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ear My Walking] 강원도 인제 내린천 ‘속삭이는 자작나무숲’ | 순백의 숲속에서 즐기는 최고의 힐링

    입력 : 2026.02.20 16:48:15

  • 내린천 무장애나눔길
    내린천 무장애나눔길

    “여기 원래 차 타고 다니는 길 아니야? 이렇게 가파른 길을 얼마나 더 가야 하는 거야?”

    여기저기서 투정이다. 뉘 집 아이가 이리 떼를 쓰는지 슬쩍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여기 왜 화장실도 없는 거야. 헉헉. 아빠 나 이러다 쌀 거 가터.”

    바지 가랑이를 움켜쥔 남자아이는 이미 한계를 넘어섰다. 눈엔 눈물이 가득…. 비교적 큰 바위 뒤로 아이를 이끈 아빠의 얼굴엔 미안한 마음 반, 어색한 미소가 반이다.

    “아이고, 자작나무 보려다 자작나무 기피증부터 생기겠어. 여보 도대체 어디부터가 자작나무숲이야?”

    한동안 셀카 삼매경에 빠졌던 중년의 부부도 숨이 턱까지 올라왔다. 마실 물 하나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는지 숨소리가 거칠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뒤따라오던 생면부지의 등산객이 오랜만이라는 듯 씨익 웃으며 물 한 병을 내민다. 이런 걸 K-등산의 매력이라 했던가….

    강원도 인제에 자리한 ‘속삭이는 자작나무숲’을 찾았다. 군부대가 많고 오지인 탓에 ‘인제가면 언제오나’란 말이 전해질 만큼 녹록지 않던 삶은 세월이 지나 새로운 길이 놓이며 추억이 됐다. 자작나무숲 초입에서 떡볶이와 어묵을 팔고 있는 인근 주민들의 말을 빌리면 “인제는 자작나무숲 덕에 겨울만 되면 꼭 들러야 하는 명소가 됐다.” 겨울이 특별한 이유는 하얀 눈 때문인데, 백색인 자작나무 껍질과 어우러져 순백의 세상이 된 숲속의 고즈넉한 정취가 색다른 감흥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힘들어도 오른다. 눈길에 푹 빠진 발을 한걸음 한걸음 옮기다 보면 숨소리 울림부터 달라진다. 그리고 입 밖으로 나오는 한마디….

    “와…. 스트레스 아웃, 힐링이다 힐링.”

    소나무 숲 대신 자작나무로
    매서운 겨울바람에 옆으로 기운 자작나무
    매서운 겨울바람에 옆으로 기운 자작나무

    강원도 인제 내린천 인근에 조성된 ‘속삭이는 자작나무 숲’은 솔잎혹파리 피해로 훼손된 소나무 숲을 복구하기 위해 만든 인공 숲이다. 1974년부터 1995년까지 138만ha에 70만 그루의 자작나무를 심어 완성했다. 2008년에 유아숲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되며 이름을 알린 숲은 2012년 일반인들에게 개방되며 숲속교실, 생태연못, 인디언집, 탐방로 등의 시설을 정비했다. 사계절 내내 탐방객이 끊이지 않는데, 앞서 말했듯 겨울엔 특히 설경을 즐기려는 이들로 붐빈다. 여기서 잠깐, 설경과 숲만 생각하고 둘레길 정도를 떠올렸다면 우물에서 숭늉부터 찾은 격이다. 입구부터 걸어서 한 시간 이상 이동해야 자작나무숲에 닿을 수 있다. 게다가 눈이라도 내리는 날엔 반가운 마음보다 제대로 된 신발부터 챙겨야 한다. 입구와 숲을 잇는 길은 두 갈래로 나뉘는데, 경사도가 꽤 가파른 도로인 3.2㎞의 윗길(원정임도)은 약 1시간 20분, 숲 주변으로 오르는 2.7㎞의 아랫길(원대임도)은 약 1시간이 소요된다. 그나마 눈 오는 날엔 윗길만 열리는데, 체감상 20°~30°의 경사가 이어지기 때문에 웬만하면 등산화가 제격이다. 주차장 주변 매점에서 신발에 걸 수 있는 휴대용 아이젠을 판매하는데 성능 면에서 크게 미덥지 않다. 제대로 설경을 즐기려면 등산화와 방한복부터 준비해야 한다.

    자작나무숲의 인디언집과 전망대
    자작나무숲의 인디언집과 전망대

    오르고 내리는 시간이 있어 숲을 찾는 시간은 하절기엔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 동절기엔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로 입산 가능 시간이 정해져 있다. 입구가 닫히는 시간은 각각 오후 6시와 5시. 자작나무숲을 즐긴 후 내려오는 시간까지 왕복 약 3시간이 걸린다는 의미다. 천지사방이 하얗게 변한 윗길의 풍경은 스위스 뒷산이 부럽지 않을 만큼 이국적이다. 높이 면에선 200~3000m쯤 낮겠지만 뜨거워진 피부를 식히는 동해의 차가운 바람은 역시 한국이 낫다.

    사진설명

    도로를 따라 오르다보면 마치 스키장이나 눈썰매장이 연상된다. 그래서인지 도무지 얼마나 올라왔는지 가늠하기 쉽지 않은데, 내려오는 이들에게 물으면 열이면 아홉이 “거의 다왔다”고 답한다. 이 또한 K-등산의 매력(?)이던가. 그리고 그즈음 바람에 고개가 한쪽으로 기울어진 자작나무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전망대와 야외무대, 숲속교실, 생태연못, 하늘만지기, 포토존 등으로 조성된 자작나무숲 안쪽에는 약 2만여 그루의 자작나무가 둥지를 틀고 섰다. 나무들이 바람을 막아서고 있어서인지 숲에 들어서면 그리 춥지 않다. 또 하나 생경한 건 더 이상 소리가 울리지 않는다는 것. 겨울 자작나무숲에는 메아리가 없다. 눈이 소리의 반사를 약화시키기 때문이라는데, 마치 방음벽이 설치된 스튜디오에 들어온 것처럼 날것의 목소리가 둥둥 떠다닌다. 하산한 후 입구 매점에서 어묵 국물을 삼키며 숲이 조용하다고 입을 열었더니 옆에 있던 등산객이 한마디 거들었다.

    사진설명

    “그래서 겨울에 찾는 사람이 많아요. 사람은 많아도 소리가 울리지 않아서 더 조용하다나 뭐라나. 눈 밭에서 명상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그러다 감기들기 십상이지….”

    자작나무 숲 탐방로
    사진설명

    ♧1코스(자작나무코스 0.9㎞)-약 50분, 순백의 자작나무 숲 집중 생육지역

    ♧2코스(치유코스 1.5㎞)-약 90분, 자작나무와 낙엽송이 어우러진 지역

    ♧3코스(탐험코스 1.2㎞)-약 40분, 작은 계곡이 함께 있는 지역

    ♧4코스(위험코스 3㎞)-약 120분, 천연림과 자작나무 숲이 조화를 이룬 지역

    ♧5코스(힐링코스 0.86㎞)-약 30분, 천연림과 자작나무숲을 볼 수 있는 지역

    ♧6코스(하드코스 2.24㎞)-약 1시간 50분, 천연림과 자작나무숲을 볼 수 있는 지역

    ♧7코스(숏코스 1㎞)-약 50분, 천연림을 탐방할 수 있는 지역

    ▶ 내린천 무장애나눔길
    자작나무숲에 닿기 전 내린천에 조성된 무장애나눔길도 꼭 들러야 할 명소다. 편도로 약 850m가 조성된 이 길은 인도교와 데크길로 나뉜다. 왕복 약 30여 분이 소요되는데 눈내린 내린천 계곡의 경치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

    [글 · 사진 안재형 기자]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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