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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이상 된 포도나무 와인과 불고기비빔밥…사찰음식 명인의 음식과 와인의 멋진 조화
입력 : 2013.10.02 15: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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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덕 헤드셰프
와인을 한 모금 더 마시니 입안이 즐거워졌다. 아직은 영한 느낌을 주는 베르누스의 신선하면서도 살짝 달콤한 과일의 향이 입안에 가득 찼다. 이 정도 맛이라면 남녀가 함께 즐기더라도 양쪽 모두 좋은 점수를 줄 것 같다.
김정민 소믈리에는 “베르누스는 과실향이 풍부하고 부드러운 탄닌과 발랄한 산미를 가지고 있어 맥적구이와 매칭했다. 된장의 향과 베르누스의 과실향이 어우러져 한층 상쾌한 느낌을 준다. 베르누스의 적당한 탄닌과 발랄한 산미가 맥적구이의 기름기를 잡아주며 담백한 맛과 어울려 한층 우아한 느낌을 만들어 낸다”고 이유를 소개했다.
이어 놋그릇에 담긴 바싹불고기 비빔밥이 나왔다. 고명으로 얹은 제비꽃이 먼저 눈을 즐겁게 했다. 그릇엔 백만송이 버섯을 비롯해 팽이버섯, 표고 등 갖은 버섯에 쇠고기볶음, 무채, 무순 등 각종 야채와 청포묵 계란고명 등이 가득했다. 고추장이나 약고추장을 주로 쓰는 우리네 비빔밥과 달리 간장으로 비빈다는 게 특이했다. 그런데 내온 간장이 장난이 아니다. 보기엔 약간 건 듯해 그저 장 담그기 귀찮아 사다 쓰는 양조간장 같아 보였으나 향긋한 냄새가 났다. 살짝 찍어 맛을 보니 ‘오호라’ 이게 감칠맛이 보통이 아니다. 그 간장 하나만으로도 밥 한 공기는 거뜬히 해낼 것 같다. 정재덕 셰프는 갖은 재료를 넣어 맛간장을 뽑은 뒤 살짝 끓여 농축했다고 했다.
고추장을 쓰면 재료의 맛이 죽기 때문에 각각의 맛을 살리려고 간장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잘 버무린 밥을 한술 입에 무니 먼저 그윽한 버섯향이 살짝 고소하면서도 맛난 들기름 냄새에 실려 다가왔다. 쇠고기볶음은 달착지근하고 무순은 쌉쌀하고 표고는 특유의 그윽한 향을 뿜어냈다. 기름이 고소하면서도 다른 재료들을 누르지 않고 잘 어울리는 게 신기했다. 저절로 입이 즐거워졌다.
온갖 재료가 섞인 오묘한 맛을 느끼며 ‘100+’를 잔에 따랐다. 강인한 산도에 실린 오크와 산초의 아로마가 코끝을 찌른다. 100년 이상 된 포도나무 수령이 마시기 전부터 느껴졌다. 한 모금 마시니 오래 묵은 나무 특유의 응축된 과일향에 실려 산초 등 향신료의 느낌이 전해진다. 탄닌은 부드럽게 녹아들었고 오크향도 매끄럽게 다듬어졌지만 두드러진 산도 덕분에 강인함이 느껴졌다.
아직 숙성이 덜 됐지만 비빔밥에 들어간 버섯의 송이향이나 바싹불고기의 달착지근하면서도 고소한 맛 등 온갖 재료의 맛에 오묘함을 더해주는 것 같다.
주문한 식단이 단출하다고 여겼는지 정재덕 셰프가 불고기를 추가로 내왔다. 잘 다져 재웠던 불고기를 숯불에 구웠다는데 숯냄새가 고기의 느끼함을 덜어주고 살짝 곁들인 다진 파의 향과 조화를 이뤘다. 구수한 음식이 와인을 당기게 하고, 한잔 와인이 다시 입맛을 돌게 했다.
김정민 소믈리에는 “‘100+’는 붉은 과실향과 향신료향이 강하며, 집중도가 좋고 맛과 향의 밸런스가 매우 훌륭하다. 바싹불고기 비빔밥의 야채들과 어우러져 묵직한 와인을 한층 편안하게 만들어주며, 불고기의 숯불냄새와 ‘100+’의 오크향이 매우 잘 어우러지는 마리아주다”라고 설명했다.
밑반찬으로 약간의 김치와 비름나물 한줌, 땅콩조림, 물김치 등이 나왔다. 상큼한 김치와 독특한 맛의 비름나물도 입맛을 돋게 했고 고추를 얹어낸 물김치는 입을 개운하게 만들었다.
다담은
[정진건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7호(2013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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