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헌철 특파원의 워싱턴 워치] 코로나에 ‘좌충우돌’ 트럼프, 경제 정상화로 승부수

    입력 : 2020.04.28 10:41:08

  • 코로나19로 인한 미국의 사망자가 3만 명을 넘은 바로 그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경제활동 정상화를 위한 3단계 지침을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16일(현지시간) 최근 2주간 감염자 증가세가 둔화된 지역은 점진적으로 직장 복귀와 비필수 사업장의 정상 영업에 나설 것을 권고했다.

    물론 5월 1일 자로 미국 전체가 정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초기 계획에서 물러나 주지사들에게 결정 권한을 위임하는 절충을 하긴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애초 “경제 정상화 권한은 미국 대통령의 전권”이라며 반대 의사를 표한 주지사들을 향해 ‘바운티호의 반란’이라고 비난했다. 바운티호의 반란이란 1789년 영국 군함 바운티호의 선원들이 선상 반란을 일으켜 함장 등을 보트에 태워 추방한 뒤 타히티섬으로 돌아간 사건이다. 구사일생 끝에 살아난 함장이 영국으로 생환한 뒤 군대를 이끌고 타히티섬을 공격해 반란을 진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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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감각은 본능적이다. 자신의 지지층을 향해선 민주당 소속 주지사들의 반대를 ‘반란’으로 취급하며 단합을 호소했다. 또 자신은 경기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면죄부를 얻었다. 그러면서도 경제 정상화 여부에 대한 최종 결정권은 주지사들에 위임했다. 경제활동 정상화가 늦은 주일수록 경제 회복 성적표도 나쁠 수밖에 없다. 결국 결과에 대한 책임도 주지사들이 선거에서 각자 지라는 얘기다. 공교롭게도 감염자 수가 많은 동서부 해안 지역은 민주당 주지사들이 많고 코로나19 피해가 적은 중부 지역은 공화당 텃밭이다. 오는 11월 3일 열리는 연방 선거는 대통령만 뽑는 게 아니다. 11개주에서 주지사 선거가 열리며 하원의원 435명 전원, 상원의원 100명 중 35명을 새로 뽑는다.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현장정치 경험이 전무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전대미문의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좌충우돌’이라는 사자성어의 뜻이 뭔지 제대로 보여줬다. 그는 지난 2월만 해도 “코로나바이러스는 4월이면 사라진다” “독감과 비슷하다” “감염돼도 금방 회복된다”는 등 코로나19의 공포를 억제하는 메시지를 쏟아냈다. 3월 중순이 돼서야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한 연방 지침을 발표하며 적극 대응으로 전환했지만 의료장비 부족에 대한 연방정부 책임론이 거셌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3월 말에는 “사망자가 10만~20만 명 정도면 선방한 것”이라고 말을 슬쩍 바꿨다. 심지어 백악관은 최대 220만 명이 사망한다는 예측치도 공개했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꺼내들면서 국민들이 정부에 거는 기대치를 낮추고, 감염자 확산 속도를 제어할 경우 성과를 부각시키려는 의도였다. 일종의 ‘착시효과’를 염두에 둔 고도의 정치적 전략으로 읽힌다. 4월 중순까지 추세를 반영해 미국 워싱턴대 연구팀은 오는 8월 초까지 미국인 사망자가 6만8841명에 달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천만다행인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와 함께 대선 국면에서 제기될 초기 대응 실패론을 의식해 책임의 ‘외부화’에 나선 상태다. 세계보건기구(WHO)에게 책임을 물어 자금 지원을 중단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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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 정부의 초기 대응은 분명 실패했다. 중국 입국금지 등 국경차단 조치는 했지만 지역사회 감염에 사실상 무방비 상태였다. 가장 큰 패착은 초기에 검사진행 속도를 의도적으로 늦춘 것이었다. 주요 감염 국가를 다녀온 사람, 의사의 검사 의뢰서가 있는 사람 등에 한해 엄격하게 검사 자격을 부여하다보니 대도시에 이미 광범위하게 바이러스가 퍼지는 상황을 방치했다. 이로 인해 미국은 세계에서 코로나19로 인한 감염자와 사망자가 가장 많은 나라라는 오명을 썼다. 그나마 주지사들이 먼저 나서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확대하고 비필수 사업장의 셧다운을 강제하면서 확산세가 잡혔다. 하지만 셧다운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는 상상을 초월했다. 3월 셋째 주부터 4주간 미국의 신규 실업수당 신청자는 총 2203만 명에 달했다. 이는 2010년 2월부터 2020년 2월까지 미국에서 신규 창출된 일자리(2018만 개)보다도 많은 숫자다. 10년간 힘들게 만들어낸 일자리가 불과 4주 만에 허공으로 날아갔다는 얘기다. 트럼프 대통령이 보건 관계자들과 일반 여론의 반대가 우세한 가운데 경제활동 정상화를 서두른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 대선에서 유권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변수가 바로 실업률이다.

    코로나19 이전에 3.5%에 불과했던 미국의 실업률은 4월 기준으로 15%를 상회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2분기 말 실업률은 최악의 경우 30%에 달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로널드 레이건 이후 공화당의 현직 대통령 가운데 가장 탄탄한 지지층을 보유하고 있다. 코로나19로 3만 명이 넘게 목숨을 잃어도 여전히 국정 지지율이 45%를 넘나든다. 하지만 선거 전까지 경제지표가 회복세로 전환하지 못하면 단임 대통령에 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실제로 지미 카터,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경기 악화였다. 지미 카터가 로널드 레이건에게 대패했던 1980년 11월 실업률은 6.9%였고, ‘아버지 부시’가 빌 클린턴에게 졌던 1992년 11월 실업률은 7.5%였다. 단순히 실업률 자체보다는 어떤 흐름이냐가 중요한데, 두 경우 모두 실업률이 상승세였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코로나19보다 더 두려운 것은 실업률인 셈이다.

    미국이 다시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선 무엇보다 셧다운의 조기 해제가 필요하다. 이미 미국에선 160만 개가량의 소규모 사업체들이 파산 위기에 직면했다.

    미국 뉴욕시의 문 닫은 점포.
    미국 뉴욕시의 문 닫은 점포.
    지난 3월 중순부터 42개 주가 자체적으로 주민들에게 ‘자택 대피’ 명령을 내렸고 대부분의 주에서 식료품 가게나 약국 등을 제외한 비필수 사업장의 영업을 중단시켰다. 중소 사업장뿐 아니라 JC페니 같은 백화점 체인마저 도산할 지경이다. 미국은 국내총생산(GDP)에서 민간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69%에 이르는 나라다. 한국(48%)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미국에서 소매영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는 5200만 명, 전체 근로자의 4분의 1에 달한다.

    포장 판매만 허용되고 있는 요식업계의 타격도 직접적이다. 미국에는 무려 66만 개의 식당이 있고, 요식업 종사자는 1500만 명에 육박한다. 제조업체, 금융사들의 이익 감소와 부동산 가격하락 등 2차 충격도 문제다. 실업의 공포가 제조업과 금융권까지 미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의 재확산 우려에도 불구하고 경제활동 정상화에 정치적 명운을 거는 배경이다.

    [신헌철 특파원의 워싱턴 워치]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6호 (2020년 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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