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통의 실과 바늘로, 현대의 예술을 수놓다

    입력 : 2025.02.21 11:20:21

  • 김경희 작가
    김경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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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희 작가는 전통 조각보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는 섬유예술가다. 피아노를 전공한 후, 시어머니인 전통 보자기 명장의 영향을 받아 조각보를 시작했으며,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조형예술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전통 감침질 기법을 활용하면서도 단색과 기하학적 패턴을 강조한 현대적 조형미를 구현하며, 전통과 현대를 잇는 독창적인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국내외 전시 및 아트페어에 활발히 참여하며, 섬유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김경희 작가의 이력은 범상치 않다. 6살에 시작한 피아노를 통해 엘리트 연주자의 삶을 살아온 그는 결혼과 함께 얻게된 ‘전통 보자기 명장’ 시어머니와의 인연, 그리고 뒤늦게 공부한 섬유예술 박사 과정까지 마치며 예술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작가는 이 과정을 통해 ‘조각보 작가’로서 확고한 예술적 정체성을 다져가고 있다고 회상했다. 피아노 전공에서 시작해 바느질로 이어지는 “시간 예술에서 공간 예술로의 확장”이라는 본인의 표현대로, 김경희 작가는 오늘도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작품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그녀가 주로 사용하는 작업 방식은 ‘감침질’이라는 손바느질이다. 이 섬세한 바느질이 조각보를 이을 때마다, 한 땀 한 땀의 리듬이 만들어지고, 작품에 음악적인 선율이 깃들게 된다. 피아노 건반을 형상화한 흑백 조각보나 단색 계열로 절제된 보자기 설치 작품은 전통 예술의 범주를 넘어, 현대미술의 실험정신을 온몸으로 구현한다.

    “보자기, 어머니 곁에서 피어난 전통의 씨앗”

    김경희 작가가 전통 보자기를 배우게 된 계기는 시어머니와의 만남이다. 시어머니는 국가에서 인정하는 ‘보자기 제작 전통기능 전승자’이자 명장으로, 평생을 보자기 제작에 헌신해왔다.

    “저희 시어머니가 전통 보자기 기능 전승자세요. 평생 그 작업을 하셨고, 60세 넘어서 첫 개인전을 하실 정도로 원체 외부 노출이 적었죠. 저 또한 처음엔 그저 시어머니를 도와드리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김 작가는 처음에 ‘보조자’ 역할로 바느질을 접했다. 하지만 곧 “어머니의 작업을 단순히 돕는 차원이 아니라, 스스로 보자기 예술의 주체가 되어보자”라는 생각을 품게 되었고, 대학교 졸업 이후 30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미술공부를 시작했다.

    전통과 현대 사이에서 확장되는 조각보 예술

    김경희 작가가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전통 조각보’를 다루면서도 이를 현대미술의 영역으로 과감히 끌어오기 때문이다. 조각보 하면 보통 알록달록한 오방색이 떠오르지만, 그녀는 흑백 위주의 단색 조각보 작업을 선보여왔다. 이른바 ‘피아노 건반’을 연상시키는 절제된 조각보, 혹은 격자형태의 직조기법을 현대적으로 재배치한 설치 작품 등은 과감한 시도이면서도 탄탄한 학문적 토대를 갖추고 있다.

    “제가 사실 피아노를 오랫동안 했잖아요. 모차르트나 바흐처럼 정돈된 곡들을 좋아했는데, 그런 정서가 제 조각보에도 많이 담겨요. 전통 조각보는 다양한 색채가 예쁘지만, 저는 오히려 단색에 집중하고 싶었어요. 절제된 아름다움이 전통의 현대적 해석과 연결될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학문적으로도 그는 부산 동아대학교 대학원 섬유예술 석사,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 박사(섬유예술) 과정을 밟으며 전통 보자기의 재료·기법·역사적 배경을 폭넓게 연구했다. 이를 통해 전통의 기예를 유지하는 동시에, 현대미술 전시와 비엔날레에 적극 참여하며 조각보를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켜 왔다. 그녀가 펼치는 ‘현대 섬유 예술’은 전통 조각보의 기법과 재료를 사용하지만, 조형미나 표현은 기존 조각보와는 전혀 다르다. 특히 회화, 설치, 조형 등 여러 장르적 요소가 어우러지는 융·복합적 성격이 짙다. 때로는 평면 액자에 넣어 반부조의 느낌을 주기도 하고, 입체 작품으로 공간 전체를 활용하기도 한다.

    피아노와 바느질의 공명… 시간 예술과 공간 예술을 잇다

    김경희 작가의 경력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음악 전공자’ 출신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대학 때부터 20대 후반까지 주로 피아노를 치고, 가르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음악은 그녀의 ‘조각보 예술’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쳤을까?

    “피아노는 시간 예술이잖아요. 그 특정 곡을 연주하면, 연주가 끝나는 순간 모든 게 사라지죠. 그런데 보자기는 공간 예술이니까, 내가 얼마나 걸리든, 어떤 방식으로든 형태를 계속 만들어 갈 수 있어요. 그게 저에게 새로운 해방감이었어요. 음악 하듯이 리듬감을 살려가면서, 완성 시점도 제가 정할 수 있다는 게 참 좋았어요.”

    음악적인 리듬, 모티브, 정서가 자연스럽게 작품에 스며들었다. 그래서 단색, 흑백 위주의 구성, 간결한 직선들이 작품 전반에서 보이곤 한다. 전통을 공부한 이들에게는 파격적으로 비칠 수 있지만, 어쩌면 그녀의 예술언어가 ‘음악’에서 출발했음을 감안하면 자연스럽게 수긍이 간다. 김경희 작가는 현재 부산을 기반으로 활동하면서, 서울과 해외 전시를 꾸준히 넘나들고 있다.

    “전통 매듭을 다루는 다른 분이 해외 명품 브랜드와 협업 사례도 봤는데, 정작 국내에서는 그게 잘 알려지지 않더라고요. 저도 언젠가 보자기와 패션, 산업 디자인을 결합해서 시도해 보고 싶어요.”

    전통공예가 단순히 ‘과거의 유산’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동시대 라이프스타일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미래를 꿈꾸는 것이다.

    “우리 전통의 보자기는 이미 외국에서도 멋진 예술작품으로 인정받고 있어요. 하지만 저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서 동시대 현대미술이 원하는 방향으로 확장할 수 있다고 믿어요. 물론 전승자로서 정교한 ‘기능’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잖아요. 새로운 조형성과 실험정신도 함께 가야 진정한 계승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해요.”

    “보자기로 만들어진 예술 소품, 생활 속에서 만나다”
    사진설명

    김경희 작가는 최근 자신의 조각보 기법을 적용한 ‘생활 소품’ 개발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미 전통 보자기로 만든 실크 스카프, 파우치, 래핑(선물 포장)용 미니 보자기 등이 소량 시범 제작되어 일부 지인과 작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소개된 바 있다.

    김 작가는 이처럼 예술과 산업의 경계를 자유롭게 오가며, 전통 보자기를 현대 패션·리빙 아이템으로 확장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손바느질로 만들어진 ‘단 하나뿐인’ 오리지널 작품은 물론, 보다 많은 대중이 접근할 수 있는 디자인 굿즈 형태의 컬래버레이션 제품도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박지훈 기자 · 사진 류준희 기자]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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