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부에 다시 짓밟힌 미얀마 민주화 1년 후 권력이양 약속했지만 태국 전철 밟을 듯
입력 : 2021.02.26 17:05:39
-
아세안서 또다시 군부 쿠데타가 발생했다. 이번에는 미얀마다.
지난해 현 집권 여당의 압승으로 끝난 총선에서 선거 부정 의혹이 있었고 이를 정부가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방치한다는 이유로 지난 2월 1일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 국가의 실질적 지도자인 아웅산 수치 여사는 즉시 구금됐는데, 쿠데타 이후 이렇다 할 목소리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군부는 여사를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하지만 시민들은 쿠데타 직후 곧바로 들고 일어났다. 대규모 시위를 벌이며 군부와의 물리적 충돌도 불사하고 있다. ‘시민불복종’으로 불리는 미얀마 국민들의 시위는 현재 양곤 등 국가 주요 지역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으며, 예상보다 빠르고 강경한 시위대를 향해 군부는 실탄 사격까지 해대며 강하게 진압하고 있다. 20대 여성이 사망하는 등 사상자도 속출하고 있다. 시위대도 2015년 긴 군부독재를 끝내고 어렵사리 이뤄낸 민주화(문민정부 1기)를 이대로 포기하고 물러날 태세가 아니어서 이번 시위가 어디로까지 번질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1988년 민주화 시위 이후 33년 만에 다시 민주주의를 위해 봉기한 시민들과 2015년 선거로 빼앗긴 권력을 쿠데타로 다시 찾아오려는 ‘2021년 양측의 대결’은 미얀마 민주화 과정에서 중요한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다시 군부 통치 국가로 돌아갈지 아니면 이번 기회에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로 거듭날지 말이다. 양측이 사생결단의 대결을 벌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군부 쿠데타에 항의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온 미얀마 시민들
미얀마 전문가인 장준영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아웅산 수치 여사와 군부의 관계는 1기 문민정부에서도 그렇게 원활하지 않았다”면서 “오히려 수치 여사가 군부를 의도적으로 무시해왔다고 하는 편이 맞다”고 밝혔다. 국제 사회로부터 비난받는 로힝야족 사태와 관련해 수치 여사가 목소리를 내지 못한 것은 군부의 편을 든 것이 아니라 국내 민심잡기용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 실제 미얀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버마족은 로힝야 문제에 상당히 반감이 심하고, 국정을 운영해야 하는 수치 여사로서는 이 부분을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다. 그러면서 장 교수는 “집권여당인 NLD는 지난해 총선에서 압승한 후 2기 문민정부에서 군부의 힘 빼기를 본격적으로 시도하려 했던 것 같은데 군부가 먼저 반격을 한 것이 이번 쿠데타의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실제 지난해 총선에서 승리한 후 집권여당은 2015년 문민정부 1기를 출범시킬 당시와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 당시 NLD 측은 선거에서 이긴 후 군 사령관과 회동해 사실상 재가를 받는 모습을 연출했는데, 이번에는 전혀 그러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두 번의 연속된 선거 승리와 선거 직전 아웅산 수치 여사의 지지도가 80% 가까이 됐던 점이 한몫했던 것으로 보인다. 군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국정을 펼쳐나갈 동력이 확보됐다는 인식이 정부와 여당 내에 퍼져 있었다는 것이다.
또 현 군부의 1인자인 민 아웅 흘라잉 총사령관의 퇴임이 올해 2월 예정돼 있었던 것도 정부가 군의 개혁 작업을 본격화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배경이 됐다는 분석도 있다. 군부 1인자가 교체되는 어수선한 때를 노려 미얀마 민주화 과정의 가장 큰 숙제인 군에 손을 대려 한 것이다. 하지만 군부 측은 이 같은 정부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쿠데타란 극단적 방법을 동원해 선수를 쳐버렸다.
미얀마 현지의 한 전문가는 “미얀마 군은 하나의 경제공동체라고 봐도 무방하다”면서 “군 개혁으로 경제 기득권이 흔들리면 쉽게 말해 군이 먹고 사는 길이 끊기기 때문에 군부는 기를 쓰고 이를 놓치지 않으려 한다”고 귀띔했다. 쿠데타 직후 미국이 미얀마 민 아웅 흘라잉 총사령관 등 군부 주요 인사들과 군 관련 기업들에 대한 제재 조치를 발표한 것도 이를 간파한 조치였다. 하지만 미국의 군 기업 제재 조치가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장 교수는 “미얀마 군이 소유하고 있는 기업들은 계좌가 제3국에 있는 경우가 많아 미국의 제재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 측 차량이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에 위치한 국영 라디오·TV 방송국 건물 앞에 서 있는 모습
현재 미얀마 군부는 쿠데타 후 1년간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목표는 선거를 개최해 승리한 정당에게 권력을 이양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1년 후 선거를 다시 치르겠다고 밝힌 셈인데,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분위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이웃나라 태국의 쿠데타 사례 때문이다. 현 프라윳 찬 오차 태국 총리도 2014년 쿠데타를 통해 집권에 성공했는데, 그는 쿠데타 직후 조기 민정 이양을 약속했지만 4년이나 군정체제를 유지했다. 그러다 2019년 선거를 통해 현 총리 자리에 합법적으로 오르는 듯 했지만 선거 부정 의혹은 지금도 끊이지 않는다. 더군다나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 직전 태국의 2014년 쿠데타 사례를 연구했다는 이야기도 있어 그들의 ‘1년 후 선거를 통한 권력 이양’ 약속은 설득력이 별로 없다는 지적이 많다. 이처럼 미얀마와 태국의 양측 군이 ‘쿠데타’라는 공통점으로 엮여 있다면 미얀마와 태국의 시위대도 공통분모가 있다.
미얀마 주요 도시로 나선 시위대 중 상당수가 태국처럼 젊은 층으로 SNS를 통한 네트워크화에 상당히 강하다. 그리고 태국의 시위대가 정부에 대한 항의 표시로 사용하고 있는 세 손가락이 미얀마에서도 등장했다. 미얀마와 태국은 공교롭게도 아세안에서도 인도차이나 반도에 있는 국가들인데, 양국 시민들의 집단적 저항이 내륙 아세안에 민주화 봄을 제대로 꽃피울 수 있을지 주목된다.
[문수인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6호 (2021년 3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