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연태 죽장연 대표 “상사리 주민과 만든 장으로 세계인 입맛 잡았습니다”

    입력 : 2024.12.18 18:06:01

  • 널따란 길에서 빠져나온 지 10여 분.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도로가 간간이 이어진 후 죽장연 정문이 눈에 들어왔다. 그야말로 첩첩산중. 도심에선 듣도 보도 못 했던 산새들이 아기자기한 목소리로 객을 반긴다. 가을 끝자락 산세는 온통 울긋불긋하고 그 아래 길게 펼쳐진 장독대는 연도별로 나뉘어 가지런히 줄지어 섰다. 그리고 바로 그 수백 개의 장독 사이로 족히 3~40m는 될 법한 긴 테이블이 놓였다. 지난 11월 9일 한국 최초로 열린 미식행사 ‘아웃스탠딩 인 더 필드(Outstanding in the Field)’의 현장이다. 환경미술가 짐 데니반이 시작한 이 야외식사 프로젝트는 자연이나 농장과 가까운 야외에서 만찬을 즐긴다. 지역 농부와 전통을 이어가는 음식 장인에게 존경을 표하는 의식인 이날 행사에는 창립자 짐 데니반을 비롯해 이강덕 포항시장, 함영준 오뚜기 회장, 허영만 화백, 배우 류수영, 요리연구가 노영희·홍신애 등 외국인 70명을 포함한 150명이 참가해 식탁에 앉았다. 그런데 잠깐, 이 세계적인 미식 행사가 왜 태백산맥 골짜기에 자리한 죽장연에서 열린 걸까. 행사가 열리기 하루 전날 죽장연 직원 휴게실에서 마주한 정연태 대표는 “후니 킴 셰프의 뉴욕 한식당에서 한국의 장과 발효음식을 접한 아웃스탠딩 인 더 필드 보드 멤버들이 죽장원을 선택했다”며 “저 또한 신기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구수한 장 냄새에 중저음의 차분한 목소리까지, 편안한 시간이었다.

    정연태 죽장연 대표
    정연태 죽장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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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에서 월급쟁이로 살다 선친의 권유로 2010년 포항시 북구 죽장면 상사리에 죽장연을 열고 된장, 고추장, 간장 등 전통장을 만들고 있다. 죽장연의 장은 현재 미국, 일본, 홍콩, 싱가포르, 프랑스에 수출되고 있다.

    외식브랜드 마케팅 담당자가 만든 전통장

    Q 장독대 규모가 꽤 커서 놀랐습니다.

    A 2010년부터 했으니 14년이 됐네요. 여기 상사리(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죽장면 상사리) 주민들과 함께 장을 담그고 있는데, 처음 시작은 1998년이었어요. 돌아가신 아버님이 당시 영일기업이라는 운송사업을 하셨는데, 상사리 마을과 일사일촌 운동으로 자매결연을 해 일손 돕기나 농기계 수리를 해주면서 관계가 돈독했거든요. 그러다 마을 주민들이 감사의 의미로 장을 선물한 게 인연이 돼 1999년 부터 매년 20독씩 장을 담가 서로 나눠 먹었습니다.

    Q 그럼 어떻게 죽장연을 창업하신 겁니까.

    A 제가 15년 전에 서울서 직장생활을 하다 포항에 왔는데 아버님이 한번 가서 사업화할 수 있을지 보고 오라시더군요. 별 생각없이 내려왔는데 이 마을이 너무 좋았어요.(웃음) 그때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모를 만큼 느낌이 좋아서 그냥 “하겠습니다”, 해버렸어요. 그렇게 시작해서 부지 확보하고 2012년쯤 장독대가 완성됐습니다.

    Q 포항이 고향인 겁니까.

    A 아버님도 그렇고 저도 경남 진주가 고향이에요. 아버님이 포항에 터를 잡으시고 사업을 하셨거든요. 사실 저는 내려올 생각이 없었어요. 당시 오리온에서 롸이즈온 이라는 외식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마케팅 본부장으로 근무하고 있었어요. 그때 베니건스, 미스터차우가 있었고, 마켓오 브랜드를 만들어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Q 외식사업 마케팅 본부장의 경험이 도움이 됐을 것 같은데요.

    A 맞아요. 건강한 음식이 중요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어요. 그러려면 좋은 식자재를 써야 한다는 것도. 두 번째는 뭘 하더라도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마을주민들과 함께 장을 만들고 있고, 아버님과의 인연도 있으니…. 지금도 마을 주민들이 심은 콩을 농협 수매가보다 500원 정도 더 주고 삽니다. 그래야 안심하고 콩을 심을 수 있고 질도 좋아지거든요. 또 직접 재배한 콩으로 장을 만드니 정성이 더 많이 들어가죠.

    Q 죽장연의 직원은 마을주민들이군요.

    A 생산 반장님이 한 분 계시고 나머지는 여사님들이세요. 아침에 5명 일손이 필요하다 연락하면 올라오십니다. 대부분 60대 초중반이세요.

    Q 장단점이 있을 것 같은데요. 질 좋은 제품을 생산할 순 있지만 다량 생산은….

    A 전통장은 공장에서 찍어내듯 할 순 없습니다. 대신 죽장연 브랜드를 키워야겠다, 누구보다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가마솥에 참나무 장작을 쓰고 옛날 방식으로 짚을 꼬아 각시를 만들어 메주를 매답니다. 주민분들이 함께 해서 가능한 일이죠. 요즘 새끼 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물론 비용이 많이 들어요. 다 손으로 해야 하는 일이잖아요. 아, 대기업과 협업한 제품은 대량 생산이 가능하더군요. 그래서 탄생한 게 오뚜기와 협업한 ‘빠개장면’과 ‘빠개장 된장국’입니다.

    사진설명

    Q 그건 어떻게 진행된 겁니까.

    A 3년 전이었는데, 마침 고추장을 만들고 있을 때 함영준 오뚜기 회장님이 오셨어요. 마을 주민들과 함께 일하는 걸 보시곤 먹을 걸 좀 가져다 드리겠다고 하시더니 그 뒤에 오뚜기밥에 컵밥에 기타 등등 오뚜기 제품을 가득 실은 트럭이 왔습니다. 잔치 같았어요.(웃음) 회장님이 관심을 갖고 함께 제품을 만들어보자 해서 시작됐습니다. 빠개장면엔 저희 제품 7%가 빠개장 된장국에는 5%가 들어가죠. 로열티도 받고 있습니다.

    Q 현재 실적이 궁금해지는데요.

    A 많진 않습니다. 매달 약 1억원 정도 판매하는데, 백화점과 온라인이 중심 판매망이에요. 미국과 일본, 홍콩, 싱가포르, 프랑스 등지에도 수출하고 있습니다.

    Q 해외에서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A 해외 파트너가 모두 현지인인데 반응이 좋습니다. 많은 양이 수출되는 건 아니지만 굉장한 스텝이에요. 재료가 뭔지 꼼꼼히 따져보고 수입하죠.

    죽장연 브랜드로 마을 주민과 상생

    Q 죽장연 전통장은 특징이 분명할 것 같은데요.

    A 와인하고 똑같아요.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아요. 특히 전통장은 장독대가 외부에 있기 때문에 주변 환경이 탁월해야 합니다. 이곳이 태백산맥이고 해발 450m 지역인데 낮과 밤의 기온 차가 크고 사계절이 뚜렷하죠. 여름에 숨도 못 쉬게 덥고 겨울에 매섭게 추워요. 또 동서로 길게 늘어져 있기 때문에 하루종일 해도 잘 받아요. 주변에 축사도 없어서 오염이 없습니다. 죽장면 상사리는 사과와 콩 농사를 주로 짓는데 사과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사과만 봐도 이곳의 좋은 공기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Q 장에 와인처럼 몇 년산인걸 기입했던데요.

    A 된장이나 간장이 몇 년산인지 빈티지화했어요. 제품 패키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번 행사에 초청된 후니 킴 셰프도 2015년산 20㎏, 2018년산 20㎏을 찾더군요. 빈티지별 요리를 구현하기 때문에 죽장연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Q 이번 행사는 어떻게 진행된 겁니까.

    A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는 후니 킴 셰프와 인연이 오래됐는데, 그가 운영하는 단지(Danji)와 메주(Meju)에서 저희 장을 씁니다. 죽장연을 잘 알고 있는 후니 킴 셰프의 추천이 있었어요. 저로서는 아시아에서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리는 행사라 그냥 기쁜 일이어서.(웃음)

    Q 외연 확장이 기대되는데요. 목표가 있을 것 같습니다.

    A 죽장연을 운영하면서 2가지 목표가 있었어요. 하나는 브랜드를 키워서 한국의 장 문화를 알리는 데 매개체가 됐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죠. 그러다 보니 예전에 CNN에서 취재도 왔고 그게 알려져 이번 행사까지 이어졌습니다. 또 하나는 죽장연 브랜드로 이 지역 특산물이 공생했으면 좋겠어요. 잘 만들었는데 판로를 찾지 못하는 제품이 많거든요. 상사리 사과를 죽장연 브랜드로 판매하기도 했습니다. 주변에 이번 행사에 협찬하기로 한 전통 소주 증류소도 있어요. 조만간 사과를 이용한 소주를 만들어 죽장연 이름으로 판매에 나설 계획입니다. 천일염도 있으니 좀 기다려주세요.(웃음)

    [안재형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71호 (2024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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