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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현의 브라보 클래식]⑱ 부유했던 ‘엄친아’ 멘델스존 행복했을까
입력 : 2013.03.07 15: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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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번째 생일에는 왕실 카펠레 단원들로 구성된 정식 오케스트라가 멘델스존의 오페라 ‘병사들의 연애사건’을 연주했다. 아들의 음악에 감격한 어머니는 친척에게 보내는 편지에 “어린아이가 오케스트라 악기들을 이용해 그토록 자신 있게 작곡할 수 있다니 믿을 수가 없군요”라고 썼다. 훌륭한 스승과 전폭적인 집안 지원에 힘입어 13세에 작곡한 피아노 4중주곡 악보를 출판하기도 했다.
극음악 ‘한여름 밤의 꿈’ 서곡은 17세 때 셰익스피어의 동명 희곡에 감동받아 썼다. 16년 후에 완성했는데 오늘날 예식장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결혼 행진곡’이 담겨 있다. 신랑신부가 퇴장할 때 울려퍼지는 이 곡은 제5막에 흐른다. 두 쌍의 연인이 여러 사건에 휘말렸다가 모든 문제를 해결한 후 결혼하기 때문에 환희가 넘친다. 트럼펫 소리에 뒤이어 행진곡조의 주요 테마가 힘차게 연주된다.
‘한여름 밤’이란 일 년 중 낮이 가장 긴 하지 무렵의 성 요한제(6월 24일) 전야. 서양에서는 그날 밤에 여러 가지 환상적인 괴변이 생긴다는 미신이 있다.희곡 내용도 요정들과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익살스러운 사건이다. 멘델스존은 이 희곡에 환상적이고 유머러스한 선율들을 잔뜩 붙였다. 특히 서곡과 스케르쪼(해학곡), 간주곡, 야상곡, 결혼행진곡 등 5곡이 오늘날까지 사랑받고 있다. 이 작품처럼 멘델스존은 주로 밝고 건강한 분위기의 곡들을 많이 남겼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탓에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매우 긍정적이었다.
부유한 집안 엄친아, 세계 여행 후 걸작 남겨 멘델스존은 재력 덕분에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그 영감을 음악으로 표현했다. 1829년 스무 살에 영국을 방문해 교향곡 1번을 지휘했다. 빅토리아 여왕과 부군 앨버트 공을 알현하고 스코틀랜드를 방문했다. 그때 나온 작품이 ‘핑갈의 동굴’ 서곡과 교향곡 3번 ‘스코틀랜드’.
‘핑갈의 동굴’은 스코틀랜드 북서쪽 연안의 헤브리디스 제도에 속한 스태퍼 섬에 있다. 화가 못지않았던 멘델스존의 음악은 그림처럼 펼쳐진다. 현악기 선율은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의 물결 같았고, 목관 악기는 바람 소리처럼 들렸다. 바위섬 위를 갈매기 떼가 날아다니고 시커먼 동굴은 푸른 바다를 향해 입을 벌리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작곡가 바그너가 이 곡을 듣고 ‘음(音)의 풍경화’로 평했을 정도다. ‘스코틀랜드’는 메리 여왕이 살던 궁전에서 받은 강렬한 인상을 선율로 풀어냈다. 메리는 25년간 스코틀랜드 여왕으로 통치했으나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에게 처형된 비운의 여인이다. 특히 메리의 남편 헨리 스튜어트는 질투가 심했다. 신하 리치오와 여왕의 불륜을 의심해 리치오를 죽였다.
멘델스존은 이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어 작곡을 시작했으나 잘 풀리지 않아 13년 만에야 완성했다. 스코틀랜드 안개가 연상되는 이 곡은 여린 음량이 많아 ‘피아니시모 교향곡’으로 불린다.
23세에 쓴 교향곡 4번 ‘이탈리아’도 여행에서 영감을 얻었다. 남부 유럽 햇살이 찬란하게 빛나는 곡으로 이탈리아 전통 춤곡이 녹아 있다. 느린 악장은 순례자의 노래와 닮았고, 미뉴에트는 따사롭다.
최희준이 지휘하는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피아니스트 문지영이 멘델스존의 피아노 협주곡 제1번을 연주하고 있다
멘델스존은 안정된 삶에 익숙했기 때문에 기존의 질서나 형식에 반항하지 않는 보수적 성향을 보였다. 음악 형식도 고전주의 틀을 그대로 이어 받았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유감스럽게도 사람들의 심금을 파고들지는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고생을 모르고 편안하게 살다보니 인생의 아픔이나 슬픔, 어두움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이는 그의 삶을 단편적으로 본 것이다. 그에게도 아픔이 있었다. 어린 시절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멸시를 받자 외출을 거의 안했다. 독일 사회에서 차별받지 않기 위해 베를린에서 루터 교회 세례까지 받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바깥 활동이 제한되자 네 살 위의 누나 파니와 집 안에서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오누이는 음악을 좋아했고 집에서 작곡 놀이를 했다. 서로의 작품을 비평하며 연주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고 취미도 비슷하다보니 여느 형제자매보다 정이 깊었다. 단순한 남매애를 넘어 묘한 감정까지 생긴다. 그래서인지 누나는 집을 떠나려 하지 않았으나 어쩔 수 없이 부모의 뜻을 따라 결혼을 해야 했다.
결혼식 날 누나는 애틋한 마음을 담아 동생에게 편지를 보냈다. “나는 네 초상화를 보며 네가 내 옆에 있기라도 하듯 몇 번이고 네 이름을 부르고 있어. 나는 울고 있어. 평생 동안 밤낮없이 난 너를 진심으로 사랑할거야. 그래도 헨젤(남편)에게 미안하지는 않아.”
멘델스존의 감정도 깊었다. 별다른 연애사 없이 결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부인은 프랑크푸르트 최고 미인이자 소프라노 세실 장르노. 두 사람은 자녀 5명을 낳고 순탄하게 살았다. 물론 결혼 초기에는 누나의 질투가 있었다. 그가 세실에게 보낸 편지에 “결혼한 지 8개월이나 되었는데 아직 펠릭스(멘델스존)의 아내를 만나지 못하다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참 유감이네요”라며 “누군가 당신이 참 아름다운 여성이고 눈이 예쁘다고 말하면 나는 기분이 나빠집니다. 이미 그런 얘기는 충분히 들었고 예쁜 눈은 이야기로 들으라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라고 인사가 늦은 것에 대해 불만을 나타냈다. 하지만 실제로 만난 후에는 세실의 부드러운 인품을 좋아했다고 한다. 동생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했다고 하니 그리 비뚤어진 남매애는 아니었나 보다.
이렇듯 특별한 사이였던 오누이가 음악인으로 서로를 격려하고 가족애를 나눈 결정체가 멘델스존의 피아노 소품집 <무언가(無言歌)>. 1830년부터 15년에 걸쳐 작곡한 피아노 소품 49곡을 모았다. 시적인 정취가 물씬 풍기는 이 소품들은 매우 서정적이다. 피아노로 현란한 기교를 자랑하거나 청중을 압도하는 큰 소리를 내는 게 아니라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듯 연주한다. 가곡과 피아노의 결합을 생각해낸 사람이 바로 누나라고 한다. 왼손으로는 반주를 하고 오른손으로는 마치 노래를 하듯 피아노 건반을 두드린다. 그 노래에 가사가 없기 때문에 무언가라는 제목이 붙었다. 무척 낙천적이고 낭만적인 느낌을 주는 <무언가> 49곡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봄의 노래’ ‘사냥의 노래’ ‘베네치아의 뱃노래’ 등이다. 서로를 끔찍하게 위했던 오누이는 죽음도 함께 했다. 1847년 누나 파니가 42세로 사망하자 마치 뒤를 따르기라도 하듯 멘델스존도 같은 해에 세상을 떠났다. 신경쇠약과 피로 누적이 원인이었다고 한다.
죽어서도 나치를 이긴 유대인 작곡가 멘델스존은 살아생전에 부귀영화를 누렸으나 사후 난데없는 수난을 당했다. 타계한 지 86년 후 나치정권의 ‘숙청’ 대상에 올랐다. 1933년 히틀러가 정권을 잡으면서 유대계 음악가들의 업적을 불태우고 명예를 박탈하라고 명령한 것. 나치당은 ‘제국음악국’이라는 부서를 신설하고 모든 유대인 예술가들을 추방시켰으며 멘델스존을 비롯한 유대인 작곡가들의 작품 연주를 금지시켰다.
비록 무덤에서 시체를 꺼내 훼손하는 ‘부관참시(剖棺斬屍)’는 아니었지만 작곡가의 작품을 부정하는 것은 죽어서도 엄청난 굴욕이다.
그런데 정작 당시 음악국 초대 총재로 임명된 작곡가 R. 슈트라우스(1864~1949)는 이 명령에 몹시 괴로워했다. 그는 멘델스존의 극음악 ‘한여름 밤의 꿈’을 완전히 사장시키고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작품을 쓰라고 하자 그만둬버린다. 훗날 슈트라우스는 제2차 세계대전 전범으로 몰려 군사재판을 받았지만 이 사건 덕분에 풀려났다.
서슬 퍼런 나치 정권에도 불구하고 독일 음악가들은 몰래 멘델스존의 작품을 연주했다. 아름다운 작품을 연주하고 싶은 것은 예술가의 본능이다. 결국 멘델스존의 곡은 오늘날까지 사랑받고 있으니 그는 죽어서도 히틀러를 이긴 거나 다름없다. 위대한 예술은 이념을 초월하는 절대 가치를 지니는 셈이다.
특히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1844)는 오늘날 세계 3대 바이올린 협주곡에 꼽히는 걸작이다. 멘델스존은 오랜 지기인 바이올리니스트 페르디난드 다비드를 위해 6년 동안 공을 들였다. 그 정성이 고스란히 깃들여 있으며 고전 형식미와 서정이 조화된 기념비적 작품이다.
청춘의 애상을 담은 이 곡은 심장을 날카롭게 파고들 정도로 저릿하다. 사랑과 열정, 야망, 방황 등 설익은 감정들이 격정적이고 화려한 음형으로 꿈틀거린다.
38세에 요절한 천재 음악가가 죽기 3년 전에 남긴 작품이니만큼 애절하고 서글픈 느낌도 강하다. 마치 불행을 예감한 듯 불안한 선율이 흐르기도 한다.
[전지현 매일경제 문화부 기자 사진 예술의전당]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0호(2013년 0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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