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간을 브랜드 매체로 만드는 실험 남중관이 그린 ‘어바웃프로젝트 라운지’

    입력 : 2025.10.27 15:3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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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중관 대표
    파인아트디씨지(FineArt DCG)와 어바웃프로젝트 라운지를 이끄는 복합 문화 기획자. 한양대학교 광고홍보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에서 디자인 매니지먼트 석사 학위를 취득하며 이론과 실무를 두루 쌓았다. 2008년 파인아트디씨지를 설립해 광고물 제작과 브랜드 경험 디자인을 선도해 왔고, 2020년에는 잠실 롯데월드타워 인근에 어바웃프로젝트 라운지를 열어 “공간 자체가 브랜드의 매체가 될 수 있다”는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통로를 로비로, 로비를 무대로 바꾸며 도시와 브랜드, 사람을 잇는 새로운 방식의 문화 경험을 제안한다.

    잠실 롯데월드타워와 에비뉴엘 사이 차가운 복도로 방치되던 공간이 있었다. 사람들이 무심하게 지나쳤던 공간은 몇 년 전부터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었다. 상시 미술전시가 열리고, 패션쇼가 펼쳐지고, 토크와 미니 콘서트, 브랜드 쇼케이스가 이어지는 ‘어바웃프로젝트 라운지(ABOUT Project Lounge)’가 들어섰다. 이 변신의 배후엔 파인아트디씨지(FineArt DCG)와 라운지를 함께 이끄는 남중관 대표가 있다.

    “광고 매체 환경이 완전히 바뀌었잖아요. 공간 자체가 또 하나의 매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 질문에서 시작했습니다.”

    디자인·브랜딩·대관을 한데 묶은 그의 실험은, 도시의 ‘속도’를 ‘체류’로 바꾸는 기술을 입증하는 중이다.

    공간을 ‘매체’로 설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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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중관의 첫 결정은 공간의 속도를 늦추는 일이었다. 라운지는 앞뒤에 상징적 ‘문’을 세워 독립된 방처럼 단절감을 만들고, 천장에는 구름 같은 오브제를 띄웠다. 긴 벽면은 브랜드와 작가의 이야기를 붙이는 스토리 월로, 대형 스크린은 움직이는 내 러티브의 무대로 변했다.

    “요즘 사람들은 사진을 좋아하잖아요. 자연스러운 UGC(사용자 생성 콘텐츠)가 나오도록 오브제를 촘촘히 심었습니다.”

    방문객은 걸음을 늦추고, 의자에 앉아 한 잔을 마시고, 다시 스크린과 벽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렇게 라운지는 타워의 ‘비공식 로비’가 됐다. 평일엔 인근 근무자가 회의와 미팅을 잡고, 주말엔 쇼핑객과 관광객이 머문다. 한 번 찾은 이의 재방문 비율이 높은 것도 특징이다. 겉으로는 화려한 제스처 없이 조용하지만, 내부의 동력은 명확하다. ‘체류–몰입–공유’라는 퍼널을 염두에 둔, 매체로서의 공간 설계다. 콘텐츠가 고객을 부르고, 고객이 다시 콘텐츠를 만든다.

    ‘팬데믹 속 피벗’ 낮의 수요에 초점을 맞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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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하자마자 코로나가 터졌죠.”

    공교롭게 남 대표가 어바웃프로젝트 라운지를 시작한 직후 코로나 팬데믹을 맞이했다. 야간 와인 프로그램과 22시 운영은 접어야 했다. 그는 영업시간을 평일 19시, 주말 20시로 다듬고, 낮의 체류를 강화하는 쪽으로 전략을 틀었다. 회의와 간단한 접대가 가능한 좌석 배치, 롱테이블을 중심으로 한 가변형 동선, 그리고 메뉴의 재구성이 뒤따랐다. 샐러드·디저트·커피 같은 소프트 콘텐츠가 중심이 됐고, 제주 한 목장의 아이스크림을 독점 도입해 ‘머무를 이유’가 있는 콘텐츠를 하나 더 붙였다.

    “숫자를 쥐어짜기보다 가설을 검증하는 데 집중했어요.”

    낮 시간대 수요가 뒷받침되자, 라운지는 업무와 일상의 경계에서 작동하는 하이브리드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오피스 로비, 문화 라운지, 가벼운 갤러리, 브랜드 쇼룸의 기능이 유연하게 오버랩된다. 운영팀은 소음과 보안 규정도 섬세하게 손봤다. 디제이 박스를 들여온 밤 행사도 있었지만, 21시 이전 승인제로 한계를 명확히 하고, 시설·CCTV 체계를 정교화해 사고를 최소화했다.

    ‘수익보다 증명’ 수수료형 모델과 운영의 디테일

    어바웃프로젝트 라운지의 사업 구조는 흔치 않다. 정액 임대료가 아닌 매출 연동 수수료로 파트너십을 설계했다.

    “우리가 공간에 투자하니, 파트너도 투자 개념으로 봐달라고 제안했습니다.”

    단기 수익 극대화 대신 레퍼런스와 학습을 우선순위에 올린 셈이다. 그는 숨김없이 말한다.

    “아직 투자금을 다 회수하진 못했어요.(웃음) 사실 막대한 돈을 벌겠다는 생각보다는, 이 공간을 통해 다른 기회와 아이디어를 많이 얻게 되었습니다. 다음 턴도 천천히 기획 중입니다.”

    운영은 ‘융합 팀’이 맡는다. 파인아트디씨지의 디자인·제작 역량, 자회사 영상팀의 콘텐츠 제작력, 카페 운영 파트의 F&B 노하우가 원팀으로 묶인다. 큐레이션은 대관 위주의 외주에서 시작해, 현재는 자체 제안과 동반 기획을 병행하는 형태로 진화했다.

    “처음엔 갤러리 대관처럼 출발했지만, 직접 큐레이팅을 배우고 작가와 브랜드를 만나면서 우리 방식의 기준을 세웠죠.”

    전시는 상시 운영되고, 스케줄은 6개월~1년 단위로 차오른다. NFT 체험, 행위예술, 와인 시음, 미니 콘서트 등 프로그램은 행사마다 장면을 갱신한다.

    마케팅은 과장하는 법이 없다.

    “홍보 기사나 체험단은 거의 안 해요. 오가닉 유입을 선호합니다.”

    방문객 중 일부는 라운지를 롯데가 운영한다고 여길 정도로 전면에 브랜드를 세우지 않는다. 대신 ‘브랜드보다 장면’을 남긴다. 구호 대신 기억, 배너 대신 경험이 홍보가 된다.

    브랜드가 도시와 첫 대화를 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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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 대표가 최근 가장 공들이는 포맷은 ‘전시의 형식을 띤 팝업’이다.

    “보통 팝업은 매장을 하나 더 내는 느낌이 강하죠. 우리는 벽면 전체를 브랜드 스토리텔링의 무대로 씁니다. 제품만이 아니라 왜(Why)를 보여주게 하죠.”

    대형 스크린엔 브랜드 필름이 흐르고, 스토리 월엔 제작 과정과 철학, 지속가능성, 협업 아티스트의 배경이 붙는다. 제품은 주인공이 아니라 맥락의 일부가 된다.

    효과는 분명하다. 구매를 강요하지 않아도, 관계의 씨앗이 뿌려진다. 라운지의 지리적 조건도 이를 돕는다. 옆 매장으로의 구매 전환이 자연스럽고, 전시형 팝업은 ‘보고-알고-사러 가는’ 3단 점화를 유도한다.

    라운지는 ‘작품’과 ‘상품’ 사이의 긴장도 부드럽게 중재한다. 지나가다 만난 전시가 우연한 구매로 이어지고, 작가와 브랜드는 대중과 나란히 걷는 법을 배운다.

    “우리는 갤러리라기보다 문화공간입니다. 전시는 활용도가 높은 포맷일 뿐이에요.”

    상업과 예술의 경계에 서되, 어느 한쪽으로 과하게 기울지 않는 균형감. 이것이 어바웃프로젝트 라운지의 미덕이다.

    확장은 열어두되, 서두르지 않는다

    확장 제안은 끊이지 않았다. 타워 반대편 영화관 인접의 빈 공간, 사운드 중심의 프로젝트 구상, 공항 측 제안까지. 그러나 그는 발을 천천히 뗀다.

    “꾸미는 건 자신 있지만, 운영은 또 다른 전문 분야더군요.”

    팬데믹 시기에는 대전역 인근 2호점 계약을 철회했고, 대신 본사 1층의 작은 카페 같은 저위험 학습 실험으로 운영 노하우를 쌓았다. 투자 제안도 몇 차례 있었다고 했지만 고사했다고 한다.

    “투자를 받으면 결과를 수치로 맞춰야 하잖아요. 그러면 우리가 하고 싶은 것보다 돈이 되는 것을 해야 하죠.”

    그의 커리어는 디자인·제작에서 출발해, 지금은 공간을 매체로 바꾸는 전략가로 확장됐다. 파인아트디씨지의 제작력은 라운지의 조형과 연출로 환원되고, 라운지에서 축적한 운영 데이터와 사례는 다시 브랜드·프로덕션으로 피드백된다. 이 선순환이 곧 남중관의 차별점이다. 무엇보다 그는 초심을 잃지 않는다.

    “이 공간은 재미있는 경험을 해보자는 데서 시작했습니다. 숫자 뒤에 숨기기보다 장면을 남기는 것이 목표예요.”

    라운지의 일상은 그렇게 흐른다. 점심 무렵엔 타워 직원들이 샐러드를 사러 들르고, 오후엔 주부와 시니어, 커플

    과 외국인이 섞인다. 저녁엔 짧은 토크나 오프닝 행사가 가볍게 이어진다. 프로그램 사이사이에 메뉴 리뉴얼이 있고, 작은 굿즈가 더해지고, 다음 전시의 스토리보드가 벽에 붙는다. 스태프들은 “비어 있는 날보다 차 있는 날이 보기 좋다”며 캘린더를 메운다. 지나가던 손님이 우산을 치고 갈까 걱정하던 시절은 지났다. “작품을 작품으로 존중하는 분위기가 자리잡았어요.”

    어바웃프로젝트 라운지는 화려한 갤러리도, 시끄러운 이벤트 홀도 아니다. 도심의 속도를 잠시 낮춰 머무를 이유를 만들어 주는 장소다.

    담백한 공간과 콘셉트 안에 라운지의 본질이 있다. 이 무대가 더 많은 브랜드와 창작자의 첫 대화를 열길 기대한다.

    [박지훈 기자 · 사진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81호 (2025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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