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현규 특파원의 실리콘밸리 통신] 美 Siggraph 2019 행사 가보니… 인간 얼굴세포 하나까지 그래픽으로 표현, 물감으로 그린 듯한 3D 디자인 눈길 확

    입력 : 2019.09.02 14:40:43

  • ‘컴퓨터 그래픽의 혁명은 이제 시작이다.’

    퍼스널컴퓨터(PC) 모니터가 처음 시작했을 때 화면은 2차원 적이었다. 10년 정도 이러한 2차원 그래픽에 적응이 되고 나자, 컴퓨팅 기술이 발달하면서 3D 그래픽 기술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소니가 1990년대 말 플레이스테이션을 선보이며 본격적으로 3D 그래픽이 가정에도 도입됐다. 그리고 약 20년 동안 가정용 컴퓨터 그래픽은 진전되긴 했으나, 2D에서 3D로 넘어가는 것과 같은 충격적인 변화는 없었다.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컴퓨터 그래픽의 혁명은 끝난 것이 아니냐는 시선을 보낼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난 7월 29일~8월 2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컴퓨터 그래픽 전문 전시회인 ‘시그래프(Siggraph)’에 참관하고 나서, 컴퓨팅의 성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최소한 그래픽 쪽만 보아도 강력한 컴퓨터 그래픽 하드웨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고, 소프트웨어 발달도 덩달아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이 덕분에 가상현실, 증강현실과 같은 3D기술이 고도화되고 있고 인공지능이 컴퓨터 그래픽에 접목되면서 현실세계를 그대로 닮은 가상세계의 모습이 그래픽을 통해 즉각 생성되고 배달되는 일들이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들은 결국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사진설명
    ▶컴퓨터 활용 현실세계를 3D 세계로 변화 가능

    ‘컴퓨터를 이용해 현실세계를 즉각 3D 가상세계로 변화시키는 일이 곧 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시그래프 2019에 참가한 그래픽 회사 한 곳(바이콘)은 ‘쇼군’이라는 영화제작용 3D 모션캡처 프로그램을 전시했다. 남녀배우 두 사람이 3D 센서가 부착된 옷을 입고, 감독이 건네 준 시나리오에 따라 연기를 시작하면, 컴퓨터 화면에서 이들의 모습은 판타지 세계에 등장하는 부부로 변신한다. 두 사람의 연기를 먼 곳에서 화면으로 지켜보던 감독은 마음에 들지 않는 연기가 진행되면 원격으로 코치를 해주고, 연기지도를 한다. 현실세계에서 두 사람의 모습은 곧바로 3D 가상현실 속 그래픽의 모습으로 바뀌어서 전달되는 것이다.

    이를 활용하면 누구라도 3D 세계 속에서 연기를 하는 배우가 될 수 있다. 5G가 도입되어 이런 3D 영상이 재빠르게 다른 곳으로 전송될 수 있다면 현실세계를 곧바로 3D 디지털세상으로 옮긴 뒤 다른 장소로 이동시키는 일이 가능해진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실리콘밸리에 있는 디자인 설계회사에서 한국에 있는 공장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대응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한국 공장 내부를 3D로 촬영하고 이를 컴퓨터로 재구성한 뒤, 실리콘밸리에 있는 설계회사 엔지니어들이 가상현실 장치를 쓰고 들여다보는 일이 가능해 지는 것이다. 홍콩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현장에서 저널리스트들이 3D카메라를 장착하고 현장을 촬영하면 시청자들이 실시간으로 홍콩 시위 현장에 있는 것처럼 가상현실 장치를 쓰고 체험해 볼 수도 있다. 미국 현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류현진 선수의 야구 게임을 3D 형태로 촬영하면 이를 한국에서 실시간으로 받아 가상현실 형태로 제작해 실제 경기장에 있는 것 같은 경험을 전달해줄 수도 있다.

    2019시그래프 참가자가 가상현실 기기를 보고 있다.
    2019시그래프 참가자가 가상현실 기기를 보고 있다.
    이는 5G와 함께 에지 컴퓨팅(개별 단말기 쪽에서 데이터를 처리하는 기술)의 발달이 빨리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일례로 이 행사장에서 미국 5G 분야 선두주자인 통신사 버라이즌은 그래픽 반도체 회사인 엔비디아와 함께 분산된 그래픽처리장치(GPU)들을 한꺼번에 작동시킬 수 있는 통합(Orchestration)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라힐 칼리드 버라이즌 XR(혼합현실) 담당 엔지니어는 시그래프 전시장에서 “5G의 발달과 함께 에지 컴퓨팅의 시대가 온다면 현재 일어나는 일들을 3D 형태로 바꾸어서 가상현실 형태로 즉각 제작해 고객들에게 제공해 주는 일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플랫폼은 고성능 GPU들이 탑재된 기기들이 비록 분리되어 있다 하더라도 하나처럼 작동할 수 있도록 묶어주는 것으로, 개발이 완료되고 나면 고성능의 3D 그래픽을 거의 실시간으로 빠르게 처리할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3D 그래픽으로 제작된 게임들의 경우도 게이머들이 각자 만든 ‘아바타’와 같은 캐릭터들을 게임 안에 투입시켜 가상세계 내에서 다른 게이머들과 함께 각종 활동들을 실시간으로 주고받는 일들도 가능해진다. 게이머들은 기존 PC나 스마트폰으로도 충분히 이처럼 고성능 게임들을 즐길 수 있다. 버라이즌은 고성능 GPU와 3D 소프트웨어, 그리고 5G 기술 등을 한데 묶어서 이런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현실세계를 즉각 3D 가상세계로 이동시키는 그래픽 작업은 미디어의 근본부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일단 창작의 기본적인 도구부터 변화할 수 있다. 에릭 슈미트 전 구글 CEO가 자문하고 있는 그래픽 기업 ‘오토이’의 창업자 줄스 울바흐는 인텔이 개최한 ‘크레이에트’ 행사에서 본지와 만나 “지금은 아이들이 물감과 스케치북을 가지고 그림을 그린다”며 “그러나 (5G와 에지 컴퓨팅이 도래하면) 누구나 3D 그래픽 도구를 가지고 그림을 그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 정도로 3D 형태로 그림을 그리기가 편리하고 쉬워지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예상이다.

    세계 최고의 그래픽 엔지니어로 꼽히는 라자 코두리 인텔 소프트웨어&그래픽설계 수석부사장은 본지와 만나 “지금이 차를 타는 기분이라면 앞으로는 비행기를 타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들 것”이라며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컴퓨터 그래픽의 시대가 온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속도’ 차원에서 이전과는 획기적으로 다른 그래픽처리장치들이 등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코두리 부사장은 “대용량 메모리와 대용량 집적회로, 그리고 소프트웨어 발전 등이 받쳐준다면 지금보다 1000배 빠른 속도의 GPU가 등장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과거에는 하드웨어 설계만으로도 10년 만에 1000배에 달하는 성능 향상을 이뤄낼 수 있었다”며 “하지만 이제는 공정, 설계, 메모리 그리고 무엇보다 소프트웨어가 받쳐주어야만 (1000배의 성능 향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어마어마한 스케일(exascale)의 컴퓨팅을 누구나 쓸 수 있게 하려면 우리(인텔)뿐만 아니라 (컴퓨터) 산업계 전체의 공동 노력이 필요하다”며 “수 년 이내에 지금보다 1000배의 성능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존 최고의 CPU 엔지니어로 꼽히는 짐 켈러 인텔 실리콘엔지니어링그룹 총괄 매니저도 “지금보다 수천 배 많은 코어와 메모리를 탑재한 GPU가 매우 훌륭한 소프트웨어를 만나 작동하게 된다면 그래픽의 처리속도 면에서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모델이 훌라후프를 움직이자 화면에 3D로 캡처되는 모습
    모델이 훌라후프를 움직이자 화면에 3D로 캡처되는 모습
    ▶인공지능 그래픽에 접목돼 빠른 변화

    인공지능 또한 그래픽에 접목되어 빠른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예를 들어 최근 개봉한 애니메이션 영화 <토이스토리4>에는 인공지능이 그린 거미줄이 등장한다. 이 영화를 제작한 픽사 측은 시그래프에서 사례발표를 통해 이렇게 밝혔다. “거미줄을 그리기 위해 구글 포토를 통해 거미줄을 검색해 봤으나, 우리가 원하는 거미줄 그림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우리는 인공지능으로 거미의 행태를 입력하여, 가상의 거미를 만들고 그로 하여금 거미줄을 짓도록 해 보았다. 결국 여러분이 <토이스토리4>를 극장에서 보셨을 때 등장하는 거미줄들은 인공지능이 그린 것이다.”
    사진설명
    ▶3D 가상현실 위한 콘텐츠 개발 진전

    3D 가상현실을 위한 콘텐츠들도 개발이 진전되고 있다. 이번 시그래프에서 단연 눈길을 끈 것은 VR극장이었는데, 특히 그 중에서도 디즈니가 공개한 가상현실 영화 <연 이야기(Kite’s Tale)>가 화제가 됐다. 디즈니가 이 가상현실 만화영화를 실제로 상영할 것인지 여부는 확실치 않지만, 디즈니는 이 작품 등과 같은 가상현실 영화들을 지속적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연 이야기>는 향후 가상현실 세계를 가늠하게 해줄 중요한 시초작품으로 기록될 것으로 전망된다. <연 이야기>는 3~4분 정도의 짧은 VR 콘텐츠다. 가상현실 디바이스를 착용하고 영상이 시작되면 청중들은 바닥이 보이지 않는 높은 구름 위에 떠 있는 듯한 가상현실 속으로 안내된다. 그 위에는 용의 모양을 한 거대한 연이 하나 떠 있다. 그 뒤로는 강아지 모양을 한 작은 연이 등장해 용의 주위를 희롱한다. 용 모양의 연은 도도하게 떠 있으며 강아지 모양의 연이 주변에서 재롱을 떨어도 의연하다. 그러나 결국 줄이 끊어져서 위험에 빠진 용은 강아지의 도움으로 제자리를 찾게 되고, 둘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교훈을 깨달은 채 가상현실 영화는 끝이 난다. 매우 짧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스릴감과 감동, 그리고 디즈니 특유의 따뜻한 감성이 충분히 전달되는 가상현실 영화였다. 결론적으로 2D에서 3D로 변화할 만한 컴퓨터 그래픽의 퀀텀점프가 일어나려 하고 있다. 이는 현실세계를 그대로 닮은 가상세계로 사람들이 진입하는 형태로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적어도 시그래프 2019에서 발표된 기술들은 그러한 트렌드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신현규 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8호 (2019년 9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일경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