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에서 하이닉스로… Z세대 마음을 옮긴 이유

    입력 : 2025.10.22 17:43:40

  • MZ 세대가 일하고 싶은 기업 Top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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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기업들의 채용이 다시 기지개를 켠다. 삼성은 향후 5년간 6만 명을 뽑겠다고 선언했고, SK·현대차·LG도 연중 채용에 가까운 속도로 공고를 내고 있다. 10월 21일에는 대규모 채용박람회가 열린다. 공고가 잇따르자 구직자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기업 쪽으로 쏠린다. 특히 삼성의 중장기 대규모 채용은 반도체·바이오·AI 등 미래 먹거리 중심의 인력투자 전략이 본게임에 들어갔다는 신호로 읽힌다. 관심의 온도는 높아졌지만 시장의 공기는 여전히 빡빡하다. 통계에 따르면 8월 청년 고용률은 45.1%로 16개월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다. 관심은 뜨거워졌지만, 선택과 경쟁은 갈수록 더 치열해지고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런 상황에서 “요즘 구직자 세대는 어떤 회사를 ‘좋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은 단순 인기 순위를 넘어 산업과 노동시장의 방향을 읽는 지표가 된다.

    IT 전성기에서 신성장·브랜드 공감으로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2025 금융권 공동채용 박람회가 구직자들로 붐비고 있다.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2025 금융권 공동채용 박람회가 구직자들로 붐비고 있다.

    지도는 3년 만에 몇 번이나 다시 그려졌다. 2022년은 IT·플랫폼의 시간이었다. 네이버와 카카오가 1·2위를 차지했고, 토스·당근마켓 같은 신생 플랫폼도 상위권에 올랐다. 자유로운 문화, 빠른 성장,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이 Z세대의 기준과 맞닿아 있었다. 2023년에는 금리와 경기 둔화, 채용 불확실성이 겹치며 ‘안정성’이 전면으로 복귀했다. 네이버가 1위를 지켰지만, 삼성전자·현대자동차·SK하이닉스가 상위권을 채웠고 현대차는 생산직 대규모 채용의 효과로 10위에서 3위로 급상승했다. 2024년의 장면은 또 달랐다. 1위는 SK하이닉스, 2위는 네이버, 3위는 CJ올리브영. LG전자와 현대차, LG에너지솔루션이 뒤를 이으면서 ‘신성장 산업’과 ‘생활 밀착형 브랜드’가 나란히 전면에 섰다.

    반면 삼성전자는 6위로 내려앉았다. 흐름을 요약하면 이렇다. 성장성(플랫폼)에서 안정성(전통 대기업)으로, 다시 성장성과 브랜드 공감(신성장·라이프스타일)으로의 이동. 방향은 단순히 ‘유행’이 아니라, 경기·기술 사이클과 구직자 심리가 만나는 지점에서 갈라진다.

    브랜드 파워와 성장경험이 선택의 척도

    상위권의 면면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선호의 방정식이 보인다. 캐치가 밝힌 세 가지 구직트렌드 중 첫째는 산업 전망. 반도체·전지·모빌리티처럼 앞으로도 커질 것이라는 ‘합의가 형성된 산업’은 기본적으로 유리하다. 둘째, 성장 경험. 채용·평가·육성의 프로세스가 갖춰져 있고, 직무 이동과 커리어 확장이 가능한 기업이 선택을 이끈다. 셋째, 브랜드 가치. 생활과 신념에 닿는 브랜드는 ‘일의 의미’를 덧입히며 호감도를 높인다는 것이다.

    2024년의 SK하이닉스(기술력과 채용 확대), CJ올리브영(생활 접점과 친숙함), LG전자·LG에너지솔루션(ESG·친환경 이미지)은 이 방정식의 서로 다른 축을 채운 사례로 읽힌다. 그 결과, 선호의 기준은 문화적 코드만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캐치 관계자는 “재택·수평이 ‘입문’의 조건이었다면, 지금은 보상·평가의 투명성과 성장 트랙의 명료성이 ‘결정’의 기준에 가깝다”고 설명한다. 상담 현장에서 가장 빈번한 질문이 연봉이 아니라 ‘입사 후 커리어패스’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선택은 ‘여기서 무엇을 배우고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수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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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고가 선호를 당긴다—‘채용 모멘텀’의 시대

    선호는 공고에서 시작된다. 현대차의 순위 점프는 그 표본이다. ‘생산직 대규모 채용’이라는 선명한 신호가 조회와 관심을 이끌어냈고, 높은 보상과 안정성 인식이 맞물리며 선호도가 빠르게 상승했다. 올해 가을에도 비슷한 장면이 이어진다. 그룹 단위의 추가 채용, 하반기 신입 공채, 오프라인 채용박람회까지 모집 신호가 커질수록 관심은 가속된다. 실제로 공고 제목에 ‘대규모 채용’이 붙는 순간 클릭률이 튀어 오르고, 직무 설명이 구체적일수록 지원으로의 전환이 자연스러워진다는 체감이 현장에 널리 퍼져 있다. 다만 신호의 크기만으론 충분치 않다. 메시지의 진실성과 접점의 밀도가 그 뒤를 받쳐야 한다. 온라인 노출로 관심의 문턱을 낮추고, 현장 설명회나 직무 Q&A 같은 오프라인 접점으로 ‘확신’을 만들어 주는 방식이 효과적이라는 평가가 잇따른다. 기업 입장에서는 공고의 언어—제목, 첫 문단, 직무·미션·성장 경로—가 곧 브랜딩이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하이닉스의 부상과 삼성전자의 내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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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1위로 올라선 SK하이닉스는 안정성과 성장성을 동시에 잡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AI 확산으로 메모리·HBM 수요 기대가 높아진 상황에서 기술 모멘텀, 채용 확대, 보상 체계가 한쪽으로 기울지 않은 균형을 보여줬다. 반면 삼성전자는 조사 시점의 산업 사이클이 과도기로 인식되며 매력이 다소 희석된 측면이 있었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다만 큰 그림은 다시 움직이고 있다. 5년간 6만 명이라는 대규모 채용 계획이 공개되면서 삼성의 ‘모집 신호’는 한층 굵어졌다. 이 변화가 내년 선호에 어떤 파급을 낳을지는 지켜볼 대목이다. 채용은 결국 ‘현재의 인상’과 ‘미래의 약속’이 만나는 곳에서 결정된다. 조용한 호재도, 작지 않은 노이즈도 순위표를 미세하게 흔든다. 올해는 하이닉스의 손을 조금 더 들어준 셈이고, 내년은 또 다른 이야기를 준비 중이다. 또 하나의 재미있는 트렌드는 문·이과 구분이나 전공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전공에 따른 취향의 분화는 최근까지 분명 존재했다. 2022~2023년 내내 문과는 플랫폼, 이과는 제조·반도체를 우선순위에 올렸다. 그런데 2024년 들어 경계선이 흐릿해졌다. SK하이닉스가 문과 2위·이과 1위를 동시에 차지했고, 네이버·LG전자·CJ올리브영 등도 전공을 가로질러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생활 속에서 반복적으로 만나는 브랜드가 ‘입구’를 넓히고, 성장 전망이 선명한 산업이 ‘출구’를 결정하는 구조가 탄탄해졌기 때문이다. 결국 ‘알고 좋아지는’ 순서에서 ‘좋아져서 알아보는’ 순서까지, 입구와 출구가 서로를 밀어 올리는 셈이다.

    누가 더 명료한 ‘성장 경험’을 보여주는가
    한 기업이 캐치카페에서 채용설명회를 하고 있는 모습.
    한 기업이 캐치카페에서 채용설명회를 하고 있는 모습.

    채용 시즌의 문이 커질수록, 공고의 문장은 더 중요해진다. 직무의 의미를 첫 문단에서 보여주고, 입사 후 1·3·5년의 성장 경로를 납득 가능하게 제시하며, 평가·보상 체계를 투명하게 설명하는 기업은 더 빨리 신뢰를 얻는다. 신사업 드라이브가 선명한 곳일수록 상위권 인재의 관심이 모이는 경향도 계속 관찰된다.

    캐치 관계자는 “선호는 산업 전망과 브랜드 가치 위에 ‘성장 경험’이라는 교두보가 놓일 때 비로소 굳어진다”라고 설명했다. 대규모 채용의 시대는 이미 시작됐고 지도는 또 한 번 움직일 것이다. 다음 판의 중심에 설 기업은 어쩌면 간단한 질문에 명료하게 답할 수 있는 곳일지 모른다. “여기에서, 당신은 얼마나 빨리,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는가.”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81호 (2025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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