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지현의 브라보 클래식]전위 음악의 선구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입력 : 2013.12.12 13:58:22

  •  2012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공연된 오페라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
    2012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공연된 오페라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1864 ~1949)는 말년에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1933년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나치가 만든 제국음악원 초대 총재로 임명된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송가를 작곡하고 지휘했지만 유대인 음악가를 추방하라는 명령을 받고 괴로워했다. 급기야 나치당에서 유대인 음악가인 멘델스존을 몰아내고 그의 대표작인 ‘한여름 밤의 꿈’을 대체할 수 있는 작품을 쓰라고 하자 그만둬버린다. 슈트라우스는 제2차 대전 직후 전범으로 몰려 군사재판을 받았지만 반(反) 나치 경력이 인정돼 풀려났다. 비록 인생의 끝자락에서 고통을 겪었지만 그는 부유한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나 탄탄대로를 걸은 작곡가다. 그의 아버지 프란츠 슈트라우스(1822~1905)는 뮌헨 궁정관현악단 제1호른 주자인 동시에 음악원의 교수였다. 어머니는 뮌헨의 거대 맥주 양조업자 요제피네 프쇼어의 딸이었다.

    슈트라우스는 타고난 음악 재능과 든든한 배경에 힘입어 마이닝겐 궁정관현악단 부지휘자로 취임해 바이에른과 베를린 국립 오페라극장 지휘자를 역임하고 60세에는 빈 국립 오페라극장 예술감독에 취임했다. 그는 독보적인 오페라와 교향시를 남기며 세계 음악계를 뒤흔들었다. 19세기말 유럽 음악계가 신독일악파 바그너(1813~1883)와 리스트(1811~1886)의 거대한 그림자에 짓눌려 있었지만 그는 개성이 분명한 음악 색깔을 보여줬다. 후기 낭만파로 분류되는 슈트라우스는 바그너보다 감미로우면서도 관능적이고, 리스트보다 자유로운 음악을 들려줬다.

    그는 세계 최대 연극 음악 축제인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설립자이기도 하다. 오페라 걸작을 함께 만들어낸 단짝 극작가 후고 폰 호프만스탈, 지휘자 플란츠 샬크, 연출가 막스 라인하르트, 무대미술가 알프레드 롤러와 힘을 합쳐 1920년 8월 22일 잘츠부르크 대성당 광장에서 호프만스탈의 ‘예더만(만인)’을 공연하면서 축제를 시작했다. 이 페스티벌에서 자주 공연되는 오페라가 바로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1911). 18세기 오스트리아 귀족사회가 배경이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처럼 귀족들의 문란하고 퇴폐적인 성생활을 풍자한다. 이 작품 외에도 지금까지 사랑받는 슈트라우스의 오페라로는 ‘살로메’(1905) ‘엘렉트라’(1908)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1912) ‘그림자 없는 여인’(1919) ‘카프리치오’(1941) 등이 있다.

    철학과 미학을 음악에 담은 교향시 슈트라우스는 신화와 성서, 동화를 담은 오페라를 작곡하기 전에 진지하고 묵직한 교향시를 주로 작곡했다. 뮌헨 대학에서 철학과 미학을 공부하고 쇼펜하우어에 심취한 그는 교향시 ‘돈 후안’(1889) ‘죽음과 변용’(1889)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1895)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96) ‘돈키호테’(1897) ‘영웅의 생애’ (1898) 등에 관심사를 반영했다. 음표 효과와 구성을 치밀하게 계산하고 인간의 감각에 호소해 ‘음을 다루는 장인’으로 불렸다.

    특히 교향시 ‘죽음과 변용’은 죽음을 초월하는 과정을 표현한 수작이다. 임종을 앞둔 환자가 죽음과 투쟁하면서 지난 시절을 회상하다가 마침내 죽음을 극복하고 구원받는 내용을 선율로 녹였다.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독일 철학자 니체의 동명 저서 활자들을 웅장한 선율로 바꿔놓았다. ‘초인만이 미래를 창조할 수 있다’는 니체의 초인 사상을 시적으로 그렸다. 차라투스트라는 B.C.6~7세기경 페르시아 조르아스터교 교주로 알려진 예언자이며 니체는 그를 초인으로 봤다. 슈트라우스는 인간에게 경종을 울리는 순간을 엄청난 북소리와 심벌즈로 표현했다. “쿵쾅쿵쾅…” 가슴과 머리를 내려치는 듯 충격적인 이 곡은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에 삽입됐다.

    2004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공연된 오페라 ‘장미의 기사’
    2004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공연된 오페라 ‘장미의 기사’
    평범한 영웅들을 위한 교향시 ‘영웅의 생애’ 마지막 교향시 ‘영웅의 생애’는 자화상 같은 곡이다. 감미로운 바이올린 솔로는 아내 파울리네, 목관 파트는 적대자들의 험담을 표현하며 이를 의연하게 받아넘기는 슈트라우스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초연 당시에는 영웅의 정체를 둘러싸고 논란이 뜨거웠다. 평론가들은 작곡가 자신을 우상화했다고 쓴소리를 늘어놨다. 스스로를 영웅으로 묘사하기 위해 지나치게 화려하고 웅장한 선율을 동원했다는 야유도 들었다. 이 비판에 대해 슈트라우스는 “일정 부분 사실일 수 있다”며 “하지만 나는 영웅이 아니며 전쟁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아니다”고 밝히며 논쟁의 종지부를 찍었다. 물론 그는 전쟁 영웅이 아니다. 하지만 20세기 ‘음악 영웅’이라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다. 그는 수많은 음악평론가들과 싸워가며 위대한 작품을 남겼다.

    비록 35세에 작곡했지만 ‘영웅의 생애’는 20년 넘는 음악 인생을 녹였다. 이미 그는 12세에 ‘축제행진곡’을 작곡했고 13세에 바흐의 평균율을 연주했다. 젊다고는 하나 오랜 세월 음악계에서 산전수전 다 겪었다. 50분 동안 연주되는 거대한 관현악곡 ‘영웅의 생애’는 그의 인생을 ‘중간 점검’하는 작품이다.

    인생의 갈림길에서 슈트라우스는 ‘한우물’을 선택했다. 말 많고 탈 많은 음악계에 염증을 느꼈지만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지키기로 결심했다. 독일 낭만주의를 고집한 최후의 작곡가로 남기로 한 것이다.

    ‘영웅의 생애’는 지난 세월에 대한 회상이 6개의 장면으로 구성된다. 제1부 영웅, 제2부 영웅의 적들, 제3부 영웅의 반려자, 제4부 전쟁터의 영웅, 제5부 영웅의 업적, 제6부 영웅의 고독과 성취가 이어진다. 제1부 영웅에서 호른과 현악기들이 솟아오르는 선율로 묘사한 영웅의 모습은 참으로 위풍당당하다. 그러나 제2부 영웅의 적들에서는 적들의 신랄한 조롱을 받는다. 조소하는 듯 시니컬한 목관의 비웃음소리가 들린다.

    제3부 영웅의 반려자에서는 사랑하는 아내 파울리네가 등장한다. 그녀의 여성스럽고 변덕스러운 기질이 바이올린으로 표현됐다. 악기 표현 가능성을 확장한 작곡가의 천재성이 돋보인다.

    이 대목에 대해 슈트라우스는 “이것은 바로 내 아내다. 나는 그녀를 그리고 싶었다. 그녀는 매우 복잡하다. 여성스럽고 한 번도 같은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무대 뒤에서 트럼펫 소리가 나며 영웅을 다시 전쟁터로 불러낸다. 금관악기와 타악기의 도전적인 음악이 기세를 올리며 사랑의 장면을 압도한다.

    4관 편성 목관악기들과 호른 8대, 트럼펫 5대, 현악기 64대가 뿜어내는 제4부 전쟁터의 영웅은 마치 편협하고 끈질긴 평론가들과 싸우는 슈트라우스의 분노와 흥분을 나타내는 듯하다.

    제5부 영웅의 업적은 승리의 기억을 회상한다. 슈트라우스가 작곡한 교향시 ‘돈 후안’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죽음과 변용’ ‘돈키호테’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 ‘군트림’ ‘맥베스’ 가곡 ‘황혼의 꿈’ 주제가 차례로 등장한다. 이 회상 기법을 통해 영웅이 부분적으로 자신임을 인정한다. 제6부 영웅의 고독과 성취는 평화롭다. 바이올린의 가냘픈 고음이 긴 여운을 남기고 끝난다. 지난 삶이 후회스럽지 않다면 바로 당신이 영웅(Ein Heldenleben)이라고 속삭이는 것 같다.

    [전지현 매일경제 문화부 기자 사진제공 = 찰츠부르크 페스티벌]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9호(2013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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