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찬일 셰프의 맛의 향기] 겨울 보령엔 굴이 지천이다

    입력 : 2012.01.26 14:5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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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에 보령 천북면에 가면 굴이 지천이다. 아예 이름도 천북 굴단지다. 굴을 남도에서는 ‘꿀’이라고 부르니, 꿀단지라고 해도 되겠다. 굴이 넘치고 흘러 치인다. 파먹고 난 굴 껍질이 가게마다 수북하다. 21세기의 패총이다. 실제 선사시대 패총에 굴이 많이 발견된다. 한겨울, 변변한 난방도 못했을 선조들이 웅크리고 앉아 굴을 까먹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지금 인류 역사에서 최고로 번성한 이 시기에도 그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놀라울 뿐이다. 비닐로 얼기설기 엮은 가설 매장에 쭈그리고 앉아 장갑 끼고 굴을 까먹는 모습이 영락없다. 잠시 수만 년을 거슬러 살아보는 것이다. 굴 맛이야 그때가 더 좋았을 것이다. 100% 자연산이었을 테니까. 현재와 같은 대량의 굴 양식이 가능했던 건 1900년대 들어서의 일이니까 말이다. 겨울을 기다리는 건 식도락가에겐 다분히 굴 때문이다. 주머니 사정이 나쁜 식도락가라고 해도 굴은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 껍질 한쪽을 까놓은, 그래서 속칭 석화라고 칭하는(실제 석화의 의미는 다르다) 굴이 한 보따리에 1만원이다. 수산시장에 가면 아이스박스에 하나 가득 담아서 그 값이다. 이거, 거저라고밖에 말 못하겠다. 굴 본래의 가치에다가 껍질 까는 수고를 합쳐서 겨우 이 값이라니. 이탈리아의 요리사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했더니 믿지를 않았다. 에이, 어떻게 굴이…. 서양에서는 굴 한 개에 아무리 싸도 1000원은 넘는다. 식당에서 굴 아홉 개는 20유로를 훌쩍 넘는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한국 물가를 떠나, 굴이 잘 자라는 한국의 천혜적 환경 때문이라고 해야겠다. 특히 굵직한 굴이 나오는 남해안의 사정이 아주 좋다. 굴을 줄에 매달아 줄줄이 바다에 던져두면 쑥쑥 자란다. 수하식이라고 부르는 방법이다. 남해안은 아주 먹이가 풍부한 바다다. 갯벌이 발달하지 않은 해역은 대개 먹이가 풍부하지 않다. 호주는 거대한 바다로 둘러싸여 있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수산물 수입국이다. 바다에 유기물이 별로 없어서 고기도 적기 때문이다. 한국 남해안은 그런 면에서 신의 축복이라고밖에 못하겠다. 그래서 나는 이 한국의 굴을 자연산· 양식 가리지 않는다. 먹이라고는 전혀 주지 않고 그저 바다에 던져둔 굴이 양식이랄 것이 무어 있겠는가. 양식의 양(養)자는 먹이를 주어 기른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해서 양식도 아니다. 던져둔 것은 인간의 몫이지만 저 혼자 알아서 자란다. 그 주인이 인간일 뿐인 것이다.

    서해안 굴을 보통 자연산으로 알고 있는데 꼭 그렇지도 않다. 자연산도 많지만 양식도 꽤 있다. 물론 자연산에 가까운 방법으로 ‘기르’고 얻는다. 투석식이라고 말한다. 갯벌의 돌에 종패를 붙여두기 때문이다. 요새 프랑스식으로 양식한 굴도 고급 레스토랑을 중심으로 나온다. 필자도 좀 써봤는데 사철 굴이 나오는 게 특징이다. 산란을 조절하기 때문이다. 여름에도 굴을 먹을 수 있다. 수평망식이라고 해, 노르망디(굴로 유명하다)식 양식법이다. 알을 크게 키워서 공급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값이 비싸다. 연평도 포격사건으로 인근 어장에 문제가 생겨 공급량이 크게 줄어든 적도 있다. 대포 한 발에 굴이 타격을 받은 것이다.

    굴을 먹는 법이야, 한국 사람들이 다채롭다. 초고추장을 찍어나 마늘과 풋고추를 올려 먹기도 한다. 굴국과 굴탕(이건 충청도 지방식으로, 뜨겁게 끓인 것이 아니라 시원하게 물에 말았다. 일종의 굴 물회다)이 있다. 경상도식 짠 굴젓, 서해안식 어리굴젓이나 굴무침은 또 어떻고. 굴밥과 굴보쌈도 있다. 굴전과 굴튀김을 빼놓을 수 있나. 굴 좋아하는 이에게 겨울이 천국인 까닭이다. 서양은 굴이 비싸다 보니 먹는 법도 그다지 발달하지 않았다. 대개 생굴에 레몬즙을 뿌리는 경우가 많다. 굴 고유의 맛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법이기는 하다. 위스키를 살짝 뿌리거나 타바스코 소스를 뿌려 먹기도 한다. 레드와인 비네거를 뿌려 먹을 수도 있다. 버터를 올려 날로 먹기도 한다. 버터의 크리미한 질감이 굴의 진한 촉감과 잘 맞는다.

    굴에 어울리는 술도 여럿 거론된다. 샴페인에 굴은 아주 고급한 아페르티프다. 입맛을 돋우는 데 이만한 게 없다. 부자들의 음식이다. 샤블리라는 프랑스 화이트와인과 굴의 궁합을 아주 좋게 본다. 흑맥주에 굴도 뛰어난 조합이다. 일본 청주를 차갑게 해서 생굴을 먹으면 굴의 향이 잘 살아난다. 일본이 방사능 유출사태가 한국에도 불똥이 튀었다. 굴 값이 올해 유달리 비싼데, 일본으로 수출되는 양이 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본의 굴 주산지인 미야기 현에 가본 적이 있다. 굴 맛은 한국과 비슷했는데 값은 서너 배가 넘었다. 정말 한국의 굴에 감사했었다. 바로 그 지역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일본인들이 안전한 한국 굴을 찾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일본인들은 굴을 비싸게 파는 상품을 다양하게 개발해 놓았다. 일본의 3대 명승지라는 마쓰시마에서는 유람선을 띄워 놓고 선상에서 굴 냄비를 끓였다. 맛이야 별날 게 없지만 이것만으로도 손님들에게는 반응이 좋았다. 이탈리아의 굴 요리법 중에 독특한 게 있다. 굴 스파게티는 필자가 개발한 것일 뿐, 이탈리아에는 없다. 굴이 너무 비싸서 스파게티 같은 서민 요리를 할리 없다. 대신 제법 모양이 나는 요리를 하는데 굴 그라탱이 그중 하나다. 그라탱을 이탈리아어로는 gratinato(그라티나토)라고 말한다. 치즈를 얹는 방식은 아니다. 빵가루와 올리브유, 파슬리가 주재료다. 단순하면서도 굴의 맛을 최대로 살려준다. 굴의 미끄덩한 맛을 싫어하는 사람도 좋아할 요리다. 요리법이 간단하므로 오븐만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먼저 빵가루에 파슬리가루를 섞는다. 마늘 다진 것을 넣어도 좋다. 그걸 석화에 얹고 올리브유를 뿌린 후 200도 정도로 가열한 오븐에서 5, 6분 구우면 된다.

    탱탱한 알 굴이 입맛을 돋운다. 맥주나 와인 안주로 제격이다. 석화를 씻을 때는 연한 소금물에 식초를 조금 떨어뜨리고 살살 흔들어 씻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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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일 / 라꼼마 셰프 chanilpark@naver.com│사진 =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6호(2012년 0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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