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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그림값에는 국가의 힘이 작용한다
입력 : 2014.01.06 09:4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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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워홀의 뒤를 잇는 21세기 미국의 대표적 팝아트 작가인 제프 쿤스의 스테인리스 스틸 조각인 ‘풍선 강아지(Balloon Dog)’는 5840만달러에 팔려, 작가 최고기록 뿐 아니라 생존작가 최고기록을 경신했다.
이처럼 2000년대 이후 세계 미술시장에서는 미국 현대미술 가격이 고공행진하고 있다. 특히 팝아트는 그 흐름을 리드한다. 국제 미술시장 분석사이트인 아트프라이스닷컴(artprice.com)의 ‘가격지수(Art Price Index)’에 따르면 미국 팝아트 작가들의 작품 평균가격을 1992년에 100으로 잡았을 때 2002년에 이미 260으로 올라 160% 상승을 기록했으며, 그 이후 10년 동안에도 계속 오르고 있다.
2012년 10월 홍콩에서 열린 소더비 홍콩진출 40주년 기념 경매 때의 모습. <사진제공 = 소더비>
팝아트는 말 그대로 그 시대에 가장 만연해 있는 평범한 대중문화를 소재로 택한 예술이다. 앤디 워홀은 1960년대 미국의 일상생활과 대중문화를 주로 다뤘다. 그리고 미국의 자본주의 성공을 예찬하면서 한편으로는 그 이면을 보여주곤 했다.
‘실버 카 크래쉬’에서 왼쪽엔 치명적인 자동차 사고의 실제 보도사진이 여러 장 겹쳐 찍혀 있다. 오른쪽은 ‘화려한 영화 스크린’을 상징하는 ‘실버 스크린’이다. 이렇게 상반되는 두 이미지를 나란히 놓은 이유는 뭘까? 앤디 워홀이 미국 현대사회의 이중적인 면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시 ‘자동차’는 번영한 미국의 상징이자 성공한 젊은이의 표상이었다. 하지만 이 작품 속에서 자동차를 운전하던 사람은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고 있다. 화려한 자본주의 사회, 풍요로운 미국 사회의 이면에 숨은 또 다른 면. 앤디 워홀은 그런 면을 끝없이 드러내 는데, ‘실버 카 크래쉬’가 이런 특징을 예리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한들, 이 작품 한 점이 1104억원에 팔렸다는 것을 우리가 쉽게 이해하기는 어렵다. 도대체 앤디 워홀의 작품은, 미국 팝아트 작가들의 작품은 왜 이렇게 비싸게 팔리는 것일까?
어떤 작가가 비싼 작가가 되려면 우선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 앤디 워홀은 서양미술사에서 ‘팝아트’를 자리매김하게 한 주인공이다. 그런 점에서 첫 번째 조건을 충족한다. 그 다음으로 필요한 요소는 시장적 요인이다. 시장적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중요한 것을 몇 개 꼽는다면, 워홀이 바로 다른 나라가 아닌 ‘미국’의 196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라는 점이다.
1960년대 미국은 소비재가 넘치고 대중문화가 폭발하던 사회였다. 게다가 싸구려 이미지를 고급예술 소재로 쓸 수 있고, 이 사람 저 사람 가질 수 있도록 여러 장 마구 찍어낼 수 있는 실크스크린 제작방법을 써 미국이 앞세우는 민주주의와도 들어맞았다. 그러니 앤디 워홀은 자신이 살았던 시대상을 아주 잘 반영한 것이다.
앤디 워홀은 팝아트의 철학에 대해 유명한 말을 많이 남겼는데, 그 중 다음의 말이 가장 유명하다.
“내가 미국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똑같은 것을 소비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TV를 보고 코카콜라를 마시는데, 대통령이나 엘리자베스 테일러나 우리나 똑같은 코카콜라를 마신다. 코카콜라는 코카콜라일 뿐이다. 돈을 더 준다고 더 나은 코카콜라를 마실 수 없다.”
바로 당시 미국 사회를 규정할 수 있는 특징인 ‘민주주의’와 ‘대중소비문화’를 앤디 워홀은 시대의 코드로 잡아낸 것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워홀이 반영한 1960년대 미국의 문화가 아직까지도 대부분 나라에서 공감할 수 있는 문화라는 점이다. 그리고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앤디 워홀의 작품을 가장 사랑하고 비싼 값을 치러준 컬렉터들은 미국인들이었다. 뿐만 아니라 미국에는 워홀과 같은 자국 현대미술 작가들의 시장을 탄탄하게 만들어준 리오 카스텔리와 같은 뛰어난 딜러들도 있었다. 즉, 미국 국가의 파워, 미국 컬렉터와 딜러들의 마케팅 덕분에 그 나라를 대변하는 미술품의 가격은 더욱 안정적으로 높게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이다.
아시아 현대미술작가의 경매 최고기록을 세운 쩡판츠의 ‘최후의 만찬’. <사진제공 = 소더비>
미국이 20세기 후반의 슈퍼파워 국가라면 21세기에 미국과 더불어 파워를 행사하는 나라는 중국이다. 이 점은 미술시장에서도 입증된다. 아트프라이스닷컴(artprice.com) 집계에 따르면 2012년에 국가별 미술 경매시장 거래 액수별로 순위를 매기니, 중국(41%), 미국(27%), 영국(18%), 프랑스(4%) 순이었다. 중국이 오히려 미국을 앞섰다. 이 때문에 크리스티와 소더비는 이미 홍콩에 오래전 진입해 치열하게 경쟁 중이고, 작년 하반기부터는 중국 본토에도 진출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서울옥션도 홍콩에 지사를 두고 있고, K옥션도 홍콩에서 경매를 한다.
이렇게 시장규모가 큰 나라 중국 출신의 미술작가들은 시장에서 어떨까? 당연히 인기가 좋을 수밖에 없다.
작년 10월 홍콩 소더비에서 열린 ‘소더비 홍콩진출 40주년 기념 경매’에서는 중국의 대표적인 현대미술 작가 쩡판즈(曾梵志, Zeng Fanzhi)의 ‘최후의 만찬(The Last Supper, 2001)’이 2300만달러에 팔려, 아시아의 현대미술 작가로는 최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쩡판즈는 세상에서 제일 비싼 생존작가 5명에 들어가는 중국작가다.
미국 팝아트 작가들이 대중문화를 시대의 코드로 잡아냈다면, 2000년대 이후 톱스타가 된 중국 현대미술 작가들은 중국의 변화하는 시대상을 그려내고 있다. 이번에 기록을 세운 ‘최후의 만찬’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을 패러디한 것이다. 등장인물들은 가면을 쓰고 있고, 테이블에는 수박 조각들만 나뒹군다. 이들이 앉아 있는 곳은 교회가 아니라 중국의 전형적인 교실 분위기다.
이 그림은 쩡판즈를 유명하게 만든 ‘가면 시리즈’의 마지막 시기 작품으로, 1990년대에 급변하는 중국사회의 당황스러운 모습, 이전과는 달라진 중국의 새로운 사회상에 적응해야 하는 중국인들의 모습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중국이라는 거대 나라의 변화에 세계의 관심이 집중될 때에 그 나라의 시대상을 표현하는 미술작가들 또한 관심을 받게 마련이다. 그리고 중국의 경제성장에 따라 미술시장도 커지고, 전 세계에서 중국 컬렉터들이 큰손으로 맹활약하고 있으니, 중국 작가들도 힘을 받을 것이다.
세계 미술시장에서 ‘비싼 작가’ ‘유명 작가’ 리스트에 들어가는 사람들 중에는 미국, 영국, 중국, 독일 출신이 유난히 많다. 이 나라들이 아닌 ‘다른 나라’ 출신으로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유명해진 작가들은 대부분 자기 본국에 머물지 않고 여러 나라에서 활동하는 다국적 작가들이다. 우리나라의 현대미술작가로 해외 미술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이우환의 경우 사실상 1970년대 일본 미술사의 중심에 있었던 일본작가나 마찬가지면서 지금은 유럽에서 더 많이 활동하고 있다.
미술품 거래가 많이 되는 나라, 파워 있는 딜러와 컬렉터가 많은 나라에서는 유명 아티스트도 많이 나온다. 국가의 경제적 힘과 그 나라 출신 아티스트들의 작품 가격이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다.
이규현 대표는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0호(2014년 0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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