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연의 비블리오필리] 시가 노래가 될 수 있는 이유

    입력 : 2011.09.30 13:5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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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의 시는 요즈음의 시와는 달랐던 것 같다. 예전의 시는 노래에 가까웠다. 감상에 젖은 지식인들의 여흥의 총체가 시였고, 현실적 판단으로는 답을 내릴 수 없는 모든 예사롭지 않은 감정들의 발현이 시였던 것 같다. 물론 지금 노래가 될 수 있는 시를 요구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노래가 될 수 있는 또 다른 양식의 글쓰기가 정착해있고, 감당할 수 없이 분화되어버린 삶의 양상을 담아내기 위해 시는 다른 형태를 지닐 수 밖에 없다.

    가끔 동아시아의 옛 시를 읽으면 시가 노래였던, 그것이 가능했던 시대의 감흥을 만나는 기쁨을 얻게 된다.

    “꽃잎 한 조각 날려도 봄은 줄어들거늘 / 바람 불어 만 조각 꽃잎 날리니 진정 사람 시름겹게 하네 / 지려 하는 꽃이 눈을 스치는 것 잠시 바라보고 / 몸 상한다 하여 술이 입에 들어감을 마다하지 말리라 / 무엇 하러 헛된 명예에 이 몸을 얽어매리오”

    시성이라고 불리는 당나라 시인 두보의 시 ‘곡강(曲江)’이다.

    두보는 봄이 온 기쁨보다 떨어지는 꽃잎에 아련한 미련을 갖는다. 결국 두보가 다가가는 건 끝도 없는 허무다. 그러나 허무도 허무 나름, 두보의 허무는 너무나 처연하고 아름답다.

    이것이 당나라 시의 매력이다. 당나라 시는 낭만적이다. 전문가들은 송나라 시가 머리로 쓴 것이라면 당나라 시는 가슴으로 쓴 것이라고 말한다.

    중문학자인 김원중 씨가 번역한 책 '당시'를 읽으면 그 찬란한 낭만에 가슴이 미어진다.

    당나라 지식인들은 불행했다. 끝없는 전쟁으로 국가는 피폐했고, 뜻있는 지식인들은 정쟁에 휘말려 유랑을 떠나야 했다. 현실의 울분을 삭힐 수 없었던 그들은 자연과 시를 벗삼아 생을 영위했다.

    시선이라고 불리며 두보와 쌍벽을 이룬 시인 이백도 당나라 시인이었다. 흔히 이태백이라 불리는 시인은 술을 좋아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시 ‘달 빛 아래서 홀로 술을 마시다’를 보자.

    “꽃밭 가운데서 한 병 술을 / 친한 이 없이 홀로 술을 마신다 / 술잔 들어 밝은 달 맞이하고 / 그림자 바라보니 셋이 되었다 / 저 달은 본시 마실 줄 몰라 / 한낱 그림자만 내 몸을 따른다 / 잠시 달과 그림자를 데리고 / 모름지기 봄철 한때나마 즐기련다 / 내가 노래하면 달은 서성거리고 / 내가 춤추면 그림자도 따라 어지럽게 춤춘다”

    기막힌 시다. 시인은 혼자 술을 마신다. 그러나 혼자가 아니다. 하늘을 올려다 보니 달이 떠있고, 달 빛 때문에 그림자가 생겼다.

    달과 그림자 그리고 나, 그러니 셋이서 술을 마시는 것과 마찬가지다. 달에 취하고 술에 취했던 그들 삶은 우리에게 시를 남겨줬다

    이백이나 두보 이외에도 한자로 쓴 중국시 중에는 시가 본래 가지고 있었던 감흥에 가까운 작품들이 많다.

    “작년 오늘 이 문안에서/사람과 복사꽃이 서로 붉게 빛났지/사람이 간 곳 알 수 없건만/복사꽃은 여전히 봄바람에 미소짓네.”

    당나라 때 최호라는 시인이 쓴 ‘도성 남쪽 교외에서 짓다’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시다.

    시인은 어느 해 청명절 날 우연히 한 수줍은 소녀를 만났다. 가슴속에 늘 그 소녀를 간직하고 있다가 몇 해가 지나 소녀 집을 찾아갔지만 소녀는 없었다. 시인은 소녀 집 벽에다 이 즉흥시를 써놓고 떠난다.

    중국 명시들을 읽으면 탁월한 은유의 미학을 만나게 된다. 뜻글자가 가진 매력이다. 작은 걸 이야기하는 듯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깊어지는 그 자기장이 새삼 놀랍다. '시는 붉고 그림은 푸르네'도 중국 명시와 명화를 만날 수 있는 매력 있는 책이다.

    1100년 전에 지은 한나라 때 시 한 수를 읽어보자.

    “가고 또 가며/ 님과 이별했지요/ 수만리를 떨어져/각기 하늘 끝에 있지요/길은 멀고 가로막혀 있으니/ 만날 날 어찌 알 수 있으리/ 북쪽 말은 북풍을 따르고/ 월나라의 새는 남쪽 가지에 깃들이네/헤어진 날이 길어질수록/옷은 나날이 헐렁해지네/ 뜬 구름이 밝은 해를 가려/ 떠난 님 돌아오지 못하네/ 님 그리다 늙어 가는데/ 벌써 한 해가 저무는구나 / 나 버림받은들 다시 말하지 않을 터/ 님은 끼니 거르지 마소서.”

    제목이 ‘가고 또 가다’라는 이 시는 가슴뭉클하다. 전화도 없었을 테고 교통도 여의치 않던 시절에 한 사랑하는 사람을 기약 없이 기다리는 심정이 기막히게 드러나 있다.

    특히 오랜 세월 기다림에 야위어 가는 자신을 표현한 부분은 압권이다 .

    손가락 몇 개만 움직이면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기 때문에 현대인들은 늘 기다림에 패배한다. 기다리고 기다리다 그 기다림마저 뛰어넘는 미학을 모르고 살고 있는 것이다.

    “뜰 가운데 거니는데 달은 날 따라오고/ 매화 둘레 몇 번이나 서성이며 돌았던고/ 밤 깊도록 오래 앉아 일어설 줄 몰랐더니/ 향기는 옷깃 가득, 그림자는 몸에 가득.”

    퇴계 이황이 쓴 ‘도산월야영매((陶山月夜詠梅)’라는 시다. 가만히 읽어보자. 기품과 아름다움이 절절하게 묻어나는 시다.

    현대시론에서 운운하는 회화성에서도 결코 뒤지지 않는 명시다. 우리의 옛글에는 특유의 미학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간해서 옛글을 접할 기회가 없다. 슬픈 일이다.

    [허연 / 매일경제 문화부 부장대우 · 시인 · 문학박사 praha@mk.co.kr]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2호(2011년 0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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