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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 유럽 요리 보르도 기준 와인의 궁합
입력 : 2013.12.20 11: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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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포도로 자신의 와인까지 만들고 있는 한상돈 소믈리에는 “뉘메로엥은 애정이 많이 가는 와인이다. 90년대 후반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근무할 때 처음으로 글라스 와인을 서빙했다. 보통은 샤또의 와인을 하우스 와인으로 정하는데 네고시앙 와인으로는 처음 쓴 와인이다”며 반겼다.
한 소믈리에는 ‘뉘메로엥’ 와인에 독일식 파스타와 쇠고기 안심 볶음(스패츨을 곁들인 비프 스트로가노프)을 매칭했다고 설명했다.
“육류 중에서 육질이 단단하거나 차콜이나 연기로 향을 낸 고기라면 카비네 쇼비뇽이 맞겠지만 부드러운 육류는 메를로 베이스의 와인이 잘 맞는다. 팬이나 팬 프라이로 조리한 육류엔 메를로나 피노누아 품종 와인이 맞다. 소스도 너무 강하지 않아야 한다.”
쇠고기를 한 입에 넣을 수 있게 썰어 만든 비프 스트로가노프는 나이프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음식이라 가볍게 들기에 좋다. 여기에 독일식 파스타인 스패츨까지 함께 선보여 점심 메뉴로도 손색이 없다.
김한수 셰프는 “비프 스트로가노프는 정통 유럽 요리이다. 독일식 파스타인 스패츨을 곁들였는데 쇠고기 안심을 파프리카 소스로 볶아 매콤한 맛이 난다”고 설명했다.
안심 한 점을 입에 넣었다. 후추와 파프리카 향이 잘 배어 있어 매콤하면서도 고기의 맛을 잘 유지하고 있다. 부드러운 소스가 육류의 느끼한 맛은 감추면서도 고기 특유의 부드럽고 달착지근한 느낌을 누르지 않고 조화를 이룬다. 특히 요리에서 나오는 후추와 파프리카의 스파이시한 맛이 메를로 와인 특유의 향신료 풍미와 잘 어울린다. 와인이나 요리가 서로의 맛과 향을 누르지 않고 살려주는 것 같다.
함께 나온 스패츨을 씹자 고소한 재료의 향이 그대로 전해진다. ‘아, 파스타도 이렇게 고소하게 만들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기분에 좋아진다. 소스나 양념 맛에 눌리지 않고 재료 고유의 고소함을 살리면서도 심심하지 않게 소스와 양념의 느낌을 전하는 비결이 놀라웠다.
한상돈 소믈리에는 ‘샤또 뻬이 라뚜르 리저브’ 와인에는 저녁에 주로 낸다는 비프 웰링턴을 매칭했다.
“뻬이 라뚜르는 풍미가 짙어 농밀감이 느껴진다. 오래된 포도나무에서 딴 포도로 담근 메를로 와인으로 떼루아의 특성을 잘 살려 너무 강하지 않고 우아한 분위기를 풍기며 음식을 압도하지 않는다. 여기에 매칭한 비프 웰링턴은 육즙이 풍부한 요리다. 복고풍 프렌치 요리로 테이블에 서빙할 때 시저 샐러드에 앞서 치즈를 내기도 한다.”
김한수 셰프는 “비프 웰링턴은 볶은 양송이버섯을 곁들인 쇠고기 안심을 펍 페스츄리 빵으로 감싸서 구워내는 고전적 요리이다. 오븐에서 8~10분 정도 구워 육즙을 잘 보존할 수 있다. 레드와인과 버섯 주스로 조린 소스를 곁들여낸다”고 했다.
‘샤또 페이 라뚜르 리저브’를 잔에 따랐다. 높은 산도에 섞여서 다가온 산초 후추 등을 섞은 듯한 향신료의 아로마가 코를 팍 찌른다. 보르도 와인 특유의 풍미다. 한 모금을 입에 머금으니 의외로 부드럽게 다가온다. 탄닌은 입안을 강하게 자극하는 게 아니라 살짝 부드럽게 감싸주는 느낌이다.
비프 웰링턴의 안심을 싸고 있는 빵 껍질부터 잘라 입에 넣었다. 부드러우면서도 고소한 페스츄리 빵과 버섯볶음의 향이 먼저 입안을 즐겁게 한다. 비프는 적절히 매콤한 맛이 나면서도 빵으로 감싸 구운 덕분에 육즙이 그대로 남아 부드럽고 달착지근한 맛이다.
다시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산도가 높아 신선한 느낌까지 주는 과일향이 육류의 잡냄새를 싹 잡아줘 다시 음식을 당기게 만든다.
그렇게 와인과 음식을 번갈아가며 기분 좋게 접시를 비운 뒤 바닥만 남은 잔을 코끝에 댔다. 처음 따랐을 때보다 훨씬 우아하게 피어오른 과일과 꽃냄새가 기분까지 떠오르게 했다.
(02)518-6873
[정진건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8호(2013년 1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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