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ex]섹스리스 문제, 부부 금실 좋고 스킨십 많다면 넘어설 수 있다

    입력 : 2012.10.05 17:4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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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료실에서 접하는 부부 성문제는 의외로 복잡 미묘하다. 그래서 의사는 보이지 않는 이면도 같이 보는 심미안을 지녀야 한다. 섹스 횟수만 하더라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스토리가 전혀 다를 수도 있다. “우린 잘 안하고 살아요”라고 해도 진짜 섹스리스가 아닌 경우가 많다. 부부가 의좋게 서로의 스케줄에 맞춰 테마여행을 다니며 질 좋은 섹스를 즐길 수도 있다. “매일 섹스해요”라고 해도 머릿속으로는 20년 전 사랑 없이 선택한 상대를 여전히 책망하며 오르가슴 강박으로 섹스에 집착하는 경우도 있다. 절대 숫자로만 부부의 성생활 만족도나 질을 평가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섹스하지 않는 부부들에서 어느 한 배우자가 ‘섹스 없이 파트너와 부부라는 이름으로 계속 살 이유가 있을까’라는 고민을 시작했다면 횟수 자체가 충분히 위험신호가 된다.

    진료실에서 가장 흔히 접하는 유형을 보자 연애시절부터 그다지 성욕이 많거나 섹스를 좋아하지 않던 남편이 친구 같아 좋았고 결혼하면 달라질 거라는 생각에 결혼했다는 30대 후반의 주부 A씨. 남편의 성욕은 오히려 더욱 땅 끝으로 숨어버린 것 같다고 한다. 그래서 섹스리스 때문에 이혼하는 사람도 있는지, 그런 사람들은 이혼하고 잘 사는지를 매번 묻는다. 지금도 남편을 사랑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런 고민을 하는 자신이 의리 없어 보이고 나쁜 사람 같지만 아직 젊고 자신이 매력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평생 수녀처럼 살아갈 자신이 없단다.

    결혼 초기 3년은 이런 관계를 개선하려고 이야기도 많이 하고 계속 이러면 바람날지도 모른다고 윽박도 질러 보고 울고 매달려보기도 했지만 남편이란 사람은 결혼하면 다들 이러고 살지 않느냐며 일관된 태도를 보여 이제는 섹스에 대한 어떤 의견이나 욕구도 내색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솔직히 이혼해 이보다 더 좋은 남자를 만날 확신도 없다. 이제는 남매같이 지내는 이런 부부생활에 익숙하다보니 어쩌다 하는 부부관계가 오히려 어색하고 아프다. 늘 욕구는 있는데 말할 수도 없고 말하기도 싫고 말해도 더 좋아질 것이란 기대도 없다. 그저 남편이 자신을 아껴주고 자기도 남편을 좋아하니 이렇게 살면 되지 않을까하며 마음을 다잡다가도 ‘나 아직 예쁜데 왜 이러고 살지’ 하는 우울감이 생기면 한 번씩 이혼을 꿈꾼다.

    A씨에게 어떤 처방을 내려야 할까 부부관계의 육체적 측면은 범위가 너무나 넓다. 그래서 어떤 섹스가 좋고 어찌하면 그런 섹스를 즐길 수 있는지를 쓴 책은 엄청나게 많다. 언제 어떻게 사랑을 나눠야 하고 사랑을 나눌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논쟁하면서 결론을 내 조언한다. 하지만 두 사람이 육체적으로 맞지 않을 때 이혼하는 게 차라리 행복할 것이라고 감히 말하는 등대 같은 책이나 전문가는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이런 경우 헤어질지 말지를 결정할 열쇠는 근본적으로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 구해야 한다. A와 같은 여성이나 남성에게 하는 진단 질문의 핵심은 “배우자와 서로 만지고 싶고 미래에도 서로 그럴 것을 기대하며 또 현재 서로의 몸을 만지기 위해 노력하나”이다.

    여기서 만진다는 것은 토닥거리기, 손잡기, 목 쓰다듬기, 다리위에 손 얹기, 얼굴만지기, 머리 쓰다듬기, 키스, 포옹 등 기본적인 것부터 헌신적 관계에서 있을 수 있는 다른 모든 종류의 접촉을 말한다.

    하다못해 손을 잡거나 외출 시 팔짱을 끼는 정도라도 배우자가 당신을 만지기를 원하는지, 더 자주 당신을 만져줬으면 하고 바라는지, 파트너가 당신을 만질 때 행복한지, 파트너가 당신을 만져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당신도 파트너를 어떤 식으로든 만지고 싶은지, 아니면 닿기도 싫어서 강력히 저항하고 만지지 못하게 제지하는지, 파트너가 예전에 비해 신체적 접촉을 하지 않는 쪽으로 가려 하는지, 지금 섹스리스라도 냉랭하고 거리감 있는 시기를 끝내고 육체적 사랑이 다시 시작되기를 바라는지, 얼마나 자주 파트너와 육체적 사랑을 나누기를 원하는지, 파트너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사랑을 나누고 싶은 느낌이 드는지, 파트너가 당신을 만질 때 그와 사랑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나는지, 혼자 있을 때 파트너와 사랑을 나누고 싶다는 느낌이 든 적이 있는지, 파트너가 미친 듯 행동할 때도 진정으로 그와 사랑을 나누고 싶은 생각이 드는지 등.

    이 질문들은 당신과 파트너가 육체적으로 서로에게 끌리는가 하는 근본을 묻는 것이다. 만지고 싶고 상대가 만져주기를 원하는 것은 관계에서 육체적 측면의 기반이며 이게 정서적 측면을 더욱 돈독하게 해준다. 당신이나 파트너가 신체적으로 접촉하거나 상대가 만지는 것을 원하지 않게 되고 이 상황이 완화될 기미 없이 여러 달이 흐른다면 서로에게 엄청나게 소원해졌다는 심각한 증거다.

    이런 상황을 경험한 다른 사람들의 경우에 비추어보면 그런 관계를 지속하면 불행할 것이고 관계를 떠나면 행복할 것으로 보인다.

    주의할 것은 이런 일시적 상황에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서로에게 몹시 화가 나거나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때는 누구나 소원해질 수 있다. 그래서 문제가 있는 관계에서는 보통 아무 신체적 접촉도 없고 거의 섹스를 하지 않는 기간이 있게 된다. 감정이 격앙되어 서로 접촉을 원하지 않는 시기도 있다.

    그래서 서로를 만지고 싶어 하지 않는 상태가 오랜 기간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고착될 때만 이 진단을 적용하라는 것이다.

    상대 몸에 접촉하고 싶어 하는 것은 두 사람이 마음 닫기를 끝내는 방법을 발견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이다. 우연한 혹은 자발적인 접촉이 일어나고 서로가 접촉을 원했음을 느끼고 접촉이 점점 확대되거나 진해지면 서로의 마음은 풀리기 시작한다. 이것이 수백만 수천만 커플이 부부싸움 후 상처와 분노의 악몽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는 방법이기도 하다.

    파트너에게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자신에게만 가지는 특별함이 있다면 그를 떠나면 불행할 것이다. 더 행복할 근거나 이유를 찾을 수 없다면 섹스 문제 때문에 관계를 정리할 이유가 없다. 일반적으로 다른 상황이 좋다면 섹스가 특별히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희망과 연결된 토대가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모두 서로를 전혀 만지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상처와 분노의 악몽에 사로잡힌 상태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최선을 다했어도 결코 좋았던 적이 없거나 너무나 오랜 기간 서로 만지고 싶은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면 관계를 끝내는 게 좋을 것이다. 어떤 영역에서도 결코 좋은 적이 없었다면 섹스에서 만족할 근거도 적다. 섹스문제는 관계의 다른 문제들과 완전히 별개로 존재하지 않는다. 관계에 머물기 곤란하게 만드는 문제와 섹스문제로 인해 관계가 종말을 고하는 문제는 결국 동일하다.

    [김경희 미즈러브 여성비뇨기과 원장]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창간 제25호(2012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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