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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헌철 특파원의 워싱턴 워치] 워싱턴 政街 쥐락펴락하는 여성들...하원의장 ‘두 번째 엄마 리더십’ 펠로시 황금기, 최연소 하원의원 오카시오-코르테즈도 스타덤
입력 : 2019.03.07 14: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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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정가에 불어 닥친 ‘여풍(女風)’의 핵심에는 두 명의 여성 정치인이 있다. 먼저 올해 79세인 ‘정치 9단’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이다. 우리나라 20대 국회의원 중 최고령인 박지원·강길부 의원보다도 두 살 연상이지만 정치 인생의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보다는 6살 위다. 하원 의장으로는 미국 권력서열 3위이자 대통령 유고시엔 승계서열이 부통령에 이어 두 번째이긴 하다. 그러나 역대 하원의장 가운데 지금처럼 대통령과 동급으로 주목받는 경우는 드물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1940년 볼티모어 출생 트리니티대학 정치학 학사 이탈리아계, 부친은 볼티모어 시장 1987년 하원의원 첫 당선 후 17선 사상 첫 여성 하원의장(2007~2011년) 두 번째 하원의장 재임(2019년 1월~)
펠로시 의장은 1940년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의 이탈리아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남자 형제가 6명이나 있지만 펠로시 의장만 부친의 대를 이어 정치인이 됐다. ‘빅 토미’란 별명을 가졌던 부친 토마스 디알레산드로는 민주당 하원의원을 지냈고 볼티모어 시장도 세 번이나 연임했다. 1963년 남편 폴 펠로시와 결혼한 그는 4녀 1남을 낳고 평범한 주부로 지내다 막내가 고등학교에 들어간 직후인 1987년에야 집 밖으로 나서 캘리포니아에서 처음 당선됐다. 이후 단 한 번의 낙선 없이 내리 17선에 성공해 32년째 하원의원을 지내고 있다. 펠로시는 이미 2003년 하원 원내대표에 올라 당권을 쥐었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 미국 역사상 첫 번째 여성 하원의장을 지냈고 이후에도 다시 소수당 원내대표를 유지했다. 평소엔 중앙당이 없는 미국 정당의 경우 상하원 원내대표가 사실상의 당수 역할을 한다.
8년 만에 민주당이 하원 다수당을 되찾은 뒤 다시 의장직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하자 당내 반발도 적지 않았다. 미국 정계에선 새내기 의원들을 ‘프레시맨(freshman)’이라고 부르는데 이들 중 일부가 집단적으로 리더십 교체를 요구했던 것이다. 화려한 컬러의 명품 의상을 즐겨 입어 우리로 치면 ‘강남 좌파’, 미국 표현으론 ‘리무진 리버럴(Limousine Liberal)’이라는 따가운 시선도 존재했다. 금융업으로 큰 돈을 번 남편과 펠로시 의장의 재산은 2억달러를 넘는다. 그러나 정치 9단 펠로시는 반대파를 일일이 접촉해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설득하는 정공법으로 결국 60여 년 만에 하원 의장을 두 번 역임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펠로시 의장의 진가가 드러난 것은 이 때부터다. 중간선거 승리로 고무된 당내 일각에서 ‘트럼프 탄핵’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분출됐지만 펠로시는 “때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국경장벽 예산을 놓고 벌어진 연방정부 폐쇄(셧다운) 사태 때 트럼프 대통령과 벌인 샅바싸움은 가히 ‘펠로시의 재발견’이라 부를 만했다. 1월 말로 예정됐던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연설을 “셧다운 때문에 경호 등에 문제가 있다”는 편지 한 장을 보내 뒤로 미루게 만들었다. 대대적 여론전을 펼치려던 트럼프 대통령의 예봉을 꺾은 순간이었다.
예산안 통과 지연으로 인한 셧다운의 장기화는 사실 야당으로서도 ‘역풍’을 우려할 만한 사안이었다. 하지만 펠로시 의장은 반트럼프 언론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여론전에서 승기를 쥐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셧다운을 끝내고 비상사태 선포로 장벽 문제를 우회하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과 만나 척 슈머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에게 쌍욕을 퍼부었지만 펠로시 의장에 대해선 “관계가 나쁘지 않다”고 한수 접어줬다. 지난달 국정연설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초당적 정치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그녀가 물개박수를 치는 모습이 포착돼 화제가 됐다.
일각에선 트럼프에 대한 조롱이라고 풀이했지만 필자가 보기엔 마치 어린 동생을 다루는 듯했다. 빌 클린턴 정부에서 백악관 대변인을 지냈던 디디 마이어스도 워싱턴포스트에 “끊임없이 보채는 5명의 아이를 성인으로 키워낸 경험이 펠로시 의장을 트럼프에 대비할 수 있게 했다”고 말했다. 악동을 다루는 법을 체득하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펠로시 의장의 앞길이 순탄치만은 않다. 2020년 대선에 직접 출마하지 않지만 정권교체를 위해 수권 정당으로 거듭나게 만들어야 한다. 올망졸망한 대선 후보만 벌써 10여 명이 나왔지만 보수진영의 트럼프 지지는 공고하다. ‘스윙 보터’로 불리는 중도층 20%의 표심을 민주당으로 끌어오려면 간판인 펠로시 의장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시점이다. 당내 새내기들이 ‘사회주의’ 논란까지 불러오며 좌파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부담이다. 그는 국정연설 때 야유를 보내려는 새내기들을 손짓과 눈짓을 총동원해 제지했다. ‘엄마 리더십’으로 새내기들의 돌발 행동을 제어하는 것도 숙제인 셈이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 하원의원 1989년 뉴욕 브롱크스 출생 보스턴대 국제관계학 학사 푸에르토리코계, 부친은 건축가 2018년 11월 하원의원 첫 당선(초선) 116대 의회 최연소 의원 최고세율 70% 부유세 도입 주장
또 한 명의 스타급 여성 정치인은 펠로시 의장과 50살 차가 나는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29)다. 푸에르토리코 이민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뉴욕 14선거구에서 당선돼 현재 하원에서 최연소다. 벌써부터 ‘AOC’라는 이니셜로 불릴 정도로 대중의 관심을 끌고 있다. 트위터 팔로어가 318만 명으로 펠로시 의장(227만 명)보다도 많다. 버니 샌더스 의원의 대선 캠프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한 게 정치경력의 사실상 전부였던 그는 좌클릭 정책과 거침없는 언변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하원의원 취임식에 여성 참정권 운동을 상징하는 흰 옷을 입고 나왔던 그의 행보에 국정연설 때 동료 여성 의원들이 모두 동참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그는 연소득 1000만달러 이상인 사람들에게 70%의 세율로 부유세를 매기자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미국의 소득세 최고세율은 빌 클린턴 정부 때 올린 그대로 39.6%지만 트럼프 대통령 집권 후 한시적으로 37%가 적용되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미국은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다”라며 반격에 나섰다. 물론 대선 경쟁자인 엘리자베스 워런이나 버니 샌더스까지 함께 겨냥한 발언이지만 빌미는 오카시오-코르테즈가 제공한 셈이었다.
뉴욕에 들어서려던 아마존 제2본사를 기업에 대한 과도한 특혜라며 반대해 결국 물러나게 만든 데도 주도적 역할을 했다. 역시 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오카시오-코르테즈와 함께 팔레스타인계 라시다 틀레입, 소말리아계 일한 오마르 등에게 ‘민주당 악동 트리오’라는 별명을 붙였다. 일한 오마르 의원은 얼마 전 유대계 미국인들이 워싱턴 정치를 로비로 장악했다고 대놓고 비난했다가 중진 의원들의 요구에 따라 어정쩡한 사과를 했다. 금융계를 장악한 유대계 미국인들은 잘 알려진 대로 정치자금 ‘큰 손’이다. 당 지도부가 뜨악한 이유다. 하지만 오카시오-코르테즈는 당 지도부를 비난하면서 오마르 의원을 공개 지지하고 나섰다. 사회주의자임을 당당히 표명하는 그의 공격적 행보에 민주당 지지층 일각에선 불안한 시선도 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을 우려하는 목소리다.
[신헌철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2호 (2019년 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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