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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범 특파원의 월스트리트 인사이트] 베이조스 3-4년 내 블루오리진 가시적 성과 노린다
입력 : 2021.02.26 16:5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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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제국’을 일군 제프 베이조스.
그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무엇일까.
아마존에서 23년간(1996~2019) 등기임원을 지낸 변호사이자 사업가인 톰 앨버그는 베이조스가 가장 두려워한 것은 준비 없는 CEO 승계였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는 “제프는 그가 갑자기 버스에 치여 유고 상황이 벌어졌을 때 내가 이사회에서 마지못해 승계할 사람을 지목하는 것이 가장 두렵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베이조스가 이런 생각을 갖게 된 트라우마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업 초기인 2003년 3월 헬리콥터 사고로 비명횡사(非命橫死)할 뻔했다. 텍사스주에서 매입할 땅을 보기 위해 헬기를 탔다가 강풍에 휘말린 것이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그는 이 사고에서 자신이 언제든 사고로 죽을 수 있다는 점을 강하게 인식했을 것이다. 그 후 예고 없이 찾아올 유고 사태에 대비해왔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이사회 의장으로 직함만 바뀌었을 뿐 아마존에 미치는 영향력은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그는 지난 2일 임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이번 결정이 은퇴가 아님을 명확히 했다. 베이조스는 “이것은 은퇴가 아니다. 이보다 더 활력 넘치던 때가 없었다”고 말했다.
베이조스가 CEO직을 내려놓은 것은 거대 IT 기업에 대해 바이든 행정부가 점점 더 높은 규제를 가하는 것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도 있다. 의회 출석은 물론 여러 가지 법률적 책임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뉴욕주는 지난 16일(현지시간) 코로나19 상황에서 아마존이 노동자들 보호에 소홀했다는 이유로 법원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뉴욕주 검찰은 아마존이 물류센터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들을 무시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레티샤 제임스 뉴욕 검찰총장은 “아마존과 아마존 CEO가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수십억달러를 벌었지만, 노동자들은 안전하지 않은 상황을 견뎌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갈등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아마존 임직원 수는 130만 명에 이른다. 하나의 국가처럼 성장했다. 고속성장에 따른 성장통이 곳곳에서 나타날 것이다.
베이조스의 변신은 아마존이 과거와 같은 성장세를 유지하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을 자인했다는 해석도 있다.
2020년 아마존의 연간 매출은 2019년 대비 38% 늘어난 3861억달러를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2019년 대비 58% 늘어난 229억달러를 기록했다. 순이익은 213억달러를 기록, 2019년 대비 84% 늘어났다. ‘코로나 특수’를 톡톡히 누린 탓이다. 이는 다시 말해 지난해와 같은 성장세는 다시 보기 쉽지 않다는 뜻이다. 내부 갈등은 성장이 정체됐을 때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제까지 아마존은 두 자릿수대 성장을 거듭해와 이런 문제가 비교적 큰 잡음 없이 넘어갔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런 요순시대가 계속될 것이라고 장담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변신을 시도한 베이조스는 앞으로 어떤 그림을 그려나갈까?
베이조스는 이제까지 매주 수요일은 블루오리진에게 할애했다고 한다. 이제는 주 5일을 여기 쏟아부어도 된다. 어렸을 때부터 간직해온 꿈인 우주사업을 본격화할 수 있다는 마음에 가장 설레는 순간에 들어선 것이다. 10년, 20년 뒤에 어찌 보면 아마존은 우주사업을 하기 위해 거쳐 갔던 디딤돌처럼 여겨질 수 있다.
<아마존, 세상에 모든 것을 팝니다>라는 책을 집필한 브래드 스톤은 베이조스가 이런 말을 했다고 소개했다. “내가 우주에 관심을 두는 유일한 이유는 5살 때부터 내게 영감을 불어넣어준 곳이기 때문이다.”
베이조스는 27년 전 아마존을 창업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미친 짓’이었다고 한다. 세 번째 직장인 헤지펀드 디이 쇼(DE Shaw)에서 신사업 아이템으로 인터넷 도서 판매를 제안하자 모두들 고개를 저었다. 대부분 사람들이 인터넷을 써본 적이 없고, 개인용 PC도 거의 갖고 있지 않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굴하지 않았고, 프린스턴대 동문을 포함 15명의 투자자에게서 200만달러를 투자받아 아예 회사를 새로 차린다. 아마존은 이렇게 탄생했다. 우주사업에 대해서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1994년, 인터넷의 미래에 대해 사람들이 아는 것이 없었다. 2021년, 우주의 미래에 대해 사람들이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척박한 땅에서 시작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베이조스는 1982년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인류가 우주를 식민 지배하는 날을 꿈꾸고 있다. 사람들이 모두 지구를 떠나, 지구를 거대한 국립공원으로 바꿀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졸업생 대표 연설에서 한 말이다. 그가 우주사업에 팔 걷고 나선 것은 테슬라 창업자인 일론 머스크와 묘한 경쟁 관계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두 사람은 세계 1위 부자 자리를 놓고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마치 과거 냉전시대에 미국과 소련의 우주 개발 전쟁인 ‘스타워즈’를 보는 듯하다.
우주사업에서 두 사람이 추구하는 지향점은 다르다. 머스크가 화성이주를 목표로 삼고 있다면 베이조스는 달 탐사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가 블루오리진보다 한 발 앞서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지난해 스페이스X는 민간 유인우주선 발사에 성공했다. 블루오리진은 스페이스X보다 2년 빠른 2000년에 사업을 시작했지만 유인우주선 발사 실적이 없다.
아마존 CEO직을 던진 마당에 베이조스는 점차 우주 식민 지배 계획을 점점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 블루오리진은 6명이 탑승할 수 있는 캡슐을 고도 100㎞까지 쏘아 올려 이곳을 왕복 여행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블루오리진은 이르면 4월 초에 첫 번째 유인 우주비행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CNBC가 보도했다. 회사 측은 부인했지만 비밀리에 준비를 마무리하고 있다.
블루오리진은 2024년까지 달에 가겠다는 ‘블루문’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이를 위해 베이조스는 1년에 10억달러 규모의 아마존 주식을 팔아 블루오리진 사업에 쏟아붓고 있다. 스페이스X보다는 늦었지만 가시적인 성과, 현실적인 성과는 블루오리진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다. 베이조스가 제2의 출발에 성공했느냐는 3~4년 내에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박용범 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6호 (2021년 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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