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중 패권 전쟁으로 번지는 미얀마 군부 쿠데타
입력 : 2021.03.29 11:06:50
-
지난 3월 12일 사상 처음으로 열린 4자(美·日·印·豪) 쿼드 화상 정상회의가 끝난 후 나온 공동 성명서에는 미얀마 쿠데타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미얀마와 그 국민들의 오랜 지지자로서 민주주의의 회복의 시급한 필요성과 민주적 회복력 강화란 우선순위를 강조한다”면서 쿼드 성명서는 미얀마 문제가 최우선 현안이라고 공식 밝혔다.
2월 앞서 있었던 쿼드 외교장관 회의에서도 미얀마 쿠데타는 심도 있게 논의됐다. 쿼드는 미국의 인도 태평양 전략의 핵심으로 대중국 견제를 목적으로 한다. 이에 회의에서는 북핵, 홍콩, 대만, 남중국해 문제 등 중국과 관련된 여러 현안들이 다뤄졌다. 이런 쿼드에서 미얀마 쿠데타가 논의됐다는 것은 이 문제가 역내 현안인 동시에 중국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는 미얀마 쿠데타 사태가 또 다른 미중 패권의 전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쿠데타가 일어난 후 미얀마 사태를 놓고 미중이 직접적으로 충돌하는 모습은 엿보이지 않았다. 쿼드에서 미얀마 문제가 언급된 정도가 다였다.
3월 12일 사상 처음으로 쿼드 정상회의 열린 모습. 코로나19 상황에 화상으로 진행됐다.
미얀마 쿠데타에서 중국이 갑자기 불거진 것은 막후 지원설 때문이다. 지난 1월 쿠데타가 일어나기 보름 전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쿠데타 주동자인 민 아웅 흘라잉 국방부 최고사령관을 만난 사실이 알려진 것이 단초가 됐다. 왕 부장과 흘라잉 최고사령관이 당시 만난 것은 중국과 미얀마의 경제회랑 건설 추진을 논의하기 위해서였지만, 쿠데타가 일어난 후에 양측의 교감설이 퍼지기 시작했다. 중국 측의 쿠데타에 대한 반응도 이런 관측에 힘을 보탰다. 중국은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에 대해 서방과 달리 내정 불간섭을 이유로 내세우며 비난하지 않았는데 마치 두둔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후 중국의 배후설은 단순히 ‘카더라’로만 그치지 않고 군부에 대항하는 시민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키며 미얀마 내 중국 공장들이 공격 받는 상황으로까지 확산됐다.
미얀마 주재 중국 대사관에 따르면 경제 수도 양곤에 있는 중국 섬유 공장 32곳이 쇠 파이프와 손도끼로 무장한 정체불명의 이들에게 불타버렸다. 대사관에 따르면 피해규모는 4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측은 쿠데타 배후설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하지만, 의혹의 시선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미국은 노골적으로 의심을 보내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였던 대니얼 러셀은 “중국은 이번 기회를 통해 미얀마 군부 지원을 통한 동남아 영향력 확대를 위한 호기로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사실 이 같은 주장은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중국과 군부의 끈끈한 관계는 익히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사실 미얀마 내 가장 입김이 센 외부 국가는 중국이다. 2015년 문민정부가 탄생하기 전 오랜 군부독재를 거친 미얀마는 국제사회에서 외면 받는 존재였다. 이런 미얀마를 감싸 안고 투자 등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은 국가가 바로 중국이다. 여전히 미얀마의 최대 투자국 중 하나로, 지난해 기준 중국은 싱가포르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중국이 이처럼 꾸준히 미얀마를 중시해 온 것은 지정학적 가치 때문이다.
시위대가 3월 12일 양곤에서 열린 군부 쿠데타 반대 시위에서 미얀마 민간인 지도자 아웅산 수치 여사의 모습이 담긴 세 개의 손가락 경례와 플래카드를 들고 핸드폰 불을 밝히고 있다.
이에 미국 정부도 미얀마를 우군으로 돌리는 작업을 소리 없이 진행해 왔지만 돌연 불거진 군부 쿠데타가 걸림돌이 돼버렸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는 바이든 정부가 쿠데타에 항거하는 시민들을 무차별 총살하는 군부와 관계 개선에 나선다는 것은 명분도 없는 이율배반적 행동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난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쿠데타 초기 미 행정부가 군부에 대한 직접적인 제재를 가하면서도 쿠데타란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던 데서 엿볼 수 있다. 바이든 정부가 공식적으로 미얀마 군부의 행동을 쿠데타로 규정하면 해외원조법에 따라 원조 등 미얀마에 대한 일체의 지원을 할 수 없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그나마 있던 미얀마와의 끈도 사라지게 된다. 물론 쿠데타 직후 얼마 지나지 않아 국무부를 통해 군부의 반란을 쿠데타로 공식화하긴 했지만, 이를 머뭇거렸다는 점에서 미국의 대 미얀마 전략이 쉽지 않은 국면에 접어든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미국이 미얀마를 둘러싼 중국과의 패권 전쟁에서 마냥 불리하다고 보기만은 힘들다는 분석도 있다. 군부와 중국의 밀착설은 기정사실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군부는 꾸준히 중국의 그늘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해왔기 때문이다. 미국도 이를 포착하고 물밑에서 수년간 꾸준히 이를 지원해 왔다.
이와 관련해 미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쿠데타 이전 군부가 미얀마의 민주화 과정을 용인한 배경에는 중국의 영향력 축소를 꾀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면서 “군부의 최우선 가치는 국가이고, 여기에는 미중이 따로 없다”고 분석했다.
미얀마 전문가인 장준영 한국외대 교수도 “미얀마 군부가 친중국 성향을 보이곤 있지만 역사적으로 봤을 때 자국 내부 문제에 외부를 끌어들인 선례는 없었다”면서 “이런 점에서 미얀마 군부가 일방적으로 중국과 손을 맞잡을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고 밝혔다.
미국이 쿠데타 초기와 달리 국제사회나 동맹 연합체인 쿼드를 통해 미얀마 문제를 다루려 하는 것도 이 같은 분위기를 파악해 군부에 대한 직접적 압박을 피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교수는 “결국 미, 중이 참가하는 협상테이블이 마련될 것”이라면서 “물밑 접촉이 시작됐을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현재 미국은 쿼드에 한국, 뉴질랜드, 베트남을 포함하는 쿼드플러스로 확장시키려 하는데, 우리를 빼고는 중국과 관계가 편치 않은 국가들이다. 미얀마 사태가 쿼드의 확장에도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다.
[문수인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7호 (2021년 4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