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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EAN Trend] 코로나19로 덕 보는 아세안 전자결제 시장
입력 : 2020.06.29 14:5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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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등 금융 인프라 미비로 현금 선호도가 높은 아세안에서 전자결제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타인 간 접촉을 줄이자는 움직임이 결제 시장까지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아세안 각국 정부는 현금 선호 현상으로 인해 금융의 불투명성이 해소되지 않은 고질적 문제를 디지털 시대를 맞아 전자결제 시장 활성화를 통해 해결하고자 했지만 그동안 진행이 더딘 측면이 강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전대미문의 전염병이 정부 정책에 탄력을 붙이고 있는 것이다.
먼저 인도네시아의 경우 코로나19 이후 전자화폐 거래가 급증했다. 코트라 자카르카 무역관이 인도네시아 중앙은행 통계자료를 인용해 밝힌 자료에 따르면 올 1월부터 4월까지 거래된 전자화폐 가치는 63조6392억루피아로 지난해 동기(31조4158억루피아) 대비 102.7%나 증가했다. 거래 건수로도 같은 기간 전자화폐 거래량은 전년 동기 대비 11.85% 증가한 16억1530만 건에 달했다.
베트남에서도 마찬가지다. 베트남은 특히 정부 차원의 전자결제 시장 활성화 도입 의지가 역내 다른 국가들에 비해 강했지만 그동안 노력에 비해 성과가 적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역시 전자결제 비중은 급속히 높아지고 있다. 베트남 결제중계망 사업 기관(NAPAS, National Payment Corporation of Vietnam)에 따르면 국가 내에서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시작한 2020년 1월 구정부터 3월 중순 사이 시스템을 통한 비현금 결제 건은 전년 동기 대비 76%나 증가했고, 거래 금액 또한 124%나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무역협회 조사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등 주요 4개국의 지난해 전자결제액은 857억달러로 전년대비 19.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개별 국가별로 일부 차이는 있겠지만 아세안 내 전자결제 관련 성장 추세는 뚜렷한 것이다. 향후 흐름도 긍정적이다. 무역협회는 2020년부터 전자결제액이 연평균 11.2%씩 증가해 2023년에는 131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처럼 코로나19 이후 전자결제가 각광을 받으면서 그 쓰임새도 다방면으로 퍼지고 있다.
코트라 자카르타 무역관은 이와 관련해 “커피 결제, 패스트푸드점 이용 등은 물론 공과금도 전자화폐로 내는 경우가 많이 늘었다”면서 “기부활동 역시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고 전했다. 또 무역관은 “전자지갑을 통한 송금 거래, 신용구매, 기타 어음 결제까지 늘었다”고 소개했다.
물론 이 같은 최근 전자결제 흐름에는 코로나19뿐만 아니라 다른 요인들도 한몫하고 있다. 그동안 장기적 관점에서 각국들이 관련 기반 인프라에 꾸준히 투자를 하고 정책적으로 지원해 온 노력들도 주목해야 된다는 뜻이다. 코로나19가 전자결제 활성화에 있어 일종의 촉매제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관련 인프라가 구축돼 있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모습은 나타나기 힘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태국은 지난 2002년 최초로 결제 시스템 관련 로드맵을 수립했고, 2015년 국가 전자결제 마스터플랜을 발표하기도 했다. 지금도 지속적 관련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지난해부터 관련 정책 4기(2019~2021년)를 펴고 있다. 이번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정책들은 ▲범국민 전자결제 시스템 프롬페이(PromptPay) 도입 ▲태국 QR코드 결제 표준 도입 ▲비대면 실명확인 기술 허용 등이다.
인도네시아는 아예 지난해 5월 인도네시아 결제 시스템 2025 비전(Indonesia Payment System 2025 Vision, SPI 2025)을 선포했다. 이를 통해 자국 전자결제 시스템 선진화와 확정성을 꾀한다는 전략이다. 이 비전은 크게 ▲오픈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 표준화를 통한 디지털 오픈 뱅킹 구축 ▲소매 결제 시스템 개발, 도매 결제 및 금융 시장 인프라 구축 ▲데이터 통합 인프라 구축을 포함한 국가 데이터 개발 ▲결제 관련 규제·관리 감독·인허가 및 보고 체계 구축으로 이뤄져 있다. 2025년까지 정부 부처와 유관기관들이 이를 구체화해 나갈 예정이다.
베트남은 지난 2016년부터 비현금 결제수단 활성화를 규정한 칙령(Decree)2545를 실행해 오고 있다. 올 연말 성과를 점검할 예정인데, 출발 당시 목표는 ▲전체 거래 중 현금 거래 비중 10% 미만으로 감소 ▲슈퍼마켓, 쇼핑몰, 현대 소매유통 시설에 POS 단말기 설치 ▲전기, 수도, 텔레커뮤니케이션, 미디어 서비스 기업 분야 이용자 비현금 결제 비중 70%까지 확대 ▲대도시 가정 및 개인들 소비 활동 시 비현금 결제 이용 50% 달성 등이었다.
이 같은 역내 전자결제 관련 흐름 덕분에 아세안 내 전자결제 사업 전망은 밝은 편이다. 이로 인해 시장에 조기 안착한 이들과 후발주자들과의 경쟁도 치열하다. 인도네시아가 대표적으로 현재 고페이(Gopay)와 오보(OVO) 등이 시장에서 절대 강자다. 하지만 다나(DANA), 링크아자(LinkAja) 등 후발주자들은 파격적 프로모션 등의 공격적 마케팅으로 점유율 빼앗기에 나서고 있다. 태국에서도 최근 2~3년 사이 전자화폐 서비스 제공 기업 수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그래서 특화된 상품으로 시장을 공략하기도 하는데, 래빗 라인 페이(Rabbit LINE Pay)의 경우 자사 카드로 태국 지상철인 BTS 요금 충전이 가능하도록 설계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 같은 치열한 경쟁에도 불구하고 아세안 전자결제 시장은 아직 초기 상태라 문을 두드리면 사업적 기회는 있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무역협회는 “아세안 전자결제 시장은 신규 사업자들이 다수 등장하여 경쟁이 심화되고 있으나 아직 발전 초기 단계로 뚜렷하게 시장을 장악한 기업은 부재한 상황”이라면서 “향후 성장 잠재력이 높고, 각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적극적이라는 점이 장점”이라고 했다.
다만 무역협회는 “각 국별로 다른 금융 환경 및 제도 등은 유의해야 될 대목”이라면서 “상황에 따라 경쟁상대는 아세안 역내 기업이 아니라 중국 등 글로벌 기업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무역협회는 “다수의 글로벌 기업들은 국가별 시장 상황과 소비자 선호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며 시장을 공략 중”이라고 전했다.
[문수인 기자 사진 매경DB]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8호 (2020년 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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