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헌철 특파원의 워싱턴 워치] 트럼프 상왕정치에 공화당 파워게임
입력 : 2021.02.26 16:46:42
-
미국에서 조 바이든 시대가 열렸지만 워싱턴 정가의 뉴스 메이커는 여전히 도널드 트럼프다. 바이든 정부가 지난 1월 20일 출범한 이후 트럼프 정부의 유산을 지우기 위해 50여 건의 행정명령을 발동하며 잰걸음을 했지만 아직 미국인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추구하는 어젠다가 무엇인지 체감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국내적으로는 코로나19 대응, 대외적으로는 중국 견제를 위한 동맹 재건 등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지만 가시적 효과를 내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2월 13일 상원 탄핵심판 표결에서 결국 무죄를 얻어냈다. 한동안 몸을 낮추고 시야에서 사라졌던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정치행보를 재개하면서 안으로는 ‘배신자 척결’, 밖으로는 ‘보수정당 재건’을 내세웠다.
오늘은 바이든 정권 초반부 미국 정치를 관전할 때 눈여겨봐야 할 두 사람을 살펴보려 한다. 첫째 인물은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78)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탄핵 부결 직후 성명을 내고 “매코널은 음흉한 정치꾼”이라며 “그를 리더로 삼아선 절대 다음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고 맹비난했다. 트럼프 정부 4년간 매코널 대표는 공화당의 원내 1인자로서 충실한 국정파트너였다. 그러나 대선 패배 이후 매코널 대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선거불복과 거리를 뒀고, 선거인단 투표가 끝난 직후 패배를 인정했다. 이때부터 트럼프와 매코널의 사이는 ‘견원지간’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맹목적 충성을 강요하는 트럼프에 맞서 정치적 소신을 지킨 셈이지만 여전히 매코널의 속내를 알기 어렵다는 평가가 많다.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과 함께 권력지형이 정확히 반으로 갈린 미국 상원에서 민주당의 대표적 초당파 의원인 조 맨친(웨스트버지니아) 의원의 입지가 급격히 확대되고 있다.
만약 매코널 대표가 트럼프 전 대통령과 완전히 결별하고 민주당에 협조한다면 바이든 정부로선 ‘천군만마’를 얻는 셈이다. 반대로 공화당 내부에서 권력투쟁이 심화되고, 이 과정에서 오히려 선명성을 추구한다면 공화당이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극단적 파당정치가 재현될 우려가 있다.
1942년생으로 바이든 대통령과 동갑내기인 매코널 대표는 만만한 인물이 아니다. 앨라배마주에서 태어나 켄터키주에서 자란 ‘촌놈’이고 아이비리그 문턱에도 가보지 않았다. 켄터키대 로스쿨을 나와 고향에서 판사를 지내다 1985년부터 6년 임기의 상원의원에 7번 내리 당선된 ‘향판(鄕判)’ 출신이다. 공화당이 상원 소수당이던 2006년 원내대표에 올랐고 2014년에는 다수당 원내대표가 됐다. 공화당에서 원내 1인자 자리를 무려 15년째 장기집권하고 있는 정치 9단이다. 버락 오바마 정권 8년, 트럼프 정권 4년, 그리고 바이든 정권이 시작된 뒤에도 워싱턴 정가를 주무르고 있는 것이다. 1993년 재혼한 부인 일레인 차오는 대만 이민자 출신으로 조지 W 부시 정권에서 노동부 장관, 트럼프 정부에서 교통부 장관을 지냈다.
공화당에 매코널이 있다면 민주당에는 조 맨친(73)이 파워맨으로 등장했다. 맨친은 미국에서 시골 지역으로 손꼽히는 웨스트버지니아 주지사를 거쳐 2010년부터 상원의원을 지내고 있는 정치인이다. 상원을 양당이 50명씩 차지한 팽팽한 권력분점 속에 민주당으로선 내부의 표 단속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1947년 웨스트버지니아주의 작은 탄광촌 파밍턴에서 태어난 그는 부계는 이탈리아, 모계는 체코슬로바키아 이민자다. 조부는 식료품 가게, 부친은 가구점을 했는데 두 사람 모두 파밍턴의 시장을 지냈다. 맨친 의원은 고등학교 졸업 후 미식축구 특기생으로 웨스트버지니아대학에 진학했으나 부상을 당해 미식축구를 그만두고 35세에 주의원으로 정치를 시작했다.
바이든 정부가 출범한 뒤 벌써 맨친 의원이 뉴스의 중심에 선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직후 캐나다와 미국을 잇는 키스톤XL 송유관 사업의 중단을 지시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허가했던 바로 그 사업인데 캐나다 앨버타주에서 미국 텍사스주의 정유시설까지 2735㎞를 파이프라인으로 연결해 하루 80만 배럴의 원유를 수송하는 대규모 사업이다. 에너지위원장이 된 맨친 의원은 바이든 대통령에게 키스톤 사업을 중단시킨 행정명령을 재고하라고 요구했다. 환경오염을 막고 안전을 강화할 대안을 찾되 사업 자체는 계속돼야 한다는 것이다.
맨친 의원은 1인당 1400달러의 현금을 지급하자는 바이든표 경기부양안에도 토를 달았다. 연간 5만달러(부부합산 10만달러) 이상을 버는 사람들에겐 현금을 줘선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수급 대상을 줄이자는 얘기인데 공화당 주장과 흡사하다. 연방 최저임금을 시간당 15달러로 인상하자는 민주당 당론에도 “지역 간 격차를 반영해야 한다”며 반대하고 있다. CNN은 최근 보도에서 “맨친 의원은 지금 워싱턴에서 가장 강력한 인물”이라며 “그의 임기는 2024년까지”라고 상기시켰다. 민주당의 브라이언 샤츠 의원은 의사당에서 맨친 의원에게 인사하면서 “전하(your highness)”라고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당분간 미국 정치 뉴스의 중심에는 매코널과 맨친 이름이 자주 오르내릴 것으로 보인다.
[신헌철 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6호 (2021년 3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