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말 골퍼들은 거짓말쟁이?

    입력 : 2013.08.09 16:5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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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휴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먹었더니 몸이 이상해, 큰일 났네.” “난 어제 새벽 3시까지 야근하고 바로 운전하고 왔더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야! 야! 말 마라. 난 올 시즌 이게 첫 라운드다. 그립에 곰팡이 안 피었는지 확인도 못해봤어.”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매일경제신문 골프담당 조효성 기자입니다. 앞에 써놓은 말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보지 않으셨나요? 한 달 전쯤 라운드를 하려고 클럽하우스 식당에서 만난 동반자들과의 대화입니다. 저도 저 중에 한명이고요. 주말 골퍼들끼리의 대화를 들어보면 앞팀이나 뒤팀 모두 비슷비슷합니다. 시작도 하기 전에 엄살을 피우죠. 온갖 거짓말들을 짜내는 데에는 싱글골퍼나 100돌이나 비슷비슷한 듯합니다. 사실 이 정도 엄살은 거짓말 축에도 못 듭니다. 다들 속으로는 ‘그냥 또 그러려니’, 시쳇말로 ‘밑밥을 뿌리는구나’하고 생각할 뿐이죠. 골퍼들에게도 3대 거짓말이 있습니다. “(엉망인 스코어를 내고서) 내가 다시 골프채 잡으면 사람도 아니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이렇지 않았는데, 오늘따라 골프 정말 너무 안 맞네.” “너무 오랜만에 골프채를 잡는데 공이나 맞추려나 모르겠다.”

    라운드가 끝나면 대회 속에 그날의 스코어가 녹아 있습니다. 이날 스코어가 좋았다면 ‘호기로운 거짓말’을 늘어놓죠. 늘 핸디캡을 받던 주말골퍼도 이날만큼은 “다음엔 스크래치야”라고 큰소리를 칩니다. 물론 다음 라운드 때가 되면 “내가 언제 그랬냐”며 꼬리를 내릴 게 뻔하지만요.

    골퍼들의 진짜 거짓말은 라운드 도중에 녹아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굿샷’이죠. 두둑한 스킨이 걸린 홀에서 상대방의 드라이버샷이나 아이언샷이 정말 잘 날아갔는데 마음으로도 ‘굿샷’을 외칠까요? ‘큰일 났다. 이번 판 스킨 많이 쌓였는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입으로만 ‘굿샷’을 하는 거죠. 또 ‘나이스 버디’도 마찬가지입니다. ‘버디값’으로 생돈을 줘야 하는데 마음이 ‘나이스’ 하지만은 않을 테죠.

    상대의 기쁨은 내 아픔이 되는 게 골프, 아니 내기의 속성입니다.

    이런 이유로 여기 한 가지 스킬이 있습니다. ‘굿샷’으로도 교묘하게 심리전을 펼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잘 치든 못 치든 무조건 ‘굿샷’을 외쳐주세요. ‘굿샷’ 소리를 들었다가 자신의 공이 ‘배드샷’이 되는 것을 확인한 골퍼는 심리적으로 상당히 충격을 받게 됩니다. 실망하고 기분도 많이 상하죠.

    ‘남성성’을 지키기 위한 남자의 마지막 골프 거짓말은 집에서 나옵니다. 라운드를 마치고 돌아오면 아내가 늘 묻습니다.

    “오늘 골프는 어땠어?” 그럼 늘 똑같은 대답을 하시죠? “오늘 내가 다 눌러놨어. 여기 우승 과일하고 돈 딴 것 줄게”라고요.

    그래서일까요. 영리한 골프 모임에서는 단체로 주는 경품에 모두 ‘우승’이라는 라벨을 붙여놓습니다. 골퍼들의 마음은 누구나 똑같다는 말입니다. 늘 거짓말을 하고, 거짓말을 듣지만 그래도 골프는 매력적입니다. 수많은 거짓말과 핑계를 대다가도 모두가 놀라는 멋진 한방이 나오면 그보다 더 짜릿한 순간은 없으니까요. 아마도 이 ‘한방’이라는 녀석 때문에 주말 골퍼들은 ‘골프 중독’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가 봅니다.

    [조효성 매일경제 스포츠레저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5호(2013년 0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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