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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수호를 위한 빅데이터 기업 팔란티어, 빅데이터로 슈퍼파워 美 수호 나선 보수주의 실리콘밸리 이단 기업
입력 : 2021.01.04 16: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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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미국과 연합국들의 군사 시스템을 위한 사실상의 운영체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또 미국이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는 의료보건 시스템의 인프라스트럭처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 이뤄지는 글로벌 팬데믹에 대한 협력을 안전하게 지원하고 있습니다.” (팔란티어, 2020년 11월 13일 제출한 실적발표 보고서에서)
뉴욕 주식시장에 상장되던 날 걸린 팔란티어의 현수막
실리콘밸리에서도 팔란티어에 대한 논쟁은 상장 이후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뜨겁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는 인간이 만들어 낸 강력한 기술인데, 이를 갖고 있는 것은 주로 인간과 사회를 위해 올바르게 기술을 사용해야 한다는 철학을 (적어도 대외적으로는) 선포하고 있는 실리콘밸리 기업들이었다. 그런데 팔란티어는 대놓고 그런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소수의 힘과 돈을 가진 대형 국가기관과 기업들을 위해 사용하겠다고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미국 정치에서 민주당과 공화당이 가진 생각의 차이를 보는 것과 흡사하다. 조 바이든·버니 샌더스·엘리자베스 워런 등과 같은 민주당 출신 유명 정치인들이 가진 철학은 미국 국민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아픔을 헤아리고 그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권력의 사용에 맞춰져 있었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마이크 펜스·테드 크루즈 등과 같은 공화당 정치인들은 미국이라는 절대적 권력의 존재로 인해 유지되는 전 세계 평화와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국가권력의 사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위 문장에서 ‘국가권력’ 대신 ‘빅데이터 기술’을 넣고 주어를 ‘구글’과 ‘팔란티어’로 치환해 보면 모든 문장이 맞아 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흥미롭게도 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은 민주당 성향의 인재들에 의해 움직이고 있고 민주당 핵심지역인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 둥지를 틀고 있다. 반면, 팔란티어의 창업자들은 공화당 성향인 데다, 최근 실리콘밸리를 떠나 콜로라도 덴버로 본사를 옮겼다. 미국에서 정치가 대통령이라는 권력을 가운데 놓고 민주당과 공화당 양당으로 나뉘어 지속적으로 견제와 비판을 이어 가듯이, IT 기업들도 빅데이터라는 권력을 가운데 놓고 구글 애플 등의 진영과 팔란티어라는 대안세력으로 나뉘어 경쟁하는 모양새가 연출되고 있는 셈이다.
2017년 백악관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의 손을 잡은 피터 틸 팔란티어 창업자
예를 들어 2020년 11월 18일 팔란티어는 이 ‘고담’ 솔루션이 미국 육군의 운영체제에 통합되는 형태로 제공된다고 보도자료를 통해 밝혔다. 공급금액은 향후 2년간 9100만달러(약 1000억원). 오래된 시스템을 사용하는 미국 육군이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통해 목표물 추적과 공격지점 확인 등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고담’을 도입했다는 것이 팔란티어 측의 설명이다. 이 ‘고담’ 솔루션의 목적에 대해 뉴욕매거진은 이렇게 묘사했다.
“군인과 스파이, 경찰 등이 수집한 지문, 은행기록, 비밀데이터 등을 모두 모아서 분석한 뒤 사람이 발견할 수 없는 숨겨진 연결고리와 테러리스트의 네트워크를 밝혀내는 소프트웨어다. 짧게 요약하면, 고담은 스파이들을 위한 구글(Google for spies)이라고 볼 수 있다.”
▶美 지적재산권과 국방 기업들 효율화 돕는 솔루션도 둘째, 팔란티어는 국가기관들이 효율적이고 투명한 내부 운영을 할 수 있는 ‘파운드리’라는 흥미로운 제품도 서비스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보건당국인 NIH가 이 제품을 최근 사용하겠다고 밝혔는데, 그 목표가 흥미롭다. 바로 수없이 많은 민간기관들이 독자적으로 갖고 있는 개인들의 의료관련 정보들을 하나로 모으겠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였다.
팔란티어 측은 “NIH는 30개 이상의 병원들이 갖고 있는 100만 명 이상의 코로나19 환자정보를 불과 5개월 만에 파운드리 안에서 통합시켜 냈다”며 “파운드리를 활용한 NIH의 코로나19 환자 데이터베이스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하다”고 밝혔다. FDA(미국 식품의약안전청)나 미국 정부 산하 의료관련 R&D센터인 ‘NCATS’ 등에도 팔란티어의 제품 ‘파운드리’가 납품됐다.
한마디로 미국의 경제적 힘인 기술개발과 관련된 지적재산권을 관리하고 수호하는 인공지능 작업에 팔란티어가 대거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이런 민감한 정보분석 도구들을 발전시킨 팔란티어는 항공 에너지 등과 같은 국방관련 민간기업들에 ‘고담’과 ‘파운드리’ 제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아폴로’라는 제품이다. ‘아폴로’는 기업들이 갖고 있는 데이터를 ‘고담’과 ‘파운드리’ 같은 강력한 데이터 분석 인공지능에 연결시켜주는 일종의 번역기 같은 역할을 한다. 이 ‘아폴로’ 덕분에 기존에 데이터베이스를 갖고 있던 항공회사나 에너지회사 등도 팔란티어의 제품을 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팔란티어의 공시자료에 등장하는 사진. 우리 소프트웨어는 사실상 미국과 동맹국의 군사방어를 위한 운영체제(OS)가 되어가고 있다고 쓰여 있다.
지난 10월 28일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열린 인간중심인공지능센터(HAI) 세미나에서 일어난 광경은 그런 정서를 잘 대변하고 있다. 당시 브래들리 보이드 미국 국방부 산하 합동인공지능센터 대령이 “인공지능을 군사적으로 접목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하자 청중들이 “결국 미국은 또 다른 원자폭탄을 만들고 있는 것 아니냐” “터미네이터 같은 살상용 로봇을 만들어 내겠다는 것인가” 등의 비판적 질문을 쏟아냈던 것이다. 이 때문에 구글 애플 등은 미국이 군사적으로 사용하려는 클라우드·인공지능 시스템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경영진은 하고 싶은 생각이 있을지 몰라도, 내부 직원들도 반대하고 정부 측에서도 이들을 100% 신뢰하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팔란티어는 미국 국가안보 및 보수진영의 시선에서 볼 때는 효자와 같은 기업이다. 창업자인 피터 틸은 독일에서 이민을 와서 실리콘밸리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인물. 특히 본인만의 오리지널한 생각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본래 진보적 성향을 갖고 있던 그는 9·11 테러 이후 생각이 급격히 전환한다. 미국을 위협하는 이들이 매우 많으며, 미국의 발전을 위한 기술개발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팔란티어는 적극적으로 인공지능 기술을 국가 및 방위산업 기업들에게 공급하기 위한 노력을 진행 중이다.
실적은 놀랍다. 이 회사 고객들의 평균 계약기간은 3.6년이다. 매우 장기로 계약을 진행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판매마진이 70%를 넘는다. 2020년 3분기에 판매마진은 81%에 달했다. 실적도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1~3분기 누적 기준으로 팔란티어의 매출은 175% 성장했다. 회사 측은 올해 4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대비 31% 성장하고, 영업이익은 16%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투자를 노린다면 이미 주가가 너무 많이 올라버렸다는 점이 치명적 단점이다.
주가와 상관없이, 팔란티어는 실리콘밸리의 이단아와 같은 기업이라는 점에서 지속적인 관심을 끌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 세계의 평화가 미국이라는 강력한 슈퍼파워 때문에 존재한다면, 그 평화를 유지시켜 줄 수 있는 자유진영의 빅데이터는 팔란티어가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신현규 매일경제 실리콘밸리 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4호 (2021년 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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