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탈리아 와인 명가 프레스코발디의 새 작품…수형자들이 만드는 와인 ‘고르고나’

    입력 : 2013.09.03 09: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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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인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해안도시 리보르노에서 뱃길로 35km가량 곧바로 가면 고르고나라는 작은 섬이 나온다. 길이가 2.1km, 가장 넓은 곳의 너비가 1.6km 정도 되고 한 바퀴 도는데 8km쯤 되는 크다면 크다고도 할 수 있는 섬이다. 사람들의 접근이 쉽지 않은 너무나도 조용한 섬이기에 오래 전 수도사들의 수행지로 이용되던 곳이다. 토스카나의 통치자였던 레오폴드 대공은 1771년 이 섬을 카르투지아 수도회에서 사들여 어업전진기지로 사용했다. 그러다 1861년 이탈리아 국왕에게 소유권이 넘어갔고 이후 출입통제 지역이 돼 버렸다. 이곳에서 올해 처음으로 상큼한 와인이 나왔다. 고르고나 DOC로 나오는 사상 최초의 와인인데 세계 주요 언론의 관심을 사고 있다. 무슨 사연이 있나.

    이 섬은 리보르노에서 여객선으로 한 시간 반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지만 그 동안은 일반인 출입이 엄격히 금지됐다. 이탈리아 법무부가 유형지로 정해 1869년부터 죄수들을 유배시켜 농사를 짓게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은 50명의 죄수들과 그들을 감시하는 경찰들만 상주하는 열린 감옥이 되었다. 탈출하려야 탈출할 수조차 없다. 사방이 수직 암벽으로 둘러싸인 섬의 출입구는 단 하나 포구가 있는 아주 조그마한 만뿐. 그곳만 지키면 밖으로 나갈 곳이 없다. 게다가 섬 500m 이내엔 어떤 배도 접근할 수 없도록 금하고 있다. 죄수들이 농사를 지으며 마음을 다스리기에 좋은 환경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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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사나 짓던 이곳에 지난 1999년부터 포도를 심었으나 이렇다 할 결과를 내지 못했다. 워낙 바닷바람이 강해 포도가 제대로 적응하기 어려운데다 관리할 노하우도 충분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 황량한 땅에 달콤한 와인의 꿈을 키운 이가 있다. 프레스코발디 가문의 30대손 ‘람베르토 프레스코발디(Lamberto Frescobaldi)’다. 기업이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의식을 갖고 있던 람베르토는 수형자들에게 사회에 적응할 기술을 가르쳐 주려는 이탈리아 법무부의 구상에 호응해 와인 양조 기술을 가르쳐 주겠다고 나섰다. 그러면서 먼저 원형극장처럼 된 계단식 밭 가운데 1헥타르 정도의 땅을 사들여 완전 유기농 방식으로 포도를 생산해 700년 역사 프레스코발디의 노하우로 와인을 만들었다. 그 첫 작품으로 이 섬에서 생산한 안소니카와 베르멘티노 품종 포도를 블렌딩한 화이트 와인 2700병이 나왔다. 이것은 단지 그냥 와인이 아니다. 수형자들의 꿈과 희망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50명 수형자들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와인메이커가 되는 꿈을 가질 수 있게 됐을 뿐 아니라 실제로 차근차근 프레스코발디의 노하우를 익히고 있다.

    기금을 대고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한 람베르토 프레스코발디 회장은 “개인적으로 이 프로젝트에 전념했다. 우리 팀원들 뿐 아니라 고르고나 사람들의 노력으로 완성된 이 프로젝트가 너무나 자랑스럽다”고 감격해했다.

    생산량이 워낙 적기에 고르고나는 거의 외국으로 나가지 않는다. 한국에도 수입되지 못했다. 현재 피렌체의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인 ‘에노테카 핀치오리’ 등 이탈리아 최고급 레스토랑에서만 맛볼 수 있다.

    프로젝트의 성공으로 이탈리아 법무부는 크게 고무됐다고 한다. 이번 사례를 다른 곳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수형자 입장에선 사회에 진 빚을 갚을 수 있게 됐을 뿐 아니라 평생의 기술을 얻어 사회 복귀에 성공할 가능성을 높일 수 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다.

    [정진건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6호(2013년 0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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