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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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를 맞으면서 정초 가족 친지와 음식을 나누며 즐길 만한 와인들을 떠올려봤다. 고기류를 중심으로 찜이나 부침이 많이 나올 때라서 과일향이 풍부하면서도 살짝 후추와 허브 등의 아로마를 내는 시라 또는 쉬라즈 와인이 아무래도 전통음식과 잘 맞을 것 같았다. 강하지 않으면서도 독특한 허브 아로마를 풍기며 복합적인 맛을 내는 게 발효와 숙성을 하는 한국음식의 특성과 맞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품종의 대표 산지인 호주의 윌리엄 하디 쉬라즈와 이 품종으론 생소한 지역인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플라네타 시라를 들고 대학로의 한식당 담아를 찾았다. 궁중요리 전문가인 신지현 대표가 운영하는 담아는 조미료를 쓰지 않은 깔끔한 한식으로 소문이 났다.

    신지현 대표는 와인 맛을 보고 어느 가정에서나 쉽게 접할 수 있는 호박·표고전과 가지찜, 갈비찜을 냈다.

    먼저 환하게 웃는 대갓집 맏며느리 얼굴처럼 담아낸 호박·표고전이 나왔다. 쉽게 볼 수 있는 음식인데 일부러 꾸미지 않은데다 소박한 접시에 담겨 아주 수더분해 보였다. 그런데 호박전을 살짝 베어 무니 전혀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냥 호박만 부치지 않고 애호박의 가운데를 파내고 고기소를 넣어 단순할 수도 있는 전을 식감이나 맛이 아주 다른 특별한 음식으로 만들었다. 살짝 익힌 호박을 한 입 베어 물면 사각사각한 느낌과 그 안의 소가 부드럽게 입안으로 들어오는 느낌이 대비되는 게 재미있다. 조선간장 양념에 살짝 찍어 먹으면 신선하면서도 달콤한 호박과 기름지면서도 고소한 고기의 맛이 또 한 번 대비된다.

    표고전도 버섯 안쪽에 다진 고기를 넣고 부쳤다. 역시 부드럽게 다가오는 고기와 사각사각 썰어지는 표고의 식감이 조화를 이뤘다. 담백하면서도 고소한 느낌을 주는 표고와 살짝 기름지면서도 달달한 고기소 역시 많이 기름지거나 또 너무 단순하지 않은 맛을 만들어냈다.

    윌리엄 하디 쉬라즈를 따랐다. 와인 셀러에서 막 꺼내 조금 시원한 상태라서인지 상큼한 과일향이 주도적으로 다가왔다. 입 안에 한 모금 머금자 살짝 달콤한 과일의 향 뒤로 잘 녹아든 탄닌과 적절한 산도가 균형을 이루면서 어우러졌다. 달콤하면서도 신선했다. 입안이 개운해져 다음 음식으로 젓갈에 손이 갔다.

    가지찜은 어느 마트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재료로 만든 것이라 아주 단순할 것이란 선입관을 깨고 안주로 내놔도 그만일 정도의 재미있는 요리로 태어났다. 살짝 찐 가지가 너무 신선하면서도 부드럽게 다가오다 보니 그 안에 들어간 소가 오히려 조금은 단단하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식감의 대비를 이뤘다. 게다가 고기를 갈아 넣은 소의 맛이 눈을 동그랗게 만들었다. 전혀 느끼하지 않고 담백했다. 다시마 육수와 조선간장으로 배합했다는데 기름기를 싹 빼서인지 깔끔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다.

    다시 하디 한 모금을 마셨다. 시간이 지나 조금 더 열려서인지 과일향이 피어났고 약간의 탄닌과 바닐라의 여운이 부드럽게 감기듯 다가왔다.

    이어서 시칠리아 플라네타의 시라를 땄다. 시칠리아는 지중해 한 가운데 있는 섬이지만 이 와인이 나온 마로꼴리는 해발 400m대의 건조하면서도 다소 황폐한 지역이라 시라만을 위한 토양이란 평을 듣는 곳이다. 일조량이 풍부한 그곳에서 키운 포도로 만들어서인지 시라인데도 처음부터 무스크향에 민트와 후추 산초향에 농축한 과일향까지 어우러진 복합적인 아로마가 코를 찔러왔다. 살짝 입에 머금었다. 부드럽게 녹아든 강한 탄닌이 입안을 싹 씻어주는 느낌이었다. 적절한 산도와 조화를 이룬 열정적인 과일향은 또 다른 느낌을 주었다. 강하지만 신대륙 와인과는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이 와인에 매칭한 갈비찜은 약간 기름질 것이란 예상과 달리 아주 담백하면서 전혀 느끼하지 않았다. 오히려 씹을수록 구수하고 살짝 달콤한 맛까지 났다. 신지현 대표는 “피밤(겉밤)을 넣어 콜레스테롤을 제거했다”고 설명했다. 밤껍질에 풍부하게 들어있는 탄닌이 쇠갈비의 기름기를 없애주면서 고기 맛까지 아주 부드럽게 만들어준 것 같다. 살짝 달면서도 부드럽고 담백한 갈비찜을 음미한 뒤 다시 플라네타 한 모금을 마셨다. 달콤하고 농축된 느낌의 과일향이 먼저 다가온 뒤 이어 살짝 숙성한 허브의 여운이 목안 깊은 곳에서부터 피어올라 길게 이어졌다. 호주 시라를 마실 때 세 번째로 느껴지는 살짝 띄운 느낌의 허브 여운이 일찍부터 떠올라 아주 길게 이어지는 것 같았다. 이탈리아에도 이런 시라가 나올 수 있다는 게 새롭게 느껴졌다.

    대학로의 ‘담아’는 궁중음식 전문가인 신지현 대표가 운영하는 퓨전 한식당이다. 천연재료만을 고집해 정갈하면서도 깔끔한 음식 맛이 일품이다. 동숭동 마로니에공원 뒤 골목 안에 숨어있지만 맛을 아는 인근 서울의대나 성균관대 교수들이 자주 찾는다. 주로 예약제로 운영하는데 한정식집 치고는 합리적인 가격을 고수한다. 와인은 중상급 위주로 비치하고 있는데 상의해서 가지고 갈 수도 있다.

    (02)741-5511

    [정진건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0호(2014년 0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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