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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범 특파원의 월스트리트 인사이트] 美 증시 성공적 상장 ‘쿠팡’ 초기 물량 부담에도 선전 평가, IPO조달 자금 5조원 공격적 물류투자 확대에 큰 힘
입력 : 2021.03.29 10:4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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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이후 뉴욕 증시는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달아올랐다. 지난해 뉴욕 증시에 상장된 기업은 494개다.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푼 막대한 유동성 덕분에 이들 상장 기업들이 조달한 자본은 1740억달러로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나스닥 상장사를 제외해도 하루에 1개꼴로 새로운 기업이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된다. 그렇다보니 상장 자체가 뉴스가 안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런데 쿠팡은 달랐다. 2014년 알리바바 이후 최대 외국기업 상장이라는 점 등이 부각되며 상장 전부터 전 세계 투자자들의 조명을 받았다. 경제전문지인 배런스는 “한국은 지역은 좁은데 인구가 밀집되어 있어 쿠팡이 아마존보다 더 좋은 지리적 조건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 CNBC는 “쿠팡은 당일 또는 익일배송 보장 서비스를 통해 명성을 얻고 있다”며 “코로나19로 수백만 명의 소비자가 집에 머물면서 전자상거래 붐이 일자 쿠팡이 시장을 강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쿠팡은 뉴욕 증시에서 나스닥 시장이 아닌 NYSE를 택했다는 점이다. 김범석 쿠팡 의장은 지난 11일(현지시간) 쿠팡의 뉴욕 증시 상장을 화려하게 마친 후 뉴욕특파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NYSE를 선택한 배경에 대해 “나스닥보다는 NYSE가 전통이 깊고, 엄청난 글로벌 회사들의 커뮤니티라고 본다”며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한국 유니콘 기업도 그럴 자격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욕심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도전정신은 매우 높이 살 만하다.
쿠팡이 국내가 아닌 뉴욕을 상장 장소로 택했을 때 국내에서 많은 논란이 있었다. 국부유출 논란이 대표적이다. 외국인 투자자들만 배를 불린다는 이유에서다. 외환위기의 트라우마 때문에 당연히 있을 수 있는 논란이다. 하지만 이제 투자의 국경은 사라졌다.
오히려 더 큰 시장에서 더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는 것이 국부를 늘릴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국내 주주들의 자산이 늘어날 수 있다. 당장 서학개미들은 쿠팡 상장 이후 이틀간 6875만달러를 순매수했다. 이런 서학개미의 대부분은 한 번이라도 쿠팡을 써본 경험이 있는 투자자일 것이다. 이후 초기 록업(매도제한)이 풀린 물량이 나오며 주가가 하락했지만, 쿠팡의 기업가치 상승은 국내 연관사업 가치를 동반 상승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런 긍정적 선순환이 오히려 국부를 더 키우는 동력이 될 수 있다. 마켓컬리가 쿠팡에 이어 뉴욕 증시 상장을 검토하고 나선 것은 쿠팡이 자극제가 됐음을 부인할 수 없다. 헤지펀드 업계 거물로 꼽히는 빌 애크먼 퍼싱스퀘어 창업자가 지난 15일 1조5000억원 상당의 쿠팡 주식을 기부하겠다고 밝힌 것은 전 세계 투자자들의 큰 관심을 불러 모았다. 그는 “나는 쿠팡 1호 투자자(day one investor) 중 한 명이었다”며 “쿠팡이 믿기 어려운 성공을 거뒀고 이제 인류에게 혜택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퍼싱스퀘어재단(PSF)에 4억달러가 들어간다.
이 기부금은 “헬스케어 의학 교육 경제발전 사회정의 등 다양한 분야에 쓰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한국계 자본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한국 기업을 통해 숙성된 자본이라는 측면에서 간접적인 국부 창출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김범석 의장은 NYSE 상장의 의의에 대해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말했다. 쿠팡의 미래는 1차적으로 이번 상장으로 유입되는 35억달러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활용하느냐에 달려있다.
전국 배송망 확충을 위한 물류센터 투자가 핵심이 될 전망이다.
김 의장은 “이미 5만 명을 직고용했고 전국 물류센터, 건설 등에서 간접적 고용도 늘렸다”며 “앞으로 5년간 5만 명을 추가로 고용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은 “글로벌 상거래 시장에서 아마존을 최초로 막아냈던 유니콘이 알리바바였다”며 “알리바바도 뉴욕 증시에서 조달한 자본으로 많은 시장에서 점유율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흑자 전환 시점’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당분간은 적자를 더 내고 싶다(투자를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을 밝혔다. 그는 “적자라기보다 투자라고 생각해달라”며 “앞으로 공격적, 지속적, 계획적으로 투자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점은 쿠팡이 한국이라는 좁은 시장을 어떻게 뛰어넘고 이를 극복해 나갈 것인가였다. 기자간담회에서 다행히 질문할 기회가 생겼다. 이에 대해 김 의장은 “한국 시장 규모가 절대 작지 않다”며 “한국의 전자상거래 시장은 530조원이 넘는 시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시장은 상당한 규모와 함께 성장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쿠팡,뉴욕증권거래소 오프닝 벨을 울리다
김 의장은 당장은 국내 시장에 주력하고 싶은 생각이 강해보였다. 하지만 큰 시장은 나라 밖에 있다. 김 의장이 해외진출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쿠팡이 보여준 ‘K커머스’ 모델을 수출해보고 싶은 욕심은 있지만 당분간은 국내 시장과 고객을 위해 준비한 것, 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 거기에 전념하겠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대화 말미에 이런 말을 남겼다. 그는 “증권 시장은 단기적으로는 인기투표이고, 장기적으로는 무게를 재는 기계라는 말이 있다”며 “비상장 기업일 때처럼 여전히 장기적 관점에서 고객에 집착하고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익명을 요구한 한 제조업체 관계자는 “쿠팡이 단기간에 규모가 커지면서 과거 대형 유통공룡들이 입점업체를 다루던 구습이 적지 않게 있다”고 꼬집었다.
쿠팡은 글로벌 투자자들이 주시하는 가운데 인기투표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제는 쿠팡의 무게 재기가 시작됐다. 쿠팡의 실시간 현황을 전 세계 투자자들이 유리알처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수많은 기업이 미래 성장성 등을 평가받아 화려하게 상장되지만 사라질 때는 조명이 없다. 미래산업, 두루넷, 하나로텔레콤, 웹젠 등 적지 않은 한국 기업이 나스닥에 상장됐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이들 기업들은 화려하게 나스닥에 상장됐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상장 폐지됐다. 이런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쿠팡만의 무기가 보다 분명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쿠팡은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빌 애크먼 퍼싱스퀘어 CEO 등의 도움을 받아 도약대를 마련했고 뉴욕 증시 상장을 통해 이들에게 1차적으로 빚을 갚았다. 쿠팡은 이번 상장 시 3000만 주의 구주를 매출한 것과 더불어 1억 주의 신주를 발행했다. 상장 전보다 훨씬 더 다양한 투자자가 생긴 셈이다. 이제 쿠팡의 미래는 이런 다층적인 투자자들의 평가에 달렸다.
[박용범 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7호 (2021년 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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