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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king]차가운 파스타의 추억
입력 : 2012.08.06 09:2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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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이런 냉면 문화의 프리즘으로 이탈리아의 파스타를 들여다보게 된다. 이탈리아는 과연 냉면이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없다. 함흥에도 냉면이 없었는데 이탈리아에 냉면이 없는 게 그리 별다른 일도 아니긴 하겠지만 말이다. 사실 음식을 이처럼 차게 먹는 문화는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 음료나 다른 건 몰라도 메인 요리를 차갑게 먹는 나라는 보기 힘들다. 일본의 하야시우동? 그것도 전통음식이 아니며 그렇게 차갑지도 않다. 상온보다 좀 낮은 정도일 뿐이다. 그래서 한국 냉면이 일본에서 오랫동안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또 중국냉면을 거론하는데 이것 역시 한국에서 만들어진 문화라고 한다. 더군다나 슬러시 얼음을 넣는 요즘 방식은 더더욱 중국식이 아니다. 살기가 힘들어진 탓일까. 냉면이 점점 차가워지고 있는 것도 짚어볼 만한 요즘의 유행이다. 정통의 평양냉면집들을 보면 국물이 엄청 차갑지는 않다. 메밀과 육수의 향을 느끼려면 지나친 얼음은 미각을 봉쇄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겨울에 그 옛날 동치미를 꺼내서 겨울에 냉면을 만들어 먹으면 살얼음이 동동 뜨지 않았겠냐고 한다면 틀린 말은 아니다. 하여튼 지나치게 차가운 국물은 향과 맛을 덜 발산한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니 그 정도 해두자. 그런데 이탈리아에도 차가운 파스타가 있다는 말이 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이탈리아는 파스타로 샐러드를 하기도 한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샐러드를 하는데 쌀을 볶아서 익힌 후 식혀서 넣었다. 이탈리아에서 흔히 먹는 쌀 샐러드다. 그런데 이걸 보고 어느 손님이 항의를 했다.
“볶음밥이 차가우니 다시 볶아주세요!”
기본적으로 뜨거운 밥 요리를 선호하는 한국인의 기준에 차가운 밥은 맞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쌀도 넣고 파스타도 넣는다. 국수보다는 짧은 파스타를 주로 넣는데 우리가 흔히 아는 펜네나 푸질리 같은 것들이 그렇다. 여러 가지 채소를 익혀서 식히고 파스타까지 넣으면 든든한 한 끼 샐러드가 된다. 올리브와 케이퍼, 신선한 올리브유, 레몬즙을 듬뿍 넣으면 맛있다. 이탈리아의 거리 식당이나 고속도로의 식당에서 자주 파는 아이템이다. 코스대로 느긋하게 먹기 어려운 사정이 있을 때나 한 끼 때우되 샐러드도 좀 같이 먹고 싶을 때 좋은 선택이다. 이탈리아 여행을 가게 되면 관광지에도 대개 파는 집들이 많다. 특히 ‘트래블러 메뉴’라고 해서 관광객을 위한 간이 셀프 서비스 식당에서 많아 판다. 대개 ‘셀프 서비스’라고 영어로 써 놓아 찾기도 쉽다. 그곳에선 파스타나 쌀 샐러드를 먹어볼 수 있다.
냉면을 좋아하는 습관에서 비롯한 한국인의 차가운 면 요리 사랑은 결국 이탈리아 파스타에도 해당된다. 차가운 파스타를 내놓게 된 것이다. 원조는 일본이다. 일본은 하야시우동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 퓨전 요리를 자연스럽게 시도하면서 고추냉이를 넣은 냉 파스타를 팔고 있었다. 나도 냉 파스타를 팔고 있다. 원래는 차가운 오이와 바질, 레몬즙과 올리브로 양념을 해서 샐러드에 가깝게 만들어 냈다. 반응이 좋았다. 그런데 이탈리아에 있는 후배에게서 특이한 요리법 하나를 받았다. 밀라노의 별 달린 최고급 레스토랑의 파스타 담당으로 일하고 있는 녀석이 만든 창작 파스타가 현지에서 큰 반응을 얻고 있다고 했다. 이탈리아 사람도 차가운 파스타를 ‘신기하고 특이하다’고 좋아하게 됐다는 것이다. 아주 신선하고 맛있는 모차렐라가 있어야 한다. 모차렐라 치즈는 원래 일반 우유가 아니라 물소젖으로 만든다. 아주 부드럽고 꽉 차는 맛이다. 이걸 갈아서 육수를 내고 직접 뽑은 생면을 말아 내놓았다고 한다. 그 조화가 혀에 떠올려질 만큼 감미롭고 풍만하게 여겨졌다. 직접 만들어봤더니 아주 흥미로운 맛이 나왔다. 그 맛에서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다. 치즈란 원래 두부와 같은 스타일의 재료다. 우유 대신 콩을 띄운다는 게 다를 뿐이다. 그렇게 싱싱한 모차렐라를 갈았더니 마치 아주 질 좋은 콩물 같은 맛이 났다. 동물성 지방 특유의 한층 고소한 뒷맛이 살아 있었다. 이런 이런! 놀라운 맛이다. 잘 만든 콩국수의 이탈리아 버전이 탄생했다. 이때 약간의 팁이 있는데 스파게티를 너무 푹 삶지 말고 소스는 넉넉하게 마련하는 게 좋다. 면을 너무 삶으면 접시에 담은 후 소스를 지나치게 빨아들여서 퉁퉁 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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