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oking] 봄철, 간재미 먹으러 서해로 간다

    입력 : 2012.03.26 16: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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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미지의 세계다. 그런 까닭에 인간은 무한한 두려움과 경이, 호기심을 염도 있는 바다에 바쳤다. 쥘 베른의 <해저2만리>의 심해탐사선 노틸러스호는 그런 인간의 욕망에 의해 건조된 상상의 잠수함이다. 노틸러스호는 결국 상상이 실제가 되었는데 지금까지 많은 심해탐사선이 지구의 양수(羊水)에서 활약했다. 이런 해양탐사는 종종 다큐멘터리 촬영 팀과 동행하여 아름다운 바닷속 세계를 보여준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여러 필름이 그런 경우다.

    이런 필름에서 가오리는 절대 빠지지 않는 존재다. 거대한 덩치와 아름다운 유영 장면, 게다가 간혹 전기가오리처럼 별종들도 등장해 필름을 다채롭게 만들어준다. 미안한 얘기지만 나는 이런 필름이나 여러 대형 수족관에서 기르는 관상용 가오리들을 보면 요리가 생각난다. 직업적 이유이기도 하겠고 가오리 요리가 유달리 맛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껍질 벗겨진 가오리가 시중에 흔해졌다. 냉동된 상태로 유통되는데 ‘참, 친절한 업자들도 다 있군’ 하고 말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다 사연이 있었다. 가오리 가죽이 고급 지갑의 원료가 되면서 껍질 벗겨진 살덩이가 식용으로 나온다는 얘기였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런가.

    가오리의 쫀득한 껍질을 먹을 수 없어서 무언가 허전할 것만 같은 누드 가오리의 전말이다. 그 사정이야 어떻든 가오리는 너무도 맛있는 요리 재료다.

    이탈리아가 한국처럼 별걸 다 먹는 나라인 게 맞다. 바다 것도 마찬가지여서 멸치와 갈치며 고등어, 바지락, 홍합 같은 재료가 흔하다. 가오리와 홍어도 그 자리를 차지한다. 홍어는 좀 드물고 가오리는 꽤 있다. 연한 날개를 낮은 불에 천천히 익히거나 그릴에 구워서 먹는다. 토마토소스도 좋고 허브만 뿌려서 올리브오일 구이로 먹는 경우가 많다. 튀김을 하기도 하는데 고온의 기름 때문에 뼈가 더 부드러워진다.한국에서 간혹 가오리나 간재미찜을 요리해서 낸다.

    손님들은 신기해하고 의외로 양식으로 먹는 맛이 있음을 즐긴다. 좋은 재료는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다. 홍어도 그런 식으로 먹는데 우리처럼 삭히지 않고 암모니아가 풍기기 전에 재빨리 요리하는 게 다를 뿐이다. 미국 쪽에서는 이런 요리를 ‘Kate Wing’이라 하여 가오리연의 날개를 자르듯 싹둑 자른 지느러미를 요리해 먹는다.

    가오리가 맛있는 건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독특한 식감이 한 자리를 차지한다. 오돌오돌한 뼈가 마치 샥스핀처럼 나열되어 있어서 씹는 맛이 일품이다. 누군가 ‘빈자의 샥스핀’이라고 불러도 될 그런 식감이다.

    너무 큰 가오리는 뼈가 억세므로 적당한 크기가 좋다. 뼈를 부드럽게 익히려면 낮은 불에 쪄야 한다. 차가운 샘물에 청주나 화이트와인을 뿌리고 오랫동안 찐다. 살이 녹기 전에 살살 녹을 만큼만 익히는데 뼈가 꼬득하게 씹힌다. 이런 별미가 있나 싶다.

    어려서 집안 제사상에 가오리가 종종 올랐다. 큰 가오리의 날개만 잘라 간장 양념에 푹 찐 걸 올렸다. 어린 나는 산적(散炙) 같은 고기보다 가오리가 좋았다. 제사상에 올린 건 살짝 한 번 더 찌는데 이때는 실고추도 넉넉히 올려서 귀신 음식의 인간화를 표현한다. 마늘을 다져 올리기도 하고 쪽파와 미나리를 통째로 올려서 식감과 영양의 균형을 맞추기도 한다.

    무엇보다 가오리찜은 슬쩍 말린 게 좋았다. 날것보다는 내장을 발라내고 코를 꿰어 해풍에 하루 이틀 말린 걸 사면 더 맛있었다. 가오리의 쫄깃한 식감이 더 살아났고 수분이 줄어들어 진득한 살코기 맛이 입천장과 잇몸에 척척 붙었다. 홍어에는 막걸리라고 하는데 어른들은 가오리에도 막걸리를 마셨다.

    저런! 저런! 나는 얼른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같다. 젓가락으로 살점을 들면 결대로 죽죽 찢어져서 조선간장에 살짝 찍어 먹는 그 맛이란!

    어른이 되니, 이런 음식을 하는 집도 없고 집에서도 제사상에 올리지 않는다. 잘생긴 조기도 있고 고기가 지천인데 굳이 못생긴 가오리 날개를 구하려 하지 않는 것일까. 그 대신 나는 밖에서 가오리 맛을 본다.서해안 사투리로 간재미라고 부른다. 간재미찜을 하는 집을 수소문해 본다. 병어나 간재미를 쪄서 술을 마셔보지 않은 사람과는 풍류도 논하지 말 것이니. 기왕이면 그 시절 어른들처럼 막걸리를 마신다.

    인천의 몇몇 대폿집에서는 어렵지 않게 간재미찜을 발견한다. 봄이 제철이어서 간재미가 시장에 철철 넘칠 때다. 싱싱한 놈들은 그대로 회를 치기도 한다. 자그마해서 뼈가 드세지 않아 회로 먹어도 좋다. 잡어 좋아하는 이들은 이 회 맛을 보면 양식으로 기른 고급 어종은 젓가락을 안 댄다. 쫄깃하고 차진 살이 씹는 맛의 절정을 보여준다. 창을 열어보아라. 봄바람은 살살 불고 간재미 살을 씹는 순간은 우리가 살아 있다는 안도와 감사의 기억으로 남게 된다.

    작년 봄에도 강화도에 들러 마니산을 오르고 포구를 찾았다. 제철이라고 잊지 않고 그득히 몰려든 간재미가 함지에서 꿈틀거렸다. 비록 보기 흉한 자동 탈피기에서 홀랑 옷을 벗었지만 간재미 맛은 좋았다. 이 봄이 가기 전에 간재미를 먹으러 서해로 갈 일이다. 올해의 간재미는 우리 생애에 한 번뿐이다. 그러게 말이다.

    라꼼마 셰프 chanilpark@naver.com
    라꼼마 셰프 chanilpark@naver.com
    [박찬일 라꼼마 셰프 chanilpark@naver.com]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9호(2012년 0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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