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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 교수의 중동 오디세이] (20) 21세기 중동, 불안정과 저유가 그래도 제 2의 중동붐 이어진다
입력 : 2015.08.21 09: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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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국가(Nation-state)’ 형성이 미진한 중동 지역에서 민주화로 가기 위해 거쳐야 할 단계다. 이제 몇몇 나라에서 시민혁명이 성공했을 뿐이다. 민주화와 사회 안정을 이루기 위해 앞으로도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거칠 것이다.
그러나 중동의 불안정은 최근의 현상이 아니다. 수십 년 전에도 화약고라 불렸다. 그런 상황에서도 우리와의 경제 교류는 확대돼 왔다. 더욱이 정치적 굴곡 속에서도 중동이 가진 성장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인구가 폭증하는 상황에서 제2의 중동 붐도 이어질 것이다. 저유가는 단기적인 현상일 것이다. 산유국들이 ‘적정 가격’이라고 생각하는 배럴당 80달러 전후를 회복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이 과정에서 중동 경제의 체질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저유가와 정치적 불안정 속에서도 석유자본을 바탕으로 걸프 산유국은 지속적인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여기에 과거 지나치게 자원에 의존하던 방식에서도 벗어나고 있다. 산업다각화를 통해 지속성장 가능한 경제를 추구하며 그 과정에 한국 성장모델을 배우고 보다 포괄적인 협력을 기대하고 있다.
두바이 최고층 빌딩 부르즈 칼리파 내 금 자판기
IS사태가 중동의 대혼란이나 역내 전쟁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거의 없다. 리비아, 예멘 등 사실상 내전 상태인 국가들에서 IS에 충성을 선언한 세력들이 등장하고는 있지만, 느슨한 이념적 연계일 뿐이다.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중동국가들도 자국내 문제로 여념이 없다. 이라크를 둘러싼 주변국들도 직접적인 개입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란은 서방과 핵 문제 최종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제재 속에 경제가 파탄지경에 이르면서 서방과의 관계개선과 핵 협상 타결을 원하고 있다. 미국과 서방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라크 내전에 적극 개입하지 않을 것이다. 자국 내 1500만명 이상의 쿠르드족이 있는 터키도 무리해서 시리아와 이라크의 특정세력을 지원할 가능성이 없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아랍의 봄 물결이 국내로 유입되는 것을 막고자 정신이 없다. 2015년 초부터는 시아파 반군이 득세하고 있는 예멘에 대한 군사적 개입까지 하고 있는 상황이다.
두산중공업의 사우디 해수담수화 플랜트
석유자본을 바탕으로 한 중동의 투자여력도 세계경제에 긍정적인 시그널이 되고 있다. 현재 중동의 국부펀드는 1조8500달러를 웃돌고 있다. 국가별 국부펀드 규모에 있어 상위 10개 국가 중 4개가 중동에 위치해 있다. 1000억달러 이상의 자본을 운용하고 있는 소위 ‘슈퍼 세븐(Super Seven)’ 중 4개가 중동의 국부펀드다. 이들 국부펀드가 개발과 투자에 나서는 큰 손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동 국가들은 자본을 미래의 전략 산업으로 간주하고 있다. 세계 각지의 산업시설은 물론 스포츠 구단에도 투자해 미래 수익원으로 활용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따라서 자본을 바탕으로 한 제2차 중동 붐은 장기간 이어질 것이다.
여기에 중동 경제의 거인, 이란이 잠에서 깨고 있다. 인구, 자원, 식량자급, 수자원 등 성장 잠재력을 모두 갖춘 중동국가가 바로 이란이다. 경제제재가 시작되기 전까지 중동 내 우리의 최대 교역 국가였다. 이미 서방의 석유 메이저들은 이란 진출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미 세계 최대 건설 및 플랜트 발주처인 중동에 ‘거인’ 이란의 복귀는 제2 중동 붐의 추가적인 기폭제가 될 것이다. 이란은 낙후한 산업 인프라를 재건하기 위해 막대한 투자를 시작할 것이다. 원유 수출이 정상화되면 그로 인해 축적될 자본의 상당 부분을 사회간접시설 건설, 물가 안정, 일자리 창출 등 경제재건 및 사회 안정과 연관된 부분에 투입할 예정이다. 이 때문에 이란시장이 개방되면 세계경제에도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래지향적 제2 중동 붐! 현재 중동 붐은 ‘돈 펑펑 쓰는 졸부’와 같았던 1970, 1980년대와는 다르다. 현재 중동 국가들은 미래지향적 성장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석유가 고갈될 미래를 대비해 중장기적 프로젝트들이 진행되고 있다. 과거의 방식에서 탈피해 내부로부터의 변화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개방을 통해서 세계경제와 소통하려 하는 것이 현재 중동의 경제다. 석유를 추출하는 업스트림(upstream)뿐만 아니라 가공 및 유통인 다운스트림(downstream)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UAE, 쿠웨이트 등 대부분 걸프 국가들이 석유화학산업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앞으로도 플랜트 프로젝트가 지속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특히 최근에는 석유관련 산업뿐만 아니라 자동차 조립, 금속가공, 포장제 등 제조업 중심형의 산업 다각화와 인재 및 두뇌를 유치해 IT산업 등을 발전시키려는 지식집약형 산업 다각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 불만의 근원인 실업률을 줄이기 위한 것이다. 걸프 산유국들은 또 원자력을 포함한 신재생에너지, 제조업, 서비스업 등에서 신성장 동력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제도의 정비 및 개정, 공단 및 자유지대 설치, 항만 및 인프라 정비 등의 사업이 확대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구증가를 보이고 있는 중동 및 이슬람권에서 일자리 창출은 정권의 생존과도 직결되어 있다. 연평균 2%에 달하는 인구증가에도 불구하고 고용 창출을 위한 제조업 등 산업 전반의 발전이 미미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두바이의 요거베리 매장, 두바이의 샤이니 팬
제2차 중동 붐 속 중동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따라서 과거와는 차별화된 접근이 마련돼야 한다. 적극적이면서 효과적인 윈윈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기술적·가격적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는 플랜트 산업에 대한 수주를 유지해 가면서 제조업을 포함한 다른 분야에서의 협력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해적의 송환에 왕실 전용기를 내준 UAE와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다른 나라에도 확대해야 한다.
중동 신세대의 마음을 파고들고 있는 한류를 바탕으로 문화적 그리고 인적교류도 늘려야 한다. 이들 협력의 가교역할을 할 전문인력 양성도 필수적이다.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섬세한 진출과 협력이 제2 중동 붐에 대처하는 우리의 새로운 코드가 돼야 한다.
중동 미니상식 신뢰를 바탕으로 인맥을 구축해야! 중동인들은 계약서보다는 사람에 대한 신의를 중시한다. 신뢰할 만한 연줄(Wasta)과 인맥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중동 시장 진출은 충분한 시간, 비용, 그리고 노력이 필요하다. 현지에 사무실을 두고 거주하거나 최소한 수시로 방문해야 현지인과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아무리 좋은 물건이라도 느닷없이 나타나 보여준다면 중동인들은 큰 관심을 안 보인다. 이런 식으로 접근해 오는 외국인을 상대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연줄과 인맥이 큰 작용을 한다. 인맥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진솔한 접근법이 필요하다. 눈앞의 이익만 추구하다 보면 얼마 가지 않아 신뢰가 무너지게 된다. 5000년 동안 장사를 최고의 비즈니스로 살아온 사람들이다. 상대방을 파악하는 데는 뛰어난 직관을 가진 사람들이다. 한 번 신뢰가 무너지면 그 소문은 아주 빠르게 업계에 퍼진다. 의리를 저버리는 행동도 금방 들통 나는 곳이 중동이다. 연줄로 서로 얽혀 있는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가진 곳이다. 반면 신뢰를 바탕으로 한 인맥이 구축되고 평판이 좋아진다면 ‘안 되는 일’도 되게 할 수 있는 곳이 중동이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9호 (2015년 0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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