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식 특파원의 일본열도 통신] 日 원전 60년 시대, 40년 넘은 노후 원전도 재가동
입력 : 2021.07.27 17:10:55
-
일본에서 ‘원전 60년 가동 시대’가 열렸다. 운전이 시작된 지 40년이 넘은 ‘노후원전’이 재가동되는 첫 사례가 나온 것이다. 일본 정부는 탈탄소 전략의 실현을 위해 원전을 주요 수단 중 하나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전력원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해 다른 원전의 재가동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장기적으로는 기존 원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성이 높다고 평가받는 ‘소형모듈원자로(SMR)’ 등을 활용하기 위해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도 보이고 있다.
일본 간사이전력은 최근 후쿠이현 미하마 원전 3호기 재가동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미하마 3호기는 1976년 운전을 시작했으며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멈췄다. 일본은 2013년 개정한 규정에 따라 원전의 수명을 원칙적으로 40년으로 하고, 원자력규제위원회의 승인 등을 얻어 최장 20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노후원전 연장 규정이 만들어지고 재가동되는 첫 사례가 미하마 3호기이다. 이 원전은 2016년 안전기준 심사를 통과해 2036년까지 20년간 수명이 연장됐다. 이후 재가동을 위해 해당 지방자치단체 등의 동의 절차를 밟아왔는데, 지난 4월 후쿠이현의 승인을 얻어내 사실상 가동을 위한 마지막 장애물을 넘고 운전을 준비해 왔다. 정격출력은 82.6만㎾이다.
일본에서 최초 운전 개시 후 40년이 넘은 노후원전 가운데 처음으로 재가동에 들어간 간사이(關西)전력 미하마(美浜) 원전 3호기를 미하마시에서 바라본 모습.
향후 노후원전 재가동의 첫 사례를 계기로 일본 정부가 원전을 재가동하려는 노력도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노후원전 중에는 토카이 2 원전도 재가동이 추진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원전의 재가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2050년 탄소 배출 실질 제로’라는 탈탄소 전략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원전의 활용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46%(2013년 대비) 줄인다는 목표에 맞춰 에너지 기본계획을 개정하고 있다. 종전에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6% 줄이려고 했으나 목표치를 크게 상향함에 따라 전력원 등도 조정하는 것이다.
기본 방향은 화력발전을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늘리는 것이다. 종전에는 2030년 전력원 중 화력발전 비중을 56% 정도로 설정했으나 이를 41%로 줄이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반면 재생에너지는 22~24%에서 36~38%로 늘리는 것이 검토되고 있다. 특히 원전의 비중을 기존과 같이 20~22%로 유지하는 방향으로 논의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2011년 후쿠시마 제1 원전 사고와 가동되는 원전이 미하마 3호기를 포함해 10기에 그치는 상황에도 목표치를 낮추지 않고 유지하는 방안이 검토되는 것이다. 이는 탈탄소를 위한 전력원으로 원전을 활용하겠다는 뜻과 원전의 재가동 숫자를 늘리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일본은 2011년 54기의 원전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2011년 후쿠시마 제1 원전 사고 이후 모두 운전을 멈췄다가 재가동 숫자를 늘려왔다. 전체 54기 중 21기는 폐로가 결정됐고 33기가 남아있으며 이 중 10기가 운전 중이다. 검토되고 있는 2030년 목표를 달성하려면 가동원전 수를 25기 정도로 늘려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가 현실적인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는 게 노후원전을 비롯해 멈춰있는 기존 원전을 다시 돌리는 것이다.
원전 재가동에 있어 일본 정부가 고민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동서의 격차이다. 후쿠시마 제1 원전 사고 이후 멈췄다가 재가동된 원전 10곳은 모두 서일본에 몰려있다. 동일본에서는 재가동된 원전이 하나도 없는데, 이 지역의 원전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곳은 사고가 났던 후쿠시마 제1 원전을 관할하는 도쿄전력이다. 원전 재가동에 대한 움직임과 성과가 지역별로 차이나는 셈인데, 이런 현상은 일본 정부의 에너지수급 전략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뉴스케일 소형모듈원자로(SMR) 플랜트 가상 조감도.
일본 정부는 그린성장전략에서 ‘탈탄소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원자력을 필요로 하는 모든 선택지를 추구하는 게 중요하다. 원전은 안정적으로 탄소중립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기술 혁신연구를 계속해 나간다’는 내용 등을 포함시켰다. 장기적으로도 일본이 원전 활용 방침을 명확히 한 것은 차세대 ‘소형모듈원자로(SMR)’ 등을 비롯한 신기술을 믿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일본은 그린성장전략에서 차세대 소형모듈원자로와 고온가스로(냉각재로 물 대신 헬륨 사용), 핵융합 등 3가지 방식의 차세대 원전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SMR는 기존 원자로에 비해 출력이 10분의 1에서 3분의 1 정도 되는 소형원자로를 말한다. 노심이 작아 사고가 발생했을 때 상대적으로 냉각시키기 쉽고 소형·모듈화돼 있어 공사에 들어가는 비용도 줄일 수 있다. 일본은 차세대 소형모듈원자로에서 앞서가고 있는 미국 등과 연계해 개발·도입을 서두른다는 방침이다. 특히 2030년 실용화를 거쳐 2040년 양산체제를 갖추고 2050년대에 이 기술을 수출하겠다는 게 장기 로드맵이다.
일본 기업들의 SMR 사업 추진 참여도 나타나고 있다. 일본 플랜트 업체 닛키홀딩스가 소형모듈원자로의 미국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닛키는 미국 뉴스케일파워의 SMR 원전 건설 사업 ‘건설관리’ 등 분야에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뉴스케일파워는 자사 SMR 모델에 대해 지난해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설계인증심사를 마쳤고, 우선 미국 아이다호주에 60만~70만㎾급 발전소를 건설할 예정이다.
뉴스케일파워가 개발한 모델은 원자로를 통째로 냉각풀에 넣어 식힐 수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 볼 수 있듯이 기존 원자로의 경우 정전 등으로 냉각수 순환이 멈추면 온도가 올라가고 연로봉이 들어 있는 노심이 녹아내리는 노심용융이 발생할 수 있다. 뉴스케일의 모델은 냉각수 공급이 중단돼도 기존 냉각풀의 물이 모두 증발하는 데 한 달 이상 걸리고, 이 과정에서 노심용융까지 이어지기는 어려운 구조라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전했다. 뉴스케일파워에 4000만달러를 출자한 닛키는 이 사업에서 미국 대형 엔니지어링 회사 플로어(뉴스케일 모회사)와 함께 건설관리 등에 참여할 계획이다. 닛키는 향후 이 분야에서 자체적 건설도 목표로 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IHI도 뉴스케일파워에 출자하고 사업에 참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SMR의 연구개발에는 미국·중국·러시아 등이 나서고 있고 일본도 자국 기업의 해외 실증 프로젝트 참여를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김규식 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1호 (2021년 8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