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철현 교수의 인간과 신] ③ 당신의 ‘마아트’는 무엇입니까

    입력 : 2012.03.26 16: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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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가 1988년에 유학을 갔을 때 무엇을 공부해야 할지 막막했다. 종교를 공부해야 하는데, 종교를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도무지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다. 당시 하버드대 고대근동학과에는 존 휴너가르드 교수(현재 텍사스 대학 근동학과 교수)가 있었다. 그는 셈족어와 인도-유럽어 등 거의 100개 정도의 언어를 판독하고, 자유자재로 읽고, 말까지 하는 세계 최고의 고전문헌학자였다. 필자는 그가 고전문헌을 원전으로 읽고 해석하는 모습에 매료되고 말았다. 막연히 나는 그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하였다. 필자는 용기를 내서, 그가 가르치는 ‘고전 에티오피아어’를 수강 신청하였다. 고전 에티오피아어는 ‘게에즈’라고도 불리는데, 초기 그리스도교 경전들이 이 언어로 기록되어 성서 해석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언어이다. 첫 수업시간에 들어가니, 단 세 명만이 수강 신청했다. 두 명은 셈족어를 전공하는 박사 과정 학생이었고, 나는 한국에서 갓 온, 영어도 떠듬거리는 유학생이라, 이 수업을 따라가기가 불가능해 보였다. 필자는 수강 신청을 철회할 목적으로 휴너가르드 교수에게 면담을 신청하였다.

    휴너가르드 교수는 필자에게 “인생의 목표가 무엇인가”라고 질문하였다. 나는 얼떨결에 “종교 경전을 해석하는 훌륭한 고전문헌학자가 되고 싶다”라고 대답했다. 종교 경전은 다른 책들과는 달리 특히 ‘행간에 숨겨진 의미’를 고고학자처럼 깨내야 하기 때문에, 고전어에 정통해야 한다. 독일어, 프랑스어와 같은 현대어뿐만 아니라, 고전 히브리어, 그리스어, 라틴어를 기본적으로 숙지해야 본격적으로 경전들을 연구할 수 있다. 필자는 영어 몇 마디 하고 미국에 갔는데, 이 언어들을 어떻게 공부하고,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학생들과 경쟁하여 박사 과정에 입학해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었다. 면담을 마치기 전, 휴너가르드 교수는 “Mr. Bae, Show Yourself!”라고 말했다. 나는 며칠 동안 “Show Yourself”라는 문장의 의미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내가 뭘 보여줄 수 있는가? 휴너가르드 교수는 현재 필자의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필자의 최선(最善)을 보길 원했던 것이다. 그 후 나는 어떤 실마리도 없었던 최선을 찾기 위해, 하버드 도서관들 중에 하나인 ‘힐레스 도서관’에 다니기 시작하였다. 언젠가 나의 최선이 보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도서관 문을 닫으면 기숙사로 돌아가곤 했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점들 중 하나는 인간만이 최선을 상정하고 그것을 지향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최선의 삶’이란 무엇인가? 고대 히브리인들은 인간을 ‘아담’이라고 했다. ‘아담’이란 히브리 단어는 ‘흙’을 의미한다. 인간은 오랫동안 ‘흙’이었다, 잠시 ‘숨’을 쉬는 생명체가 되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런 다소 비관적인 정의에 반기를 들고, 고대 그리스인들은 인간을 ‘앤스로포스’라고 정의하였다. ‘앤스로포스’란 ‘두 발로 땅을 디디고, 머리는 하늘을 향하고, 두 팔을 하늘로 향한 존재’라는 의미이다. 인간은 동물 중 유일하게 땅을 보지 않고 머리를 치켜들고 하늘을 볼 수 있는 존재이다. 하늘을 보고 최선을 위해 노력하는 존재, 최선의 길을 지향하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최선을 향해 노력하는 과정을 바로 ‘도(道)’라 한다. ‘도’는 노력과 과정이지 목적지가 아니다. 이 최선을 향한 ‘도’를 고대 이집트인들은 ‘마아트’라고 불렀다. 마아트는 고대 이집트 문명을 3000년 동안 지탱시킨 매트릭스이다.

    기원전 27세기 이집트 파라오 조세르는 당시 총리이자 수학자, 건축가였던 임호텝에게 자신의 무덤 건축을 부탁한다. 조세르 이전 무덤은 직사각형 육면체였다. 임호텝은 처음으로 피라미드식 무덤을 도입한 건축가이다. 그가 만든 최초의 피라미드를 ‘계단식 피라미드’라고 하는데, 후대에 등장하는 이집트 피라미드뿐만 아니라 메소포타미아 피라미드, 메소아메리카 피라미드의 원조이다. 임호텝은 직사각형 육면체를 점점 작은 규모로 6개 올려 소위 계단식 피라미드를 만들었다. 임호텝이 이 계단식 피라미드를 건축하기 전 정교한 의례를 행했다. 그 의례는 2t이 넘는 정사각형으로 다듬을 돌을 200만개 정도 올리기 위해 지면에 전체 구조의 중심을 찾는 일이었다. 고대 이집트는 남쪽 누비아와 수단에서 몰려와 기원전 3100년 처음으로 왕조를 이루었기에, 오래된 아프리카 의식이 이집트 문화에 흡수되었다. 아프리카에서는 건물의 중심, 신전의 중심, 우주의 중심을 ‘타조의 깃털’로 표시하였다. 바로 이 타조의 깃털을 마아트라 불렀다. 마아트가 그 중심을 잡지 못한다면, 수백만개의 돌들이 곧 무너지고 말았을 것이다. 마아트가 중심을 잡았기 때문에, 4700년이 지난 오늘날도 피라미드는 건재하여 우리에게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

    마아트는 ‘진리’, ‘정의’, ‘조화’, ‘균형’, ‘우주의 원칙’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되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이집트 문명과 종교의 핵심이다. 마아트는 후대에 여인 머리 위에 타조 깃털을 꽂은 모습으로 등장하며, 하늘의 별들과 나일강의 주기적인 범람을 조절하는 여신이기도 하다. 고대 이집트어 마아트는 ‘마아’라는 형용사의 여성명사형이다. ‘마아’의 의미는 ‘적절한’, ‘최선을 다하는’, ‘올바른’이다. 마아트는 우주의 균형이자 원칙일 뿐만 아니라,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구성원들의 조화이며, 심지어는 개개인의 삶에 있어서 일생 동안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개인의 최선이기도 한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개인의 최선은 우주와 자연의 원칙과 일치하려는 노력에서 온다고 믿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의 장례문헌인 <사자의 서>에서 마아트의 기능을 확인할 수 있다. 기원전 14세기 이집트 관원이었던 ‘휴네페르’는 죽은 자는 자칼 가면을 쓴 시체방부처리신인 ‘아누비스’를 따라 지하세계로 내려간다. 그 중앙에는 시장에서 보는 천칭이 있어 한 쪽에는 죽은 자의 심장을, 다른 쪽엔 타조 깃털인 마아트를 올려놓는다. 이 천칭은 사람의 신분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이 심판을 받는다는 평등사상이 깃들어 있다. 그 평가는 시장의 천칭과 같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다. 그 옆에 웅크린 괴물 ‘암무트’는 죽은 자가 생전에 한 생각, 말, 행동을 낱낱이 기록한 생명의 책을 들고 있는 토트신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만일 천칭이 평형을 이루면 그는 영원한 세계로 이동할 수 있지만, 천칭이 기울어진다면 그 옆에 있는 암무트가 그를 잡아 먹는다. 여기서 마아트는 휴네페르가 살아 있으면서 반드시 해야 할 생각, 말, 그리고 행동이다. 우리는 스스로, 우리가 해야 할 마아트가 무엇인지 고민해 본 적이 있는지, 그저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면서 살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내 자신의 마아트가 무엇인지 알려고 노력하는 삶, 그 과정이 바로 도(道)다.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구원이란 인간이 얼마나 위대한 일을 했느냐가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우주적인 명령을 깨닫고, 자신에게만 맡겨진 그 마아트를 이루려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당신의 마아트는 무엇인가? 서울대 배철현 교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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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오리엔트언어들에 매료되어 하버드대 고대근동학과에서 셈족어와인도-이란어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서울대 인문대학종교학과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서아시아언어문명 주임교수이다. 또한 베이징대 고대근동학과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하며 격주로 베이징에 가서 가르치고 있다.

    주요관심사는 고대오리엔트문명인 후대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간의상관관계를 규명하는일이다. 주요저서로는 <타르굼옹켈로스창세기><타르굼아람어문법><창세기, 샤갈이 그림으로 그리다> <Comparative Studies of King Darius’s BisitunInscription>등이 있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9호(2012년 0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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